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리움> 영화리뷰
이 영화는 어쩌면 속빈 강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별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뭐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유 없는 현상들이 많은데 보고나면 헛헛하다.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실제로 일어날법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주인공 커플이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어서 발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에 호소하는 면도 없다. 미스테리라고 하기엔 설정의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고 억지스러워서 공포에 집중하지 못하고 김새는 장면들이 한둘이 아니다. 결국 다시 돌아와 텅빈 내용에 '뭔 내용이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좀 더 고민해보면 처음에 오프닝 영상 중 뻐꾸기가 나오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뻐꾸기가 죽인 (아마도)뱁새의 새끼를 묻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뻐꾸기는 남(뱁새 등)의 둥지에 알을 낳고 사라지는데 그럼 뻐꾸기 새끼는 이미 태어난 뱁새의 새끼나 알을 둥지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뱁새 어미는 뻐꾸기를 자기 새끼인줄 알고 먹여키운다. 덩치가 이미 몇 배나 커지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뱁새는 독립할 때까지 키운다.
상징적으로 맞춰보자면 톰과 젬마는 뱁새고 마틴은 뻐꾸기인 셈이다. 98일 밖에 안됐는데 신생아가 대여섯살된 꼬마가 된다든지, 톰과 젬마는 크게 변화가 없는데 이미 장성한 어른이 된다든지 하는 것은 빨리 자라는 뻐꾸기를 표현한 듯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전세대 마틴 역시 짧은 시간 안에 확 늙어있는 것도 다른 이 마틴들이 다른 종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마틴이 젬마에게 넌 엄마고 여기는 집이라고 하는 것이라든지, 젬마 역시 자기 아이가 아닌 걸 알지만 밥을 먹이고 재우면서 양육하는 모습도 모두 뻐꾸기 현상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상징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첫 장면에서 땅에 떨어져 죽은 뱁새의 새끼를 톰이 땅을 파 묻어주는데, 욘더에서 톰이 스스로 묻힐 땅을 파고 거기에 묻힌는 장면이다.
영화에 앞서 뻐꾸기의 행동을에게 물어보자. '왜 그러는 것인가?' 여러 학계의 연구가 있겠지만 우리의 도덕윤리로 판단해보자면 어차피 대답없이 질문만 맴돌 뿐이다. 자연은 그냥 그런 것이다. 왜 나쁜 짓을 하는 거야? 왜 무섭게 그러는 거야? 이건 뱁새의 입장이겠지만, 뻐꾸기는 그냥 그게 우리의 본능이고 우리의 삶의 방식일 뿐이다. 라고 말할 뿐이다. 기생충이 우리에게는 나쁜 것이지만, 기생충은 그저 기생충으로서 살아갈 뿐이다. 다만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런 자연이 무섭고 잔인해보일 뿐이다. 이유를 모르니 두렵고, 그러니 무섭다.
그럼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욘더'라는 마을은, 그리고 직원 '마틴'은 왜 톰과 젬마, 그리고 다른 커플들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특별히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이해안되는 장면이 많다. 들어온 길을 나갈 수도 없고, 불을 태워도 집은 복구된다. 마틴이 땅을 열고 도망치는데 따라간 젬마는 갑자기 다시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뱁새가 뻐꾸기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이 그저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가 자연의 이유를 모른채 현상을 그저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욘더에서의 삶은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재밌는 점은 영화라는 매체다. 간단한 뻐꾸기의 이야기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신기하고도 불쾌하고 무서운 기분을 100분짜리 영화로 만들었다. 별 것 없는 짧은 내용을 온갖 설정과 세트와 컨셉을 만들어 새로운 공포와 불쾌함으로 만들어 냈다. 집을 구하기 힘들지만 내집마련의 꿈은 꾸고 사는 그 마음을 조금 덧대긴 했지만 말이다. 별 게 없고 내용이 없다고 해도 몰입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영화다. 물론 그런 미스테리 속에서 통쾌한 해답이 나오는 것들도 있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자연을 그대로 가져와서 영화만의 방식으로 늘리고 확장하고 새롭게 표현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수백명, 수천명의 사람이 이 컨셉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또 생각하고 얘기한다.
결국 내용이 있든 없든 작은 것에서 새로운 것들을 창작해내는 영화의 매력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영화다. 이모겐 푸츠의 강렬한 눈빛과 연기도 기억에 남고 민트색의 정말 비자연적인 느낌의 욘더도, 불쾌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연민이 가는 마틴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한 번 보고는 인상적인 영화다. 그러나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속빈강정인 영화인 것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