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댄 Jan 27. 2024

[예지독서] 날뛰는 생각이 그릇을 넓혀, 비즈니스인문학

눈앞이 아니라 그 앞을 보기 위해서

낮에 유퀴즈 온 더 블록 김영옥, 나문희 배우 편을 봤다. 김영옥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했지만 다양한 인물들을 들여다보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이제까지 인간 됨됨이를 잘 배워 온 것 같다고. 인문학을 틈틈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이 대답과 맞닿아 있다. 시행착오를 겪는 타인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큰 영감이 된다.


인문학(Liberal Arts)은 묶여 있지 않는 자유인들, 즉 본인의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기본 지식이라는 의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키를 잡고 있는 자들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인들답게 배워가는 점들도 각기 다르다. 천하를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천하를 포용하는 기개를, 비즈니스에서 승부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비즈니스 처세술을, 본인의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음 근육을 키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인문학은 그 학문을 통해 무엇을 배워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마저 변화시킨다. 생각이 고이지 않고 이리저리 날뛸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날뛰는 생각을 담은 그릇은 무릇 넓어지기 마련이다.


인문학 공부가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관심을 못 두는 이유는 한 가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익혀야 할 기술과 지식이 많아 미뤄두고 있지만 마케팅 독서를 시작한 만큼 가끔씩 인문학 도서를 읽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환기다.


눈앞이 아니라 그 앞을 보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이따금 떠올릴 수 있도록.


이번에 읽은 책은 조승연 작가의 비즈니스 인문학이다. 인문학으로 배우는 조직력, 리더십, 창의성, 기업윤리, 경쟁력, 고객 관리 그리고 자기 관리를 차례로 다룬다. 그리고 각 주제별로 관련 단어를 꼽고 그 단어의 어원을 설명하는 방식을 따른다. 단어의 시작에는 언제나 인물이 있었다. 조승연 작가는 단어라는 미끼를 활용해 후대에도 추앙받는 인물과 불명예의 대명사로 평가받는 인물의 이야기를 두루 소개한다. 교훈도 친절하게 발라내 준다. 당장의 삶이 고달프다는 핑계로 인문학에 방 한 칸 내어주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들도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creative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스위치를 누르면 단숨에 켜지는 전구와 관련이 없고 무엇인가를 천천히 길러내는 농사와 관계가 깊다. creative는 아기, 동물, 곡식 등이 '자라다'를 뜻하는 라틴어 crescere가 어원이다. 사실 creative의 어원은 우리가 잘 아는 단어 속에 들어 있다. 예를 들면 음악에서 소리가 점점 커져 절정에 이르는 것을 '크레셴도 crescendo'라고 한다. 또 초승달이 자라면 반달이 되고 반달이 자라면 보름달이 되기 때문에 초승달 모양의 빵을 '크루아상 croissant'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creative는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생각'이 아니라, 시간이 경과하면서 초승달이 점점 동그랗게 차오르는 것, 밭에 씨를 뿌리면 식물이 서서히 자라는 것, 음악 소리가 천천히 올라가다가 절정에 달해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서서히 '자라나는' 것이다. p.106

라틴어로 video가 '보다'이기 때문에 vision은 원래 단순히 '시력'을 뜻했다. 그런데 델피의 예언자들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특별한 시력을 가졌다는 소문이 나면서 예언자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비전'이라고 불렀다. 델피 제사장의 비전 덕분에 신전으로 자기 조직의 미래를 보는 힘을 얻기 위해 세계의 왕, 장군, 사업가들이 몰려들어 엄청난 돈을 뿌리고 갔다. 델피는 신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사업체를 형성해, 운수 보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전에서 행하는 여러 공연의 표를 팔고, 고급 음식점과 스포츠 경기장, 심지어는 매춘 시설까지 갖추고 돈을 벌었다. 이렇게 델피의 아폴로 신전은 고대 그리스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즉 '비전'은 사람을 모여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p.134

이런 영적 경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여행이다. (중략)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새로운 것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비전이 잘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수도원이나 절은 일반 사람이 가기 힘든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동양에서도 도사들을 만나려면 산 위로 올라간다. 오늘날처럼 SNS, 텔레비전 등 다른 사람의 말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요와 고독의 시간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남에 집중하면 내 내면의 공허함과 함께하는 것이 점점 더 두려워진다"라고 말했는데, 그 공허함이 바로 내 창의력의 샘일 수 있다. p.137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물류기업 UPS는 아마존 등 인터넷 상거래가 붐을 이루기 시작하던 1990년 후반부터 급성장을 시작했다. UPS의 배달부들은 모두 회사의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일했다. 회사는 배달부들의 유니폼을 회사의 상징으로 적극 홍보했다. 그러나 이 배달부들은 UPS의 정식 직원들이 아니라 낮은 시급을 받고 일하는 계약직들이었다. 이들은 평소 회사 처우에 불만이 많았지만 주문이 쇄도해 엄청난 수익이 날 때까지 참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185,000명의 계약직 노동자가 동시에 일손을 놓았다. UPS 유니폼을 입고 행복하게 일하는 배달부 광고에 친숙했던 고객들은 이들이 저임금 계약직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노동자 편으로 돌아서 회사의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했다. (중략) 결국 UPS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대폭 수렴한 새로운 고용 계약을 제안하고 간신히 사태를 마무리했지만, UPS는 이 사태로 무려 6억 달러(한화 7,000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발표했다. p.153

규제 없는 환경이 비즈니스에 유리할 것 같지만, 사실 규제가 없던 유럽의 중세기에는 비즈니스보다 기사라는 폭력 조직의 활동에 훨씬 유리했다. 비즈니스는 오히려 베네치아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법을 지키던 원칙이 분명히 지켜지는 환경에서만 번성했다. 법이 사라지면 가진 것 많은 사람이 잃을 것도 가장 많다. 그래서 기업과 귀족이 앞장서 법의 모범이 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p.159

서양의 엘리트들은 토론 중에 상대편의 논리가 자신의 논리보다 뛰어나면 '투셰'라고 말하고는 박수를 쳐주거나, 먼저 잔을 들어 건배를 청한다. '투셰'는 말 그대로 '터치되었다'라는 프랑스어로 펜싱 용어다. 펜싱은 워낙 진행이 빨라 상대편의 칼이 자기 몸을 건드렸는지 안 건드렸는지 본인만 아는 경우가 많다. 만약 칼을 맞고도 상대방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펜싱 경기는 무술을 연마한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칼 맞은 사람이 신사답게 자진해서 "저 터치되었습니다", 즉 '투셰'를 외치며 칼을 하늘 방향으로 올려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 오래된 펜싱 규칙이다. 체스를 둘 때도 자신의 열세가 분명하면 시간 낭비하지 않고 왕 말을 스스로 넘어트리고 상대편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예의이다. p.202

2등의 경쟁력은 영어의 어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를 뜻하는 영어 단어 first는 '뚫다'를 뜻하는 pierce와 친척 단어다. 그리고 두 번째를 뜻하는 second는 원래 '뒤따르다'를 뜻하는 라틴어 seguire에서 나왔다. 우리는 일인자가 맨 꼭대기 자리에 올라가 이인자를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이 단어는 이인자가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도록 선두 자리에 일인자를 밀어놓고 자신은 그가 여러 어려움을 감수하며 잘 닦아놓은 길로 편안하게 쫓아가 결실을 가로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p.221

친한 사이에도 언젠가 경쟁을 해야 할 대상에게는 신상정보나 사적인 의견을 최대한 적게 노출하라는 것이 서양 인문학이 알려주는 지혜이다. 특히 요즘 SNS에 자기 생각이나 고민, 개인 정보 등을 아무 생각 없이 적고 사진까지 찍어서 업로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일단 SNS에 올린 정보는 삭제를 해도 언제 어디로 떠돌아다니다가 구글 검색에 잡히거나 이미지 검색에 떠 회사 상사, 동료, 심지어 고객이나 경쟁자에게도 노출될지 모른다. 미국의 한 SNS 전문가는 자기 자신에게 "엄마가 이 사진을 봐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예스"라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으면 절대 업로드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p.230

리어 왕은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광대가 들려주는 바른말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다. 유머로 세상의 통념이나 편견을 깨고 진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리어 왕>의 저자인 셰익스피어의 집필 의도였을 것이다. <리어 왕>에서 광대는 또한 "보여지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하고, 아는 것보다 말을 덜 해야 한다"라는 말도 했는데, 유머란 '아는 것보다 말을 덜 하는 기술'이며, 고객과 기업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미묘한 폭탄의 뇌관을 제거해 주는 유용한 인문학적 기술이라는 말로 바꾸어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p.252

물론 사람들이 서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만큼 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돈이 행복은 살 수 없지만 목숨은 살 수 있다면, 그런 돈의 위력은 어디서 나올까? 이 대답도 어원에서 찾을 수 있다. 영어에서 '돈거래', 즉 '금융'을 뜻하는 단어가 finance인데, '끝'을 뜻하는 프랑스어 fin에서 '금융'을 뜻하는 단어 finance가 나왔다. 유럽 중세기에는 전쟁이 잦았고 전쟁은 대체로 포로의 몸값을 물어줘야 끝났기 때문에 finance에는 돈을 주고 전쟁을 끝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돈을 지불하다'인 pay 역시 돈 주고 평화pax를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finance도 '돈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307

고대 로마시대에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았던 베르길리우스는 "시간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간다Fugitive Ireparabile Tempu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베르길리우스의 라이벌인 호라티우스 역시 젊은이들에게 "하루하루를 꽉 붙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유명한 시를 남겨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까지 널리 애송되고 있다. p.312


매거진의 이전글 [예지독서] 온리원이 되는 법, 프로세스 이코노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