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진짜 먹을 게 없는 허탈함과 분노”
평소 아이유에게 크게 관심 없다가 작년 나의 아저씨의 속을 알 수 없는 차갑고 또 외로운 연기에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결론은 대실망. 그러면서 아이유의 연기 기대감도 확 꺼졌다. 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아깝게 날아간 것은 결국 성급한 기획과 조급한 완성 때문 아닐까. 시나리오를 더 세심히 골랐어야 했다. 일단 더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여야 했음은 분명하고, 배우 중심의 모음집이기에 배우를 새로운 모습으로 살리는 내용이었어야 했다. 나중에 아이유가 아닌 누군가의 페르소나 시리즈를 또 할 수도 있는 확장성을 고려해서 말이다. 어쩌면 시나리오를 공모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한 편씩 보면 ‘러브세트’와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망했고, 키스가 죄는 평범하고, 밤을 걷다는 괜찮지만 기획엔 안 맞다.
‘러브세트’는 그냥 뭘 조금 아는 사람의 잘못된 결과물 같다. 깊이도 신선함도 부족한 상징들로 가득 채워서 영화는 지루해서 졸다가 몇 번을 깨서 다시 봤다. 스토리도 없고 상징의 충격이나 메시지도 없다. 그저 있어 보임직한 상징과, 쿨해 보이는 성적 은유와 유머로 ‘나 이 정도로 세련된 개념을 유머 있게 너희에게 던져줄 수 있어’ 하는 것 같을 뿐이다. 자두 육즙이 터지게 베어 물고, 다리에 피가 흐르고, 교성을 내고, 아빠의 연적을 질투하고, 성적 암시를 내비치는 것 모두 다 너무 유치하다. 멈춰진 이미지처럼 감각을 살리려 한 미장센도 예쁘지만 의미가 없인 그냥 그게 다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예고편이 정말 다다.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더 문제다. ‘러브세트’는 뮤직비디오 같고 예쁜 색감이 있어 스타일리시함은 살렸다. 그런데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아이유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제목 말곤 남는 게 없다. 분위기만 한껏 잡고 아무것도 없고, 그러다 보니 시각적으로 자극을 줘서 마무리하려 했나 본데 진짜 별로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 아이유는 하나도 치명적이거나 섹시하거나 권위적이거나 압도적이지 않는데, 그런 역할을 연기했다. 오히려 발랄한 마스크면 발랄한 방식으로 섬뜩한 인물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얼굴은 어리면서 복장과 말투, 쿨한 척과 화장만 팜므파탈의 전형을 그대로 가져왔다. 어색한 아이유 보느라, 알맹이 없는 이야기 보느라 괴로웠던 20분.
‘키스가 죄’부터 영화 자체는 괜찮아지는데 누가 봐도 TV 드라마 가볍게 나올 법한 너무나 아이유스러운 모습만 있다. 그러려고 페르소나라는 거창한 기획을 했나 싶다. 귀여운 복수 장면은 아멜리에의 오마쥬 같은데, 아멜리의 비밀스러움과 엉뚱함, 외로움 이런 건 없이 그냥 장난스러움만 잠깐 나올 뿐이다. 어처구니 결말은 진짜 영화를 장난으로 찍나 싶을 정도로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선택. 그래도 전반적으론 꽁냥꽁냥 귀여운 두 배우들을 볼 만한 영화.
‘밤을 걷다’는 영화로서 좋다. 그러나 가장 페르소나 기획과는 멀다. 나머지 세 편은 아이유의 영화이긴 하나, 이건 남자다 중심이다. 떠난 여자 친구가 꿈으로 돌아와 슬픔과 반가움과 아쉬움을 겪는, 남자의 감정선을 영화는 따른다. 심지어 아이유가 아닌 아무 배우로 대체해도 그냥 똑같은 느낌의 영화가 될 거다. 클로즈업도 없고 캐릭터가 사는 대사도 없다. 아무튼 영화는 좋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보내는 아쉬움이, 그 설정 자체가 너무 낭만적이며, 그래서 기억 못 할 낭만이 슬프다. 영화가 끝나면 나도 기억 못 하는 저런 추억이 있을까 마음이 괜히 흔들리며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