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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Dec 27. 2021

지구 터질 때까지, 지적인 비꼼과 농담 <돈 룩 업>

내 취향이다.  화려한 배우진을 보고 선택했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영화의 내용도 배우의 이름도 아닌 감독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작들이 무엇인지 체크부터 했고, 빨리 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유는 영화의 매 순간의 대사나 이야기 전개, 편집 타이밍들이 의도가 분명한 결정들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정 장면에서 느껴야할 감정을 분명하게 설계하지만, 그것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지점까지만 연출을 하고 과하지 않도록 쿨하게 끊는 것이 취향이었다. 또한 정치, 언론, 사업, 기득권, 미디어, 셀럽, 권력, 부자, 가난한 사람, 대중, 미국 등 가릴 것 없이 대상이 될수 있는 모든 것을 비꼬고 빈정대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그 모든 것의 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지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지칠만큼 이 비꼼의 블랙 코미디는 멈출 줄을 모른다. 그래서 어떤 편한 분위기나 인물의 감정이입, 또는 플롯의 자연스러움과 같이 기본적인 영화의 요소에 몰입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산만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래 산만한 나에게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또 쉽게 또 풍자하고자 하는 나에게는 이 영화는 모든 순간이 즐거운 짤들이었다.


특히 대단한 것은 정치로 시작해 언론, 그리고 비즈니스 업계로 넘어가는 비판의 초점들이 단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가 같은 편인 척 또 다른 편인 척 넘어간다는 점이다. 결국엔 모두가 우리를 실망시키지만, 안 그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강약조절을 통해서 관객들을 컨트롤 한다. 그리고 그 흐름이 굉장히 빨라서 실망을 시켰다가도 다시 등장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요소가 된다. 특히 그 변화가 놀라운 건 백악관인데, 영화 내에서만 두세번 정도 빠른 변화를 통해서 어쩌면 수동적인 주인공 과학자 그룹들을 이랬다 저랬다 가지고 논다. 정치와 미디어로 진실을 모독하고 농락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보여줬을 때, 돈 논리의 끝판왕인 비즈니스가 등장해 이 모든 정리를 "돈" 중심으로 결론지었을 때 정말 관객조차도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만큼 지독하게 풍자한다. 그리고  "돈 룩 업"과 "저스르 룩 업"이 싸우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는 대놓고 놀리기 시작한다. 사실 이 때부터는 문제 해결이나 진지한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 끝나고, 될대로 되라식의 대환장 파티가 시작된다.


특히 주인공 중의 하나인 민디 박사의 연기의 톤도 영화의 진지함 정도를 따라가는데, 초반에 민디 박사의 감정 묘사는 정말 디테일하다. 숨이 멎을 듯하게 심각성을 전달하는 디카프리오의 연기들은 그 어떤 진지하고 심각한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디테일한 불안과 긴장, 섬세한 분노를 보여준다. 그러다가 이제 작정하고 해결보다는 비꼼 대환장 파티를 시작하게 되면 디카프리오도 거의 광대 수준으로 연기를 뽐내기 시작한다. <레버넌트>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디카프리오를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대환장 파티는 진짜 지독한 결말로 끝이나고, 그 뒤의 미래 쿠키영상까지보고나면 정말 썩소, 실소를 안지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사람은 이 영화의 진지하지 않음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할 것 같고, 감동의 레벨까지는 못 미치는 영화라고 판단할 것 같다. 무책임하다고까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그 마지막의 무책임하지만 또 기발한 상상의 쿨함은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영화"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진지하게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꿀 수 없더라도, 조금은 무책임한 상상이라도 시원하게 세상에 대해 이럴 수도 있잖아를 위트있고 유머있게 제시해주는 것. 그 속의 지성이 담겨 있어서 한 장면, 한 영역만 보더라도 어떤 비판의식을 키울 수 있는 것. 이것도 한 가지 영화의 정수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만점을 줄 수 밖에 없다.


정말 이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장면은, 초반에 3성 장군이 백악관의 무료 스낵을 돈을 주고 판 에피소드다. 전체 영화흐름에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주인공 케이트는 그 사건을 이야기의 큰 흐름 중간중간마다 등장해서 의문을  던지고, 결국은 스스로 결론도 내린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드디어 마지막에는, '아, 권력놀음'이구나 라고 깨닫는데 이것이 전체 주제를 또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의 촘촘한 설계가 감독이 얼마나 비상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영화가 얼마나 촘촘하게 많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해서 쉴 새 없이 풍자과 비꼼을 하고 있는지는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편집에 활용된, 그리고 등장한 거의 모든 요소와 대사가 주옥같은 빈정거림(Sarcasm)이다. 기회가 된다면 모아서 소개를 해주고도 싶겠지만, 그보다는 한 번쯤은 꼭 이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이 영화는 대단하다. 조금 유치하게 마무리하자면 나는 ENTP인데, ENTP라면 웃음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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