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먹고 삼켜버려도 머금고 있어 빈집이 아닌 집
흔들리는 여름 나무
그 밑에 사람과 사람
짧았던 그날의 햇빛 아득해져도
낮밤을 모두 까먹고
요일을 삼켜버려도
난 너의 전부만큼은 머금고 있어
이제는 신을 신을 때
너 대신 벽을 짚지만
계절 없이 꽃들이 매달렸던 문도 없지만
사계절이 지나가는 푸른 바다의 이야기
하던 순간은 그대로 남아
빈집이 아닌 집
이제는 신을 신을 때
너 대신 벽을 짚지만
계절 없이 꽃들이 매달렸던 문도 없지만
사계절이 지나가는 푸른 바다의 이야기
하던 순간은 그대로
덮이지 않고 그대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아
빈집이 아닌 집
어느 출근길에 발견한 노래. 역 개찰구를 나와 출구까지의 거리 내내 엉엉 울었다. 음색도 노랫말도 따뜻하고 슬펐다. 아득하고 까먹고 삼켜버려도 전부를 이미 머금고 있다니. 덕분에 몇 개월째 내 카카오톡 배경음악은 이 노래다. 이제인의 빈집이 아닌 집. 듣고 싶을 때마다 듣는다.
오래된 나의 집을 가끔 의식적으로 떠올린다.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 살던 그 집. 영영 까먹을까 봐 머릿속으로 구석구석 그림을 그려본다. 그런데 저번에 집 내부 말고 외부를 떠올리려고 보니 기와지붕 색깔이 헷갈리더라고. 파란색이었던 것 같은데 맞나. 아깝지만 기억이 조금씩 자신이 없어진다. 저번에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그때 그 집 파란 지붕 맞지? 하고 확인해 보니 맞다고 했다. 안심하고 다시 그리는 그림.
주차장, 잔디, 잔디 풀을 뽑는 엄마, 눈이 오면 미끌미끌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했던 타일, 처마에 달린 고드름, 부엌 싱크대 쪽으로 나 있던 창문에 보이던 지나가는 아빠의 모습, 할머니방, 동생방, 안방, 마루, 흔들의자와 소파, 장식장, 그리고 아빠가 만든 원형 테이블과 의자. 전화기도 있었다. 화장실 붉은 대야. 물부엌 저쪽방. 예지야 지수야 밥 먹어 부르던 엄마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