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서울국제여성영화제:새로운 물결 상영작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
-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
미국 인디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켈리 라이카트는 <어떤 여자들>(2016)을 제외하면 오리건주의 현대적인 공간이 아닌 광활하고 조용한 풍경 속 인물들의 일상과 시간을 다뤄 왔다. 또한, 그녀가 그려낸 인물들은 빈곤, 노동, 거주 등 다양한 문제를 겪지만, 그들 모두 어떻게든 감당해내려고 노력하며 각자의 시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예시로 버디 로드 무비 <올드 조이>(2006)에서 곧 아빠가 될 커트(윌 올드햄)는 마크(다니엘 런던)와의 소원해진 우정을 회복하고자 함께 숲 트래킹을 떠난다. 켈리 라이카트는 두 인물이 경로를 이탈하고 재탐색하는 와중에 발생하는 접촉을 관조한다. 그리고 관조가 빚은 단단한 이미지들의 향연은 그들이 우정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극적 장치도 없이 더욱더 강렬하게 만든다. 또 다른 버디 무비 <웬디와 루시>(2008)에서 홈리스 웬디(미셸 윌리엄스)는 일자리를 얻고자 반려견 루시와 함께 알래스카주로 향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방랑자>(1986)의 주인공 모나(상드린 보네르)처럼 웬디는 계속 길 위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웬디는 알래스카에 도착만 한다면 본인이 그토록 바라던 루시와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웬디는 자신을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리건주에 묶일뿐더러 루시마저 잃는다. 무엇보다 건조한 풍경은 웬디가 이곳에서 전진하기 어렵다는 걸 명징하게 보여주기에 굉장히 야속하다. 그렇지만 <웬디와 루시>의 카메라는 웬디가 고군분투한 시간만이라도 쉽게 증발하지 않도록 매 풍경에 서려 있는 그녀의 감정을 일절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마지막 예로, 몬태나주를 배경으로 한 <어떤 여자들>에는 고정된 사회적 지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네 여성 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 지나(미셸 윌리엄스), 로라(로라 던), 그리고 제이미(릴리 글래드스톤)가 등장한다. 이들 모두 어떤 선택이든 주저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이들 모두 자기가 처한 고독한 상황을 회피하기는커녕 묵묵하게 걷는다. 특히 네 여성의 발걸음 소리는 몬태나주의 건조하고 어두운 풍경 한가운데에서 울리고, 이들은 그렇게 각자의 삶과 존재감을 조용히 쌓는다.
켈리 라이카트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 <퍼스트 카우>는 <올드 조이>, <웬디와 루시>, <믹의 지름길>(2010), 그리고 <어둠 속에서>(2013)의 시나리오를 함께 작업했던 조나단 레이몬드의 소설 「The Half Life」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퍼스트 카우>는 1820년대 서부 개척 시대의 오리건주를 배경으로 한 서부극이지만, 존 포드, 하워드 혹스 감독 등이 연출한 남성적인 서부극과 거리가 굉장히 멀다. 또한, <퍼스트 카우>는 <올드 조이>와 <웬디와 루시>처럼 우정을 핵심 테마로 삼는다는 점에서 서부극의 전형에서 벗어났다. <퍼스트 카우>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사냥꾼 무리에 의해 고용된 유대인 요리사 쿠키(존 마가로)는 한밤중에 숲에서 벌거벗은 채 숨어 있는 중국인 이민자 킹 루(오리온 리)를 마주친다. 쿠키는 그런 킹 루에게 따뜻한 옷과 잘 곳을 챙겨 준다. 다음날 헤어진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고, 성격과 기질이 아주 판이하지만 친한 친구가 된다. 쿠키와 킹 루 모두 백인 미국인이 아니기에 어떤 우대나 권리도 바랄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빈곤에 허덕인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한 삶을 개척하기 위해 대지주 팩터(토비 존스)가 들인 ‘퍼스트 카우’의 젖을 몰래 짜낸 다음 그걸로 튀긴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튀긴 빵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쿠키와 킹 루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줄 알았으나, 입소문이 팩터의 귀까지 들어가 위기에 맞닥뜨린다. 이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퍼스트 카우>는 서부 개척 시대 당시 비주류 사회로 밀려난 쿠키와 킹 루의 실패담을 다룬다. 그렇지만 위에 인용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켈리 라이카트는 두 사람의 실패 이야기가 아닌 우정에 관심을 둔다.
<퍼스트 카우>는 1.37:1 화면비의 스크린 왼편에서 바지선 한 대가 들어오며 시작한다. 픽스된 카메라는 한동안 익스트림 롱 숏으로 바지선이 스크린 오른편으로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이후 바지선이 스크린에서 사라지자 황량한 숲이 바로 카메라에 들어온다. 다음 숏에서 숲으로 이동한 카메라는 갑자기 땅을 파기 시작하는 검은 개 한 마리를 발견한다. 뒤따르던 견주는 그곳에 무언가가 묻혀 있는 게 보이자 맨손으로 흙을 더 파낸다. 이어서, 견주가 뒤로 물러서자 그녀의 시점 숏에 포착된 건 무려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쿠키와 킹 루의 백골이다. 이처럼 죽음의 이미지가 켈리 라이카트의 필모그래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도 낯설지만, 유골 두 구를 발견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도리어 고요히 지켜보는 모습에 몹시 당황스러울 뿐이다. 심지어 카메라가 로우 앵글 숏의 위치로 이동하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반갑다는 듯이 새 여러 마리가 경쾌한 지저귐과 함께 날갯짓하며 등장한다. 그리고 새들의 활발한 모습이 백골에 연동되는 순간, 관객들은 죽음의 이미지로부터 평화와 온기를 감각하는 아주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켈리 라이카트는 단순하고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점프 컷을 통해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리할 겨를도 없는 관객들을 1820년대 서부 개척 시대로 안내한다.
두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노란 버섯을 채집 중인 쿠키가 먼저 등장한다. 쿠키는 몸이 뒤집힌 작은 도마뱀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도울 만큼 섬세하고 친절하다. 게다가 쿠키는 식자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블루베리, 버섯 등을 채취하며 요리사로서 맡은 바 임무를 해내는 성실한 인물이다. 비록 사냥꾼들은 서부 개척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쿠키를 무시하지만, 쿠키는 위축되지 않고 소임을 다하려고 애쓴다. 밤에 숲을 돌아다니던 쿠키는 맨몸으로 떨고 있는 중국인 이민자 킹 루를 만난다. 킹 루의 몰골을 본 쿠키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자신의 안식처를 하룻밤 공유한다. 다음날 날이 밝자 킹 루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졌고, 사냥꾼 무리를 떠난 쿠키는 새 부츠를 신고 대지주 팩터가 관할 중인 마을로 향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쿠키가 정말 반가운 킹 루는 자기 집에 데려가 지난밤 호의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할 겸 술 한 잔을 대접한다. 그러고 나서 킹 루는 불 지필 준비를 하겠다며 밖에 나가 장작을 패기 시작하고, 쿠키는 가만히 있기 민망해 빗자루로 바닥을 쓸며 가사노동을 분담한다. 이때 켈리 라이카트는 문과 창문을 프레임으로 삼아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다. 일반적으로 서부극에서 문과 창문은 무법자들의 세계를 넘나드는 통로이자 위계질서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메타포다. 그러나 켈리 라이카트는 문과 창문을 활용해 쿠키와 킹 루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진정한 만남을 축복한다. 만약 두 사람이 가사 분담하는 장면을 문과 창문 없이 연출했다면, 전경에 있는 쿠키와 후경에 있는 킹 루 간의 시각적 경계가 너무 선명해졌을 테다. 더 나아가, 두 사람 간에 좁힐 수 없는 심리적 거리가 있다는 해석이 도출될 수밖에 없을 테다. 하지만 문과 창문을 이용한 단순한 연출은 두 인물이 동일한 층위에 서 있는 듯한 시각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평온한 우정을 이끌어 낸다.
이를 기점으로 <퍼스트 카우>의 1.37:1 화면비는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비좁은 화면비 덕분에 촛불 하나만으로 킹 루의 어두운 집안이 순식간에 환해질 뿐만 아니라 온기가 서서히 퍼진다. 아울러 두 사람의 소소한 농담과 교차하는 시선이 아름답게 포착된다. 구체적인 예로 숲길을 걷다가 미지의 무언가를 발견한 쿠키와 킹 루의 장면을 들 수 있다. 쿠키가 미지의 것을 그저 오래돼 보인다고 말하자, 이에 킹 루는 웃음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이는 킹 루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본인의 눈을 쿠키에게 공유하는 장면으로, 좁디좁은 화면비가 있었기에 아름다운 순간이 밀도 있게 포착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37:1 화면비는 인간과 동물이 교감을 나누는 순간까지 따사롭게 간직한다. 무엇보다 좁은 화면비 덕분에 교감이라는 언어를 매개로 서로의 상실과 고통을 동위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쿠키와 ‘퍼스트 카우’의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카우> 속 만물의 우정은 트래킹 숏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로부터 계속 위협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트래킹 숏은 딥 포커스 형성을 거부하고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한 소외 효과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켈리 라이카트의 작품 세계에서 트래킹 숏은 인물들이 풍광을 음미할 기회를 빼앗는 자본주의의 잔혹성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영화 언어다. 예를 들어, <웬디와 루시>에서 켈리 라이카트는 돈이 없어서 구매할 수 없는 물품들, 위협적으로 빨리 달리는 화물 열차 등을 트래킹 숏으로 찍음으로써 세상에 정을 붙일 기회조차 없는 웬디의 일상을 형상화했다. <퍼스트 카우>의 트래킹 숏도 <웬디와 루시>와 일맥상통한다. 중반부에서 <퍼스트 카우>의 트래킹 숏은 쉴 틈 없이 오가는 ‘손님들에게 튀긴 빵을 건네는 쿠키와 킹 루의 손’과 ‘값을 지불하는 손님들의 손’만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켈리 라이카트는 쿠키와 킹 루의 평안을 무시할뿐더러 계속 기계처럼 노동하기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기계성을 이야기한다. 이에 덧붙여, 보통 숏과 리버스 숏은 인물 간의 대화 장면에서 연속성을 위해 이용되지만, <퍼스트 카우>에서만큼은 두 사람을 향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암시한다. 구체적으로 나무 위에서 위태롭게 망을 보는 킹 루와 아슬아슬하게 우유를 짜는 쿠키의 장면에서 숏과 리버스 숏은 연속성이 아닌 서스펜스에 초점을 둔다. 그 결과 쿠키와 킹 루의 투 숏이 형성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소박한 평화가 곧 산산이 부서질 것임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팩터가 튀긴 빵의 비밀을 눈치챈 순간부터 두 사람의 투 숏은 한동안 찾기 어려워진다.
후반부 밤에 평소처럼 ‘퍼스트 카우’의 젖을 짜던 쿠키와 킹 루는 결국 팩터와 그의 부하에게 들켜 쫓기기 시작한다. 킹 루는 재빨리 허드슨강 하구로 도망친 반면, 나무에 걸려 넘어진 쿠키는 정신을 잃는다. 날이 밝자 킹 루는 바로 귀가하지만, 그새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더는 이곳이 안전하지 않으므로 킹 루는 나무 틈에 보관한 돈 자루를 챙겨 피신하려는데, 마침 쿠키도 아픈 머리를 이끌고 돌아온다. 쿠키는 “네가 떠난 줄 알았어”라고 말하자 킹 루는 “난 자네가 떠났나 했지”라고 하며 덥석 안는다. 비로소 두 사람의 투 숏이 다시 나타났고, 이들은 최대한 멀리 도망가기 위해 끊임없이 숲길을 걷는다. 허나 뇌진탕 증상을 호소하는 쿠키의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킹 루는 쿠키를 보호하고자 잠깐 휴식을 택한다. 킹 루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거 같은 곳에 쿠키를 눕히고, 본인도 쿠키의 어깨에 기대 잠깐 눈을 붙인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귀한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계속 롱 숏을 유지하고, 그새 이들의 주변에 평온이 정착한다. 사실 쿠키와 킹 루가 한집에서 지내는 내내 단 한 번도 잠자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가난한 삶을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기에 밤낮으로 노동하느라 피로를 풀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관조하던 카메라를 비롯해 올빼미, 돌멩이, 도마뱀 등 수많은 생물과 무생물은 두 사람의 잠이 아주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침묵을 지킨다. 심지어 만물의 눈동자들은 거룩한 우주를 이뤄 쿠키와 킹 루를 보듬어 주고, 두 사람은 마치 이 사실을 아는 것 마냥 미소를 머금는다. 이처럼 만물과 풍경이 두 사람의 소소한 행복과 아름다운 우정을 200년이 넘는 세월 내내 에워싸며 지켜줬기에, 오프닝에서 견주와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들 모두 유골 두 구를 보고 충격은커녕 위안과 평화를 경험했다. 더 나아가, 새와 거미와 달리 인간에게 집이 아닌 우정이 필요하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에는 현대인의 피폐해진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건 누군가와의 만남 및 교류가 피운 감정이라는 해답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