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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밤이 Jul 16. 2024

기능하지 않는 인간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힘

일을 한다는 것은 늘 지옥일까?

    나는 늘 궁금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원래 지옥인 것일까? 나는 늘 스스로 답변했다. 현실을 사는 인간이라면 주어진 삶을 책임지기 위해 지옥 같은 일상을 버티는 것이라고. 이런 마음으로 12년간 해온 컨설팅이란 일이 나와 맞지 않다는 사실은 뒤로 움켜쥔 채 다른 이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눈높이에 맞춰 살려는 노력만 기울였다. 그러나 그 움켜쥔 마음들이 자꾸만 다른 질문들을 던졌다.


 이렇게 사는 거 진짜 괜찮아?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이 있다면 죽기 전에 어떤 선택을 후회할지 미리 생각해 보라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그동안 하던 일을 계속하다 죽게 되는 순간을 상상했다. 이 일을 하는 내 모습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대로 살다가 무시무시한 후회 속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30대 후반에 12년 간 해오던 일을 무작정 그만두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더 일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퇴직절차는 매우 단순했다. 프로젝트 팀장에게 다음 프로젝트는 하지 않음을 통보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백수가 확정되는 시간은 고민 과정에 비해 빠르게 진행됐고 행복한 시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계약종료 일자가 다가올수록 기대감은 불안감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나의 효용 가치가 사라진다는 불안감


    나는 효용 가치를 따져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마 아들을 바랐던 집에 딸로 태어나면서 존재 자체를 환영받을 수 없어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장남으로서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던 아빠는 첫째 딸에 이어 둘째도 딸이라는 실망감에 탄생의 기쁨보다 아쉬움의 마음으로 내가 태어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살림에 둘 이상은 키우기 힘들었던 엄마는 뱃속 발길질이 아들인 줄 알았다며, 내가 남자였다면 세 번째 남동생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남동생이 태어난 순간부터는 주변사람들이 엄마의 등에 업혀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아들을 얻는 것에 성공했음을 축하했다. 그때마다 나는 은연중에 실패한 존재라는 인식이 무의식에 자리 잡았고 자존감이 매우 낮은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이후 언니가 중학교 졸업식을 마친 후 쓰러져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십 년여간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엄마가 병원생활을 할 때는 내가 집안일과 동생을 챙겼고 주말이나 방학 때는 내가 병원에서 언니를 맡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을 막 마친 아이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며 집과 사회 안팎으로 기능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졌다. 마치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는 것과 같았기에 나의 기능성과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힘


    하지만 불안은 내 마음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나니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면서 정작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가치는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돌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찬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이제는 촘촘히 막아놓은 커튼 사이로 기어코 햇살이 내 방을 침범하는 시간까지 누워있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들어진 음식을 급하게 먹고 오던 날들은 좋아하는 음식의 재료를 썰고, 볶고, 끓이고 맛을 음미하는 날들로 바뀌었다. 늦은 밤 택시 안에서 눈을 감은 채 돌아오던 시간은 집 앞 자전거를 끌고 강변으로 나가 노을의 느슨함을 즐기는 시간으로 전환되었다. 아직도 가끔 불쑥 불안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땐 다시 이야기해 준다. 이제는 그래도 된다고, 그저 존재 자체로도 충분하니까 잠시 쉬는 것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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