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개인을 되찾음으로써 가족을 회복하다
# 헐레벌떡 출근하는 딸을 붙잡고 "빵 한쪽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는 엄마. 막간을 활용한 엄마의 잔소리에 딸은 귀찮은 표정을 짓고는 엄마가 억지로 쥐어준 과일주스를 마시다 만다. 딸이 문 밖으로 나서자 엄만 슬픈 표정으로 남은 주스를 마신다.
문틈으로 그런 엄마를 본 딸은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빠가 내팽개치고 간 도시락을 달라고 한다. 엄마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도시락을 황급히 집어와 딸에게 쥐어준다.
이 낯익은 장면에서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느 날 네이버에서 우연히 이 클립을 재생하곤,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혹시 우리 집에 CCTV를 달아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익숙한 장면. 동시에, 객관화해서 본 나(딸)의 모습이 얼마나 무신경하고 무심한지, 엄마의 모습은 얼마나 애처로운지 새삼 깨닫게 하는 이 에피소드는 작가의 내공과 뚝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극 중 은희(한예리 분)도 주스를 쥐어주던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을 수년 뒤에야 깨달으니, 원래 가족이란 그 속에 있으면 서로의 마음을 알기 어려운 것일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흔한 가족을 소재로 삼았지만 식상하지 않다. 결코 뻔하지 않은 질문 때문이다. 질문은 간명하다. ‘우린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매일 한 집에서 붙어살고 그래서 종종 지긋지긋하다고 여기게 되는 가족. 우린 가족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친구나 서먹한 직장동료보다 가족에게 속마음을 숨기곤 한다. 걱정 끼칠까 봐, 가끔은 가족이 더 어려워서, 눈치를 보고 애를 태우고 그러다 본심과 다른 오해가 쌓이고, 작은 갈등이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든다. 누구보다 서로를 신경 쓰고 아끼지만 단칼에 약점을 파고들어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는 관계. 가깝지만 멀고, 편하지만 한없이 어려운 가족.
드라마는 새삼 2020년에 가족이 대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AI가 현실화된 최첨단 시대건만 가족 간의 갈등은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하찮아지지 않고, 가족의 의미는 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가 무너지는 이 시대에 가족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드라마는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구태의연한 장치를 매우 쓸모 있게 쓰는 능력 또한 발휘한다. 김상식(정진영 분)이 기억상실을 겪지 않았다면 신혼 초반 로맨티스트였던 자신과 현재의 악에 받힌 중년의 남편과의 괴리를 극단적으로 체감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집안이 이 정도로 콩가루인지, 그 사연을 한 겹 한 겹 벗겨나가는 과정이 ‘기억상실’로 인해 예측불허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일생 기억상실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낮단 점에서 한 사람이, 한 가족이 갱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단 의미로도 읽힌다.
어쩔 수 없는 사고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이 가족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그건 허망함이다. 수십 년을 서로 미워하고 증오했던 대상은 알고 보니 상당수 허깨비였다. 자신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오해와 착각으로 남편, 아내, 혹은 언니, 동생에 마음을 일방적으로 닫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게 자신이 쌓은 신기루인 줄 알면서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미워할 대상이 필요해서 그것을 부여잡고 평생 살았는지 모른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단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해의 시작이다. 드라마는 가족의 화해가 효도나 우애로 완성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각 인물들은 가족 간 관계에 얽매여 소외됐던 자기 자신을 되찾고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족의 사랑을 회복한다. 화해의 첫걸음은 다시, 인정이다. 우리 엄마지만, 아빠지만, 내 동생이지만 내가 잘 모르는 각자의 삶,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인정, 우린 서로를 100% 이해할 수 없다는 인정만이 가족을 자유케 한다.
자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은주(추자현 분)와 은희는 성격도 매우 다르고 언뜻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사이로 보이지만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기대게 되는 복잡 미묘한 관계다. 작가에게 여동생이나 언니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매관계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말로 사람 여럿 죽일 것 같은 은주는 사실 누구보다 속마음이 깊고 여려서 더 모질게 방어막을 두른다. 어디서나 헤헤 웃고 철없어 보이는 둘째 은희는 사실 어려서부터 눈칫밥 먹으며 가족 간 중재를 도맡아 하느라 생존형 분위기 메이커가 됐을 뿐이다. 너무 다른 둘은 매번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지만 서로를 떠나지 못한다.
‘가족입니다’는 홈드라마라기엔 다소 민감한 주제도 과감히 건드린다. 은주의 남편 태형(김태훈 분)은 동성애자인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결혼한다. 매사 완벽하고 냉철해 보이는 은주는 아이러니하게도 태훈에게 완벽히 속아 넘어간다. 은주는 남편의 비밀을 안 뒤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이 태형을 정말 사랑했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남편과의 사이에 흘렀던 묘한 긴장감과 불안의 근원을 알게 되자 오히려 증오가 걷힌다. 은주는 태형의 어머니보다도 태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다. 가족이 지긋지긋해서 각자의 가족을 떠나기 위해 가족을 이뤘던 태형과 은주는 결국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을 이루는 데 실패하지만 부부였을 때보다 더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가 된다.
"가족이니 이해해야지." "가족이니 화목해야지." "가족이니 참아야지."
가족이란 응당 어때야 한다는 가족주의의 수많은 강박들. '가족입니다'는 이러한 일률적인 가족 판타지를 접어두고 과연 이 시대 가족은 무엇인지 반문함으로써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 누구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해방을 통해서만이 가족이 회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진중하지만 기존의 질서와 결을 달리하기에, 매우 전복적이다. '가족입니다'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전복적인 홈드라마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