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가 잡혔다.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다.
내가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 수많은 계기 중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건 '살인의 추억'의 라스트신이다.
형사일을 그만두고 녹즙기를 파는 영업사원이 된 박두만(송강호분)은 우연히 논두렁을 지나가다 17년 전 사건 현장에 멈춰 선다. 그곳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 박두만에게 한 소녀는 말한다.
"되게 신기하다. 얼마 전에도 어떤 아저씨가 여기서 이 구멍 속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한테도 물어봤거든요. 왜 들여다보고 있냐고."
"그랬더니?"
"옛날에 여기서 자기가 했던 일이 생각나서 진짜 오랜만에 한번 와봤다 그랬는데."
박두만은 동요한다. "그 아저씨 얼굴 봤어? 어떻게 생겼어?"
"그냥 뻔한 얼굴인데."
"어떻게?"
"그냥...평범해요."
그리고 박두만의 표정.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박두만의 복잡 미묘한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영화는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여성이 울부짖는 듯한 OST가 흘러나올 때쯤 난 오열했다. 2003년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영화관도 아니고 아빠 방 작은 TV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본 '살인의 추억'에 난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순히 무서움, 슬픔의 감정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안타까움이었던 것 같다.
야만의 시대에 죽어간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우리 사회의 무능에 대한 원죄의식과 같은 것이 박두만의 표정을 통해 절절히 와 닿았다. 박두만이 차마 사건이 벌어진 논두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 마음은 지금을 안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후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평범하다'는 소녀의 말은 섬뜩함과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마지막 장면은 극을 비집고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건다. 범인이 이 사회 어딘가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리란 것, 우리의 과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사건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2019년 9월18일. 영화가 개봉한 지 16년 5개월 만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진다.(정확히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포털을 통해 접한 [단독]‘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검거 기사 헤드라인은 비현실적이었다. 잡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을 2003년 이후에도 세네 번 더 봤지만, 과거형이라 여겼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잡아낸 경찰의 공이 빛나는 듯했다. 하지만..
첫 보도 후 3주.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경찰은 19일 첫 브리핑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10건 중 3건(5,7,9차)에서 DNA가 나왔다고 밝혔다. 아직 여러 건의 사건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시점에 이춘재는 예상 밖 자백을 했다. 이춘재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을 뿐 아니라 추가로 살인 4건과 성폭행 30여건을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모방범죄로 분류돼 이미 용의자가 20년 옥살이를 하고 가석방된 8차 사건까지 자신이 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아직 8차 사건에 다한 재수사가 진행 중이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정황상 이춘재가 진범일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제 화살은 경찰을 향하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8차 사건 진범으로 몰려 처벌된 윤모씨는 경찰이 잠을 재우지 않고 가혹행위를 가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고아였다.
이쯤 되면 '살인의 추억' 속 백광호(박노식분)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극 중 경찰이 '향숙이 예뻤다’ 말하는 백광호를 범인으로 몰았듯이 현실에도 그랬던 게 아닐까. 국민 대다수가 윤모씨에게 감정 이입하는 이유는 그시대 경찰이 저지른 원죄 때문이다. 1980년대 시대상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2019년, 실화를 넘어 시대를 앞서간 예언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춘재로 온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영화가 재조명되고 기사가 쏟아질 때,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란 매체에 대한 나의 첫사랑과 같은, 그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영화는 그대로지만 이춘재가 잡히면서 영화가 이 사회에서 점하는 위치도 달라졌을 것이었다.
'살인의 추억'을 다시 봤다. 결국 그렇게 될 일이었다. 그전에 몇 번이나 봤지만 또 달랐다. 영화를 다 보고 전율이 돋았다. 봉 감독님, 그대는 정녕...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감독이 상상을 곁들여 만든 허구다. 봉 감독은 당시 신문과 여러 기록을 탐독하고 형사들을 만나며 1년 가까이 엄청난 조사를 했고, 실존했던 인물들을 조합해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백광호 역시 실존인물은 아니다. 실제 정신질환을 잃던 한 용의자가 주민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후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일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많은 관객들이 진범이라 의심한 박현규(박해일분) 역시 유력한 용의자를 모델로 만든 허구의 인물이다. 봉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엔젤 피리공장에 다닌 이 용의자는 사실상 범인이라 보도됐을 정도였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가 달라 풀려났다고 한다. 일요신문 단독보도에 따르면, 여중생이 살해됐던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그는 경찰의 강압수사 후유증으로 풀려난 지 1년 만에 암에 걸려 27세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박해일도 피해자였을 뿐인 것이다.
놀라운 것은, 봉 감독이 창조해낸 인물들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무섭도록 현실적이란 점이다. 박현규는 이춘재와 놀랍도록 닮았다. 공장에 다녔고, 군 제대 직후 범행했으며, 심지어 진안1리에 산다는 것도 같다. '봉 감독은 범인을 알고 있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다. 백광호는 8차 사건 용의자로 몰렸던 윤모씨를 모델로 한 건 아니지만 당시 경찰들의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인 수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봉 감독이 허구의 캐릭터들을 통해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진실되다. 당시 경찰들은 심령술사에게 의지할 정도로 무능하고 합리적이지 못하고 폭력적이지만, 죽도록 범인을 잡고 싶었던 그 마음은 전달이 되고도 남는다. 영화는 시골 형사 박두만과 서울서 온 서태윤(김상경분)의 갈등을 통해 수사기법의 이슈도 다루고 있다. 비록 실제 박현규는 진범이 아닌 인물을 모델로 했지만, 극 중 동굴 속으로 수갑을 찬 채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이춘재를 떠올리게 한다. 몇 번이나 용의 선상에 오르고도 유유히 피해 간 이춘재, 누명 쓰고 고통받은 수천 명의 시민들. 우리 사회 아픈 과거의 단면이다.
8차 사건을 두고 많은 이들이 경찰을 욕하고 있다. 당시 경찰이 실적을 위해 무리한 수사를 벌였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당시 담당 형사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 수준은 그 정도밖에 안 됐다. 부녀자들의 안위보다 아시안게임 개최가 중요했다. 박두만과 서태윤이 아무리 의욕이 넘친 들 CCTV도, DNA 분석 등 과학수사가 없는 그 시대에 어떤 묘수가 있었을까. 물론 고문과 강압수사는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형사 개인보다는 당시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그 정도밖에 안 됐음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이춘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2019년 경찰 조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미제사건 해결'이란 공을 세우고도 역공을 당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30년 전 경찰 조직의 문제를 지금의 경찰 조직에 묻는 게 옳을까. 현재는 희대의 살인마 이춘재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고도의 심리전으로 자백을 이끌어내는 시대다. 난 경찰이 아니지만 30년 전 선배들의 죄를 내게 묻는다면 억울할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 사회는 경찰뿐 아니라 대부분의 조직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중이다. 선배들의 잘못을 덮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느라 애쓰는 다수의 선량한 경찰에게 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과거 경찰 조직의 악습과 더욱 철저히 결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처제 살인 사건으로 이미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이춘재가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 사회에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와 현재의 거리 속에서 어떤 것은 아예 잊히고 어떤 것은 추억이 된다.
제목은 역설적인 의미다. 추억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
분노를 멈추지 말자는 것이다. 이 영화가 과거를 곱씹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에서 날아든 화살처럼 현재의 우리에게 꽂히기를 바랐다.
그래서 2003년 박두만이 다시 살인 현장을 찾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봉준호 감독, 2003. 5.6. 문화일보 인터뷰 中 )
이 영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에게 꽂혔다. 이춘재를 잡는데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난 믿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행위다. 영화는 때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