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격랑 속에서 시작된 ‘힘의 경계선’의 역사
19세기 후반, 세계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촉발한 기술적 진보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고,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같은 유럽 열강은 앞다투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향해 팽창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곧 제국주의라는 이름의 세계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동아시아도 안전지대가 아니었습니다. 아편전쟁(1840) 이후 청나라의 쇠퇴는 동아시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 이후 서구의 제도를 빠르게 흡수하며 신흥 제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때 조선은 여전히 전통적 질서 속에서 ‘은둔의 왕국’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곧 강대국들의 이해가 교차하는 중심으로 끌려들게 됩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축복이자 저주였습니다. 동북아의 대륙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교차로, 대륙 세력 러시아와 중국, 해양 세력 일본과 미국, 그리고 이를 견제하는 영국까지 모두 한반도를 주시했습니다.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를 위해 남하정책을 추진했고,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조선을 점찍었습니다. 영국은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선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대한해협을 주목했으며, 미국도 태평양 전략을 구상하며 점차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처럼 한반도는 단순한 ‘작은 나라’가 아니라,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내부 역량은 이 지정학적 부담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근대 국제질서로 끌려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습니다. 일본은 군함을 앞세워 조선의 문을 열었고, 그 결과 맺어진 조약은 철저히 불평등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미국·영국·독일 등 서구 열강과 체결된 조약들도 비슷한 성격을 띠었으며, 조선은 경제적·외교적 주권을 서서히 잃어갔습니다.
내부에서는 개화파와 위정척사파가 갈등했습니다. 일부 개혁 지식인들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자주적 근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보수적 관료와 기득권 세력은 이를 거부하거나 지연시켰습니다. 자주적 근대화의 기회가 무너지는 사이, 외세는 점점 깊숙이 침투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은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국제전이었습니다. 청은 패배했고, 조선은 명목상 독립을 얻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였습니다. 이어 1904년 러일전쟁은 동아시아와 세계사에 중대한 의미를 남겼습니다. 비(非)서구 국가인 일본이 서구 열강 러시아를 꺾으며 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그 전장은 바로 한반도와 만주였습니다.
조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이 땅은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고, 결국 1910년 일본에 병합되며 완전히 주권을 상실했습니다. 이는 한반도가 국제정치의 ‘객체’로 전락한 순간이었으며, 이후 35년간 식민지 지배라는 긴 어둠이 시작되었습니다.
식민지 시기 한반도는 거대한 역설을 경험했습니다. 일본은 효율적 지배와 수탈을 위해 철도·항만·도로·통신망을 건설했습니다. 근대적 행정체계와 교육제도도 이식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인의 자주적 선택이 아닌, 외세의 필요에 따른 강제적 근대화였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오늘날까지 논쟁적입니다. 어떤 이는 이를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보기도 하지만, 다른 이는 ‘종속적 수탈의 결과’로 규정합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은, 한국의 근대가 자발적 진화가 아닌 외부 충격의 산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식민지 경험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냉전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던 시기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기억은 반복적으로 소환됩니다. “힘 없는 국가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교훈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강렬한 뼈대 중 하나가 되었고, 이는 곧 안보와 기술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습니다.
핵무기 개발 논쟁, 첨단 무기 체계 도입, AI와 드론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움직임까지 ― 모두 이 역사적 기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근대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규정하는 기억의 토대입니다.
한반도의 근대 탄생은 비극적이었지만, 동시에 오늘을 열어준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제국주의의 격랑 속에서 작은 나라가 겪은 좌절과 상처는 곧 생존의 집념으로 바뀌었고, 이는 한국 현대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세계 질서는 지금 또 한 번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소련 붕괴와 미국 단극체제, 나토의 확장과 러시아의 전쟁, 북한의 비대칭 전략, 중국의 부상, AI와 드론의 군사적 혁신. 이 모든 것은 다시금 한반도를 ‘힘의 경계선’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직면할 도전이자 선택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