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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Sep 05. 2022

회사생활은 나아질 수 있을까. 기업문화 1부

성과주의 회사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직한   2년이 넘었다. 이전 직장은 공채로 들어갔고 기업문화팀이 있었다. 철저하게 다른 회사와 다른 정체성을 강조했던 회사고 오너인 CEO 색이 많이 반영된 회사였다. 한국에 낯선 성과주의인 Meritocracy 표방했고, 대기업치고는 선제적으로 성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반대급부로 성과급을 냉정하게 부과했다. 그리고 그런 콧대 높은 버전을 기업문화로 담아 세련되고 쿨하고 멋진 인간상을 기업 브랜드에 반영했다. 기업문화팀은 철저하게 정체성을 통제하면서 회사와 상품의 브랜딩뿐만이 아니라 내부의 정책과 프로그램들도 철저하게  문화를 맞춰서 움직였다.


그런 회사에 들어간 이유조차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우연히 외국계 회사 한국지사의 PR팀에서 6개월 일하며 임원들의 생각들을 취재하고 또 그들과 함께 업무를 했다. 인턴이면서도 해외팀과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에 지적을 당했고, 회의는 최소화하기 위한 많은 업무룰들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들도 목격했다. 상사로부터 경고를 세 번째 받게 되면 바로 짐을 싼다는 철저한 평가의 냉정함에 놀라면서도 회식을 할 때 노래방에서 CEO와 어깨동무하며 노래 부르는 경험으로 인간의 수평도 철저하게 느꼈다. 커피든 뭐든 시켜서 가져다준 적도 없었다.


내가 처음에 말했던 공채로 입사한 회사는 인턴을 한 외국계 회사의 문화를 도입했다. 지점이 많고 영업이 중요한 회사임에도 성과주의와 자율적인 문화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아 있었다. 연공서열은 존재했으나 그것을 뚫어내는 것 역시 가능했다. 물론 회사가 표방한 기업문화의 사각지대에 수많은 전통 대기업의 악습도 여전했다.


인상적인 것은 인턴을 포함해 내가 다녔던 8년 간의 변화다. 기업문화의 큰 요소들이 크게 두 번이 바뀌었고 그 변화의 근간은 같다. 더 효율적이게, 더 합리적이게, 더 매정하게 바뀌었다. 그 변화들은 탑다운(Top-down)도 있지만 바텀업(Bottom-up)도 있다는 것이 인상적인 이유다.


첫 번째 큰 변화는 약 7~8년쯤 일어났다. 자리엔 하나의 쪽지가 놓여있었다. 회사생활의 힘든 점들을 익명으로 기록해 제출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거 해봤자 바뀌지 않을 거라는 패배감에, 또 누군가는 결국 누군지 찾아낼 거라는 감시의 두려움에 적지 않거나 대충 적어버리고 많다. 그러나 나 혼자 제출하더라도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어냈다. 그리고 후배와 친구들에게도 적어내자고 야단법석을 부렸다. 얼마나 적어냈는지는 모르겠다. 얼마가 지나고 본부별로 통계가 내려왔다.


전사인지 본부 한정인지 기억이 살짝 안나지만 3대 불만사항이 정리되어 공지되었다.

1. 팀장이 남아있으면 퇴근을 할 수 없다.

2. 휴가를 팀장 눈치 보고 쓴다. 혹은 사유를 말해야 한다.

3. 팀장/실장/본부장 보고를 하며 너무 많이 고쳐지고 비효율적이다. PPT 작업이 너무 많아 힘들다.

(추가로 더 있었을지도...)


그리고 머지않아, 회사의 기업문화 팀으로부터 공식/비공식적으로 바로 행동강령이 발동되었다.


1. 팀장에게 출근/퇴근 인사 "금지". 말 그대로 금지다. 그래서 팀장이 있든 없든 그냥 가야 한다. 서로 어색하지만 금지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보복조치로 팀장 이상 모든 보직자는 CEO가 퇴근하기 전에 퇴근이 금지되었다. 메신저 초록불이 꺼지기만 기다리며, CEO의 비서가 퇴근 가능을 알리는 것을 기다리며 밤 10 시건 새벽이건 그들은 CEO 눈치를 보며 남아 있어야 했다. 앞서 말했든 팀원들은 인사 없이 당연히 떠나는 것이고.


2. 휴가는 사전보고나 사유 입력 없이 자율로 신청 후 사용으로 바뀌었다. 오래되어서 저게 너무 당연해 그 전이 기억이 안 나지만 결재라인을 없앴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전에는 "개인 사유"라도 사유를 써서 냈어야 한다. 아무튼 이것도 곧바로 시행되었고 단단히 공지를 했고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체크했기 때문에 팀장들은 앞서서 알아서 쓰라며 몸을 사렸다.


3. 대대적으로 홍보팀을 통해 "Zero PPT"를 선언했다. 물론, 내부 문제를 갑자기 외부에는 뭔가 선진문화를 표방한 것처럼 말한 것은 내부 직원들에게는 치사하고 약아 보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PR을 공부하고 PR팀에 있어본 경험으론, 어쨌든 내부 문제를 눈감지 않고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활용해 대외적으로는 또 브랜딩을 해내는 묘수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대외로 Zero PPT를 선언한 후, 내부는 정말 PPT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엑셀과 워드를 활용해 PPT처럼 제목을 쓴다든지, 가로줄을 쓴다든지, 도표에 색칠을 한다든지... 모든 출력물을 점검했고 조직별로 걸리면 징계를 내렸다. 엑셀표의 셀 병합도 금지되었고 색을 강조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오로지 출력한 표를 보고하며 펜으로 강조만 가능했다.


이 모든 정책들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정말 빠른 시간 내에 문화로 잡혀갔다. 3번은 오래 걸리긴 했다. 그래서 모든 실장 석에 보고자와 함께 볼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했고, 피피티나 워드, 엑셀이 아닌 "컨플루언스"를 통해 페이지 제약 없이 정리된 보고서로 보고를 했다. 이 부분은 빠르게 정착했다. 그리고 정말 버전을 25번까지 가는, 그리고 최종에 최종에 최종의 꼬리말을 달던 피피티 작업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물론 정책이 나온 당일 회식 날 우리의 실장님은 저거 보고한 사람을 색출하겠다며 협박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몇몇은 여전히 몰래 악습을 강행했지만 말이다.


이 과정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바꿔간 문화라고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내가 쓴 이야기들과 공통된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팀장과 실장들이 반발하며 몰래 버티려고 했지만 하나씩 무너져내려 갔던 것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새롭게 입사한 친구들은 신기해만 하며 변화를 체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결과는 분명 어느 정도 이상씩은 합리적이며, 효율적이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정 없고 매정한 거겠지만. 약자를 위한 정책은 어쨌든 필요한 법이니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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