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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May 30. 2021

기괴한 위로와 성장, <혼자 사는 사람들>(2021)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 (Aloners, 2021)

© ㈜더쿱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 JTBC 예능 ‘독립만세’ 등과 같은 문화 콘텐츠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언론 매체에서 ‘1인 가구’ 이슈를 지속해서 다루고 있다. 게다가, ‘코쿤족’, ‘사이버 코쿤족’와 같은 신조어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분명 ‘홀로족’은 2010년대부터 이어진 대한민국의 주거 및 문화 관련 핵심 트렌드다. 홍성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은 다양한 세대의 1인 가구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으로, 누구도 나에게 영향을 주면 안 되고, 나도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내면을 주인공 진아(공승연)를 중심으로 접근한다. 홍성은 감독은 화려한 기교보다 다양한 현실적인 질문과 직설적인 접근 태도로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에 더욱 극심해질 사회문제를 고찰함으로써 종반부에 전하는 작별 인사의 역설을 설득해낸다. 이와 같은 홍성은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력과 섬세한 시각 덕분에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2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들>에는 떨쳐낼 수 없는 기괴함이 자리 잡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공포, 스릴러 등과 같은 장르 문법의 자장 아래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는 단순히 전반적인 톤 다운과 어둠이 짙게 깔린 공간적인 세팅 때문만이 아닐 테다.


© ㈜더쿱

주인공 진아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외도와 이를 무기력하게 놔두는 엄마 때문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걸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인물이다. 진아는 혼자서 온전해지기 위해 20살이 되자마자 독립했고, 일상생활에서 타인이 본인의 영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틈을 내주지 않는다. 심지어 진아의 직업은 직장 동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콜센터 직원이다. 신수원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2019) 속 콜센터 현장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의 콜센터 공간은 완전히 밀폐되지 않았지만, 양쪽에는 칸막이가 있고 업무상 계속 헤드폰을 껴야 하므로 폐쇄성을 추구하는 진아에게는 적합한 환경이다. 아울러 진아는 마음속에 단단한 장벽을 세우고 사는 삶을 혼자서도 잘 사는 삶으로 포장한다.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시킨 채 출퇴근하는 장면, 복도에서 흡연 중인 이웃의 인사를 무심히 지나치는 장면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진아는 보통 거실과 부엌에 있어야 할 가구와 생필품을 침실에 몰아넣음으로써 본인의 시야가 세상에 도달하는 것을 원천 봉쇄할 뿐만 아니라 항상 커튼을 쳐 두고 암흑과 적막을 평온과 안정이라고 믿으며 생활한다. 즉, 진아는 자기감정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 일절 없다. 이렇게 세세히 연출된 진아의 하루는 홍성은 감독이 1인 가구의 삶을 과장했기는커녕 리얼리즘 이상의 리얼리즘을 일컫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 ㈜더쿱

그런데 이와 동시에 진아는 외로움과 맞서 싸우고 있는 인물이다. 단적인 예로 매일 TV를 켜둔 채 잠자리에 드는 장면이 있으며, 죽은 옆집 남자가 죽기 전의 모습으로 “인사라도 해주지”라고 말하자 진아가 미세하지만 섬뜩하게 놀라는 반응을 보여준 액션 숏과 리액션 숏도 그 예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진아가 바득바득 스스로 고립시키고 타인과의 인사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과거의 상처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유년 시절의 진아는 부모님 때문에 상당한 내면의 상처를 입었다. 피상적으로 진행되는 내러티브 타임에서는 알 수 없으나, 진아의 아버지(박정학)의 진술을 토대로 내러티브 타임을 재배치한 스토리 타임을 상기하면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가족을 버렸고, 엄마는 화를 내거나 복수하기는커녕 무기력하게 남편이 없는 공간을 지킬 뿐이었다. 갑자기 생활이 불안정해졌으나 그 누구도 어린 진아의 상처받은 마음을 돌봐주지 않았기에, 진아는 서서히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걸 꺼리게 되었다. 게다가, 스토리 타임을 통해 관객은 진아가 얼마 전 엄마의 장례식 때 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부모가 미워서 성인이 된 후 집을 떠난 진아지만, 홈캠을 설치하며 엄마를 멀리서 지켜봤다. 홈캠은 엄마를 혼자 버리고 도망친 본인을 합리화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이와 동시에 진아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근데 만약 장례식장에서 진아가 눈물을 보인다면, 굉장히 싫은 아버지 앞에 자신의 죄책감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타인과 단절된 삶을 훈련하고 실천했던 진아의 단련된 심신은 그녀를 냉정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날 진아의 주변에 발현된 공포와 불안이 그녀를 자극했고, 이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기괴한 위로와 성장의 출발점이다.


©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의 기이한 따뜻함을 파고들기에 앞서, 장르 컨벤션의 차용 및 이동을 잠깐 논하자고 한다. 현대 영화가 장르의 컨벤션화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서스펜스 문법으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2002)를, 카림 아이노우즈 감독은 더글라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문법을 차용해 정치 영화 <인비저블 라이프>(2019)를,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공포, 야쿠자, 코미디 장르 등을 작품의 동력원으로 삼아 <퍼스트 러브>(2019)라는 특이한 청춘 영화를 탄생시켰다.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경향과 연관 있어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은 공포, 스릴러 등과 같은 장르의 문법을 리얼리즘 영화의 영역에 옮겨 재해석한 작품처럼 다가온다. 장례식 이후, 진아는 다시 홈캠으로 유년 시절의 집에서 생활 중인 아버지를 모니터링한다. 왜냐하면 진아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아버지에게 떠넘길 건더기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홈캠으로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진아와 홈캠을 잠깐이나마 미심쩍게 바라보는 아버지 간의 서스펜스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1954)을 연상케 한다. <이창>에서 제프(제임스 스튜어트)는 카메라 렌즈로 부인을 살해한 이웃집 남자를 훔쳐보고, 알프레드 히치콕은 이런 상황이 만든 서스펜스로 스크린 밖 관객의 도덕을 시험한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서스펜스는 관객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일어나는 감정적인 요동을 통해 여태껏 견고하게 밀봉되어 있던 진아의 불안과 외로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 ㈜더쿱

그리고 옆집 남자의 고독사 소식을 들은 진아는 비로소 타인과 단절된 세계 안에서 본인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직시한다. 그와 동시에 진아는 주변에 본인처럼 혼자 사는 사람, 타임머신을 타고 모두 하나가 되어 응원의 함성을 질렀던 2002년으로 돌아가려는 혹은 죽음의 경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남성 등이 배회하고 있음을 뒤늦게 자각한다. 더는 진아는 감정을 감출 수 없는 상황에 빠졌고, 그 순간 다시 한번 장르의 탈(脫)컨벤션이 일어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퍼스널 쇼퍼>(2016)에서 본업은 퍼스널 쇼퍼지만 영매로도 활동하는 주인공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등장한다. 모린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본인과 타인 사이에 선을 그으며 슬며시 고립을 자처한다. 그러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불특정한 유령 혹은 영혼의 시점 숏과 모린의 반응 숏을 지속해서 교차 편집함으로써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후 숨겼던 외로움을 인정하고, 회복과 위로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모린의 이야기를 섬뜩하게 다룬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외로움과 불안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진아의 모습을 그려낸다. 옆집 남자의 고독사가 언론에서 드러나기 전까지, 비가시적인 존재의 시점 숏과 진아의 반응 숏이 오갔음에도, 진아는 다른 혼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 중인 혼자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진아는 본인 곁에서 흐르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게 싫어서 쌓아 올렸던 고독의 벽 때문에 본인과 타인의 마음을 모두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나날에 눈물을 흘린다. 특히, 콜센터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이 어떤 고객의 허무맹랑한 타임머신 이야기에 귀담는 모습을 옆에서 본 진아는 20살 이후 혼자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인정한다.


© ㈜더쿱

무엇보다 진아는 고독사한 남성의 집에 새로 이사 온 성훈(서현우)를 통해 작별 인사에 대한 용기와 새로운 관계들을 향한 열린 마음을 배운다. 성훈은 진아의 고독사한 옆집 이웃을 본 적 없지만, 그 사람을 위해 다른 이웃들과 제사를 지낸다. 성훈은 단 한 번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이라도 어떻게든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관계성을 생각해서라도 이승을 편히 떠나도록 돕는 게 자기 책임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진아는 그런 성훈의 삶과 관계에 대한 태도를 통해 만남과 이별에 관한 두려움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고, 작별 인사는 어떤 관계를 종료하는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훈과의 만남을 기점으로 진아는 무심하게 대했던 수진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작별 인사를 건넨다. 이제 이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기 시작한 진아는 스스로 형성한 폐쇄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관계들에 마음을 여는 출발점에 선다. 이별이 더는 무섭지 않기에 만남도 두렵지 않은 진아는 퇴근길 버스에서 스마트폰이 아니라 버스 밖 풍경을 바라본다. 창밖 풍경을 음미한다는 행위는 진아가 세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현재의 삶에 온전하게 살아갈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장르의 탈(脫)컨벤션으로 기이한 위로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냈고, 작별 인사에 대한 관점을 뒤집음으로써 만남, 이별, 관계, 그리고 삶을 모두 아우르는 이야기를 완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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