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비밀>
그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는 마음은 너무 슬프다.
영화든 책이든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면서 가장 감탄하는 순간 중 하나는 어떠한 판단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을 때다. 그것이 단순히 문제 해결의 순간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의 순간일 때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감정을 구분할 때 의외로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희로애락으로 설명하거나 <인사이드 아웃>도 캐릭터 네 명으로 풀어가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그 몇 안 되는 감정조차도 어떤 것이 맞는지 판단을 못하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과 사회, 관계와 삶의 복잡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점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탁월하게 감정을 비틀어놓았다. 짧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 속에서도 그 어떤 감정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도록 뒤섞어 놓았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내 그 불쾌함의 강렬한 만큼 슬픔이 따라오도록 만들어두었다.
그럼에도 소설은 난잡하지 않다. 결말의 문제나 고민은 사건이 시작된 순간부터 충분히 나올 법한 것들이지만 철저하게 숨겨두었다. 그리고 두세 명의 인물의 두세 가지 감정으로 챕터를 잘 나누어두었다. 그래서 정말 한 단계 한 단계씩 빠져들어가 버릴 수 없도록 말이다. 처음엔 나오코 혼란이다. 딸이 되어버린 엄마. 자기의 삶이 아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것. 차차 아내이지만 딸이 되어버렸기에 아내도 딸도 없는 남편이자 아빠, 그리고 다에코 선생님을 곁들인 남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아빠의 삶은 피해자의 삶이기도 해 층위를 넓히는데, 세이코 부인과 이쓰미의 등장으로 이어진 가해자의 가족들과 이야기는,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로 남겨두지 않고 복잡한 마음의 미스터리를 쌓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감정들은 무척이나 세심하고 슬프다. 마음은 무거워지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 누구 하나를 마음 편하게 비난하지도 못한 채, 응어리처럼 모두에게 남아버린 슬픔과 비극에 분노와 연민이 넘쳐난다.
그렇게 꽤나 재밌는 소설 정도인데 아직 반이나 남았네? 싶을 때쯤 어쩌면 진짜의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위의 고민들과는 다르다. 처절하고 비참하고 불쾌하기까지 한 헤이스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그 어떤 감정도 명확하게 가지고 살 수 없다. 분노에는 죄책감이 따르고, 질투에도 죄책임 따르고, 그러나 죄책감을 따르지 않는 치졸함과 집착도 이어진다. 매 순간 잘못된 선택과 올바른 선택을 구분할 수 없는 그의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보는 자초자도 답답하고 짜증 나고 불쾌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진다. 그리고 나오코가 모나미의 삶으로 점점 멀어갈 때쯤, 그래서 헤이스케의 감정이 짙어질 때쯤, 이 모든 이야기는 나오코이자 모나미의 자살이라는 비극이 아니면 끝낼 수 없다는 생각조차 하게 되었다. 그만큼 헤이스케는 처절했고, 나오코를 놓아줄 수 없었다.
그런데 끝난 줄 알았던 네기시 노리코의 등장과 그녀가 밝히는 과거 이야기의 등장으로, '아... 이렇게 마무리가 가능하구나.' 싶었다.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할 헤이스케에게 이렇게 정답을 알려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어쩌면 뻔한 대답, 어쩌면 많은 독자들이 겪어보지 않았기에 쉽게 바랐던 대답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쪽을 선택해준다는 발상이 없었다"라는 가자카와 유키히로의 대답. 그렇게 소설의 구조가 짜임새가 좋구나...라고 생각하려 하는데, 모나미가 등장했다. 그리고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무책임한 방식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기우였고 더 철저하게 짜여진, 소설 후반부에 마치 새로운 단편소설을 만난 것처럼 새로운 3인 가족 이야기들을 보면서 소설이 끝나지 않기를, 이 3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었고, 딱 그만큼이 나오코에게 남겨진 만큼이란 건 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책과의 이별, 또 나오코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는데 정말 막판에 몰아진 결말은 다시금 이 소설이 나를 하나의 감정에 몰입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헤이스케와 나오코의 그간의 대화와 관계, 감정들을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 어느 인물을 떠올리더라도 슬펐다. 그리고 이제는 고민조차 끝났다는 것이 슬펐다. 이후의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늦은 밤 절반씩 나눠서 읽었다. 꽤나 몰입했던 것 같다. 쉽게 쓰여져서 빨리 읽었고, 대체로 슬펐다. 눈물도 많이 났던 것 같다. 지금 책을 다 읽고 나서 많은 인물들이 떠오른다. 누구 하나 화나거나 미운 사람은 남지 않았다. 책 속 말고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이란 건 알지만, 어딘가에서 그래도 잘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분명 같이 슬펐지만 이제 덤덤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감정이 크게 담겨 있어서 그럴까. 아주 잘 짜여진 상상력과 구조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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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장 쓰이고 안타까워서 한 번쯤 더 등장하길 바랐던 건 이쓰미다. 나오코와 모나미에게 일어난 미스터리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잊혀진 것이지, 가장 슬픈 건 이쓰미다. 헤이세키, 모나미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기차를 기다리다 그들이 손을 흔들어주자 펑펑 울던 이쓰미의 장면은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가장 슬펐고 쉽게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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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한창 히로스에 료코가 주가가 높은 시절에 분명히 너무 유명했던 영화다. 대충 이야기도 알았다. 뻔하고 최루성 멜로라고만 생각하고 20년이 지난 것 같다.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도 제목이 밋밋하다고 생각했다. 뒤늦게야 엄청난 책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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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과 영화를 보다 보면 확실히 '이상하다'거나, '선을 넘었다'거나 '변태스럽다'는 지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면들에서라도 일본 영화와 소설이 내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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