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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n 22. 2020

여긴 꼭 가야 해, 환기미술관

실제로 봐야만 느껴지는 것들

얼마 전 떠들썩하게 tv에서 나오던 작가의 이름이 있었다.

한국 미술사 새로 쓴 김환기 ‘우주’ 국내인 최고가 ‘132억 원’ 낙찰

그때 낯설면서도 낯익은 작품들이 화면을 따라 지나갔다. 그리고 아름답게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김환기 작가가 그의 아내에게 쓴 편지를 수록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나는 이 책에서 참 좋았던 것이 한 위대한 작가와 그를 내조한 아내 향안여사의 관계가 단순히 '내조'가 아닌 또 다른 도전과 성취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먼저 파리로 가 자리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그 도전정신 (그저 내조로만 표현하기엔 능력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점점이 찍힌 그림을 사진 속에서만 보다가 언젠가 향안여사가 만든 환기미술관에 가봐야지 하고 마음으로 점찍어 두었다.





환기미술관은 아주 접근성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나의 경우는 좀처럼 그 근방을 갈 일이 없다가 보통의 거짓말이라는 전시를 보러 석파정 서울미술관에 들렀는데 근처라 검색해보니 불과 500m도 안 되는 곳이었고 그렇게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올라가는 길은 고즈넉하니 조용하고 이런 곳에 과연 미술관이 있는 걸까 싶은 가정집들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지도에 난 화살표를 따라가니 옆으로 조금씩 작은 갤러리가 드문드문 있고 저 멀리 환기미술관의 자태가 보인다!

생각보다 크고 웅장해 마음이 두근두근. 사실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고 그림으로 볼 때 크다고 듣긴 했지만 어느 정도 일지 감도 오지 않았다. 거기다가 칸을 그리고 점을 찍는 단순 반복의 추상화가 왜 그렇게까지 높은 금액을 받은 걸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깊게 깔려있었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그림 무식자이며 그냥 내 식대로 보고 느끼는 그게 전부인 것이다.) 좋다고 하니 궁금했고 나는 두 분의 관계가 참 좋아서 절로 그림이 궁금해진 일 인일뿐이었다.

익숙한 작업환경의 사진. 책에서 본 바로 그분이다!

환기미술관은 크게 세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메인 전시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 전시 작품들은 그때그때 교체하시는 것 같은데


거두절미하고 나는 들어가자마자 "와-" 탄성을 내뱉아 버렸다. 그림의 크기와 색감이 주는 이 엄청난 기운! 그것에 압도되어 바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주 새파란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짙은 남색도 아닌 오묘한 청록으로 뒤덮인 점과 선의 조화, 그리고 그 사이에 번진 듯하면서도 꼭 실타래를 묶었다가 염색을 해서 푼 것 같은 하얀 선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작품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염없이 서서 가까이 갔다 뒤로 나왔다 보게 되는 작품. 앞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게 의자도 있다. 거기 하염없이 앉아 보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중앙 통로를 높게 끝까지 뚫고 ㅁ자로 구성된 미술관은 마치 리움미술관처럼 동그랗게 돌아 걸어 올라가며 한 층씩 관람하게 되어 있었다.


추상화는 본디 참 그리기 쉬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걸 내가 생각해내지는 못할 것 같고 그냥 느낌으로 나에게 좋으면 그만인 것이다. (다만 나는 원형공포증(?)이 있는 이들은 이 작품을 보기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작품 사진 촬영은 안되기에 아무도 없는 전시관을 한층 한층 올라가며 행복하게 감상에만 전념했다.

나와서 살짝 다른 건물로 가보니 단층의 수향 산방에선 김환기 작가가 작품에 종종 모티브로 삼았던 하트 모양의 작품들을 모아 성심전을 열어놓았고 어머니를 잃었을 때의 비통함이 담긴 작품, 뉴욕 작업실을 재현해 둔 공간들이 있어 흥미로웠다.

날도 좋고 작품도 좋고 사람도 없어 더더욱 행복했던 시간.

때때로 왜 미술관에 가서 직접 그 작품을 봐야하나란 물음이 들 때 (요즘처럼 sns가 발달해서 원하면 언제든 모든 작품이든 공간이든 다 볼 수 있음에도) 직접 본다는 것, 직접 보았을 때 느껴지는 그 아우라를 느끼게 되는 이 순간, 정말 한 번씩 이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바로, 이 곳처럼 말이다.


@2020,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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