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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라이트리 Dec 10. 2024

히에로글리프와 로제타석: 잃어버린 글자의 부활

이집트 역사 산책 (6편)

고대 이집트의 문자 체계인 히에로글리프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신비로운 문자 체계 중 하나입니다. '신성한 새김'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이 문자 체계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종교적, 예술적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약 3,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집트 문명의 중심에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왔습니다.


히에로글리프는 약 700에서 1,000개에 이르는 다양한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상징들은 세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첫째로, 상형 문자(Pictograms)는 실제 사물이나 개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을 나타내는 원형 상징은 말 그대로 태양을 의미했고, 물을 나타내는 물결 모양의 상징은 실제 물을 상징했습니다. 둘째로, 음절 문자(Phonograms)는 특정한 소리나 음절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현대 알파벳과 유사한 역할을 했으며,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데 매우 중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정자(Determinatives)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동음이의어가 있을 경우, 결정자를 통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히에로글리프는 주로 종교적인 텍스트나 왕실의 공식 기록에 사용되었습니다. 웅장한 신전의 벽면, 장엄한 피라미드의 내벽, 그리고 파라오들의 무덤에서 이 문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상적인 기록에는 히에로글리프를 간소화한 형태인 히에라틱(Hieratic) 문자나, 더욱 단순화된 데모틱(Demotic) 문자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히에로글리프가 가진 신성하고 공식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경, 이집트가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영향 아래 들어가면서 히에로글리프의 사용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집트의 전통 종교가 쇠퇴하자, 히에로글리프 역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후 약 1,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히에로글리프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 신비로운 문자는 그저 고대의 수수께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히에로글리프의 해독은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에 발견된 로제타석(Rosetta Stone)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군이 나일강 삼각주의 작은 마을 로제타에서 발견한 이 돌판은, 동일한 내용을 세 가지 다른 문자 체계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상단부에는 히에로글리프로, 중간에는 데모틱 문자로, 그리고 하단부에는 고대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어는 여전히 해독이 가능했기 때문에, 로제타석은 히에로글리프를 해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로제타석의 내용은 기원전 196년에 새겨진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칭송하는 칙령이었습니다. 비록 정치적인 선언문에 불과했지만, 이 돌판은 고대 문자 해독이라는 언어학적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히에로글리프 해독에 도전했지만, 가장 큰 성과를 이룬 것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이었습니다.


초기에 영국의 학자 토머스 영(Thomas Young)은 히에로글리프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소리와 의미를 동시에 나타낸다는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그는 특히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을 나타내는 특정 기호들을 식별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822년, 샹폴리옹은 히에로글리프의 기호들이 알파벳과 음절, 그리고 의미를 복합적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는 현대 이집트어의 조상인 코프트어(Coptic)를 연구하여 히에로글리프의 발음 체계를 재구성했고, 마침내 완전한 해독에 성공했습니다.


샹폴리옹의 획기적인 발견은 고대 이집트학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침묵하고 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목소리가 다시 듣게 된 것입니다. 피라미드의 벽화에 새겨진 글자들, 파피루스에 기록된 문서들, 무덤의 비문들이 하나둘씩 그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정치 제도, 종교적 신념, 사회 구조, 일상생활, 그리고 그들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로제타석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돌판은 단순한 박물관 전시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가 잃어버린 과거와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 열쇠이며, 문화적 단절을 극복하고 인류의 지적 유산을 복원한 위대한 증거물입니다. 히에로글리프의 해독은 고고학과 언어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히에로글리프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혜와 예술성, 종교적 영성이 깃든 문화유산이었습니다. 그들은 문자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신들과 소통하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했으며, 우주의 질서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로제타석을 통한 히에로글리프의 해독은 인류가 잃어버린 과거의 목소리를 되찾은 감동적인 순간이었으며, 현대와 고대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히에로글리프의 해독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인류의 지적 호기심과 끈기 있는 탐구가 어떻게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앞으로도 고대 이집트의 문자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인류 문명의 깊이와 다양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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