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트> 영화리뷰
영화를 보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 또 무척이나 많아진다. <홀리모터스>를 보고는 그 괴작이 어쩌면 하나의 영화에 대한 아주 깊고도 또 처절한 고뇌와 유머가 감긴 영화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엔 자신의 분신,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에 대한 오마주와 자기 스스로에 대한 고뇌까지 엮여 있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영화와 현실, 허구에 대한 고민을 총집합했다고 봤고, 그 시도는 내러티브를 넘어선 구조로 접근하는 아주 능숙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기가 막힌 메타영화 <홀리모터스>)
그런데 <아네트>는 좀 더 멀리 가버린 것 같다. 심연이라는 단어를 수십 번 외치지만 사실상 그 심연에 잘 닿지 못한 것 같다. 영화감독으로서 또 딸의 아빠로서의 고민, 혹은 고뇌가 느껴지기보다는 그것을 단순화시켰다. 무슨 말이 나면, 영화에서 레오 까락스의 고민이나 어떤 스스로의 해답? 혹은 그 해답일 수 있는 생각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대중적이고 쉬운 이야기만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것의 표현에 있어서만 모든 공력을 쏟아부은 것처럼 보인다. 쉬운 이야기와 그 표현에 집중. 이 둘은 우리가 흔히 뮤지컬을 보러 갈 때의 관람객의 기대치와 같다.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을 안 좋아하는데,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고 뻔하고, 표현의 퍼포먼스만은 즐길 만 한데, 그것이 유기적으로 집중도를 가져가는 느낌이 적기 때문이다. 오히려 툭툭 끊긴다고 할까. 그래서 '아, 뮤지컬은 여러 번 보는 사람을 위한 거구나, 저 표현의 다채로움을 즐기면서.'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 영화도 어쩌면 그래버릴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어쨌든 뮤지컬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첫 시퀀스에서 밴드가 배우들로 교체되며 노래가 등장하는데 신선했다. 노래 자체가 좋았다. 거기까진 '뭘까? 어떤 이야기일까?' 기대감이 동반되었다. 그러나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노래들을 본격적으로 부를 때면 결론적으로 지루하다. 그것은 보통의 뮤지컬 관람 때도 마찬가지인데, 대신 조금은 유치하게 접근하는 뮤지컬은 감정을 자극한다. 과도한 연기, 강조된 표현, 쉬운 이야기로 기쁨, 슬픔, 감동 등 쉬운 감정들을 거느려서 말 그대로 감각에 집중시키고 그것이 뮤지컬 관람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 <아네트>의 이야기들은 그러기에는 낯설다. 후반부 안을 죽이고 아네트를 공연으로 이끌어 가면서는 이야기가 좀 쉬워져서 앞서 말한 뮤지컬 형식처럼 관람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쉬운 이야기에 비해 표현은 어렵다.
주제의식 측면만 분석해본다면 여러 인물로 분화된 자아의 충돌과, 그러면서 오는 자아의 혼동이나 충돌, 파괴나 상실을 다루고 있다고도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딸이라는 존재에 까지 그 부작용이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심연과 내적 자아에 가깝고 자기파괴적이고 씨니컬한 유머로 가득한 레오 까락스의 자아인 헨리와, 대중적이고 사회와 연결된 자아, 혹은 예술가인 레오 까락스의 결혼 생활과 같은 사회적 자아인 안으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다. 헨리는 녹색 무대, 자켓, 조명과 자연으로 상징되고, 빨간 사과와 빨간 머리, 빨간 곳으로 안은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문제는 이런 상징적 접근이 이 영화의 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주제의식은 가볍게 펼쳐둔 것 같다. 두 자아의 결합과 충돌, 파괴, 그리고 그 속에서 피해받는 딸과 그에 대한 참회. 이것이 이야기의 주요 이야기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그런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런 이야기의 순간순간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가 10년 보다 더일지 덜일지 모르지만, 결혼과 육아라는 삶의 과정에서 느꼈던 강렬했던 순간들을 표현하고 있다. 강렬한 이미지의 배열로도 표현하고, 맥락 없는 디졸브와 송쓰루 뮤지컬 연출로도 표현된다. 그런데 그런 표현들이 정말 난잡하고 어떤 일관된 스타일이 없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부담스럽다. 난잡하고 일관되지 않고 모호한 연출이나 표현은 예술영화에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메시지나 주제의식이 담고 있는 모호함이나 어려움, 난잡함을 표현하는 상징으로서 역할을 많이 한다. 그러나 <아네트>는 그런 부분에서 고뇌의 깊이나 강렬함이 잘 전달되지는 않는다. 반복해서 말하듯 그 주제 자체는 심플하기 때문이고, 하나의 고민에 집중하기보다는 일대기적으로 훑고만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 이야기는 거장이 아니면 봐주지 못할 만한 영화가 되었다. 거장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해석하려고 노력해서 얻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되는 때에 그래도 되는 영화를 만들었기에 칭찬은 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루하고, 깊게 다가오는 고민이 없었고, 표현조차도 들쭉날쭉해 인상적인 부분들만 존재했다. 노래도 대체로 몇몇 멜로디들은 기억에 남지만, 그 멜로디가 담은 감정은 기억 속엔 없다. 예를 들어, 사랑을 서로 고백하는 노래이자 작곡가가 아네트에게 가르친 그 노래는 아직도 기억에 맴돌지만, 헨리와 안의 사랑의 감정 자체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고, 작곡가의 짝사랑 혹은 불륜도 그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같이 담길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많이들 언급하는 그 미장센조차도 캡처컷의 예쁨도 그렇게 강해서 황홀하기엔 부족하고, 그로테스크하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게 담긴 컷도 약했다. 가장 압도적인 구도는 결국 포스터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분석하는 초록과 빨강조차도 포스터엔 없다. 노랑이 뭔 상징이냐 리뷰어들에게 물으면 의미를 찾아내는데 2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즉, 그 어떤 표현이든 막 던져보는 레오 까락스의 표현실험실이지, 완성된 걸 가져온 자리는 아닌 것 같다.
결국 이 영화는 예술영화계에서는 레오 까락스라는 감독의 존재감과 함께 살아남을 것이다. 뮤지컬? 그 속에 섹스씬? 강렬한 색상 대비? 꼭두각시 같은 아이를 실제 목각인형으로 표현한 참신성? 그 어떤 괴상한 표현이나 실험적인 표현이었어도 평가는 동일했으리라 본다. 다른 숱한 영화에 적용되는 "적절한 표현"같은 것은 이 영화엔 없어도 된다. 목각인형이 아니라 그냥 아이 자체를 침팬지로 했어도, 초록과 빨강이 아닌 흑백으로 전개했더 오 동일했을 것이다. 왜냐면 이 영화는 이젠 뭘 뱉어내도 그것을 해석해야만 하는, 이미 레오 까락스 감독의 명성에 압도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홀리모터스> 만큼의 충격적인 구조나 이야기, 혹은 표현이 없기 때문에 <아네트>로 신규 유입되는 팬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다소 이기적인 이 자전적 영화는 그래서 어떤 충격도, 대중적도 환호는 없이 그저 팬미팅으로 연명해가는 느낌으로 퍽이나 외로워보인다. 그래도 나에게도 이게 좋은 영화인지 나쁜 영화인지 한참을 고민하게 했으므로 별 세 개 정도는 줄 가치는 있지 않나 싶다.
★★★ 할 수 있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