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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Jan 28. 2019

[퇴사일기 #19] 삼성은 내 길이 아니야

커리어에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너 삼성 자소서 다 썼어? 어디로 지원할 거야?" 

대학교 4학년, 한창 취업이 중요한 이슈인 때에 친구가 물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나 삼성 지원 안 할 건데." 


  취준생에게 삼성그룹을 비롯한 대기업은 무조건 지원해야 하는 대상이다. 명성도 높고, 대우도 좋고, 많이 뽑는다. 입사하기 어려운 반면, 기회가 넓기도 하다는 양면이 있다. 취업을 위해 한 개 기업이라도 더 지원해야 할 마당에 국내 최대 기업에 지원하지 않을 거라는 나를 친구들은 의아하게 쳐다봤다. 


  대기업에 지원할 의사가 없었기에 4학년 1년 동안 친구들에 비하면 한량처럼 지냈다. 여름방학에 친구와 떠난 뉴욕에서 친구는 호스텔의 느려 터진 컴퓨터를 붙들고 지원서를 작성할 때 나는 도시 곳곳을 누비며 여행객 놀이를 제대로 했다. 다들 면접 스터디에 열중할 때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었다. 남들에 비해 스펙이 뛰어나거나 믿을 구석이 있어서는 절대 아니었다. 가려는 길이 달랐을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공공부문에서 일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공적으로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여하는 일을 통해 보람을 얻고 싶었다. 어리고 시야가 좁은 생각이었지만, 사기업에서 제품을 파는 일보다는 공공기관에서 역할이 더 가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다루거나 영업을 하는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역시 하나의 이유였다. 


  첫 직장은 사립학교에 재정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었다. 인턴으로 입사해 계약직 제안을 받았다. 결론적으로는 낙하산에 밀려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마침 타이밍이 맞아 공기업인 K사와 금융 공공기관인 K재단에 지원해 합격했고, K사에 입사했다. 여담이지만 연봉으로 보면 K재단으로 갔어야 했는데 공무원인 큰누나의 추천으로 K사에 입사했다. 결과적으로 돈은 좀 덜 벌었지만 큰 회사에서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 (돈을 더 버는 게 나았을지 굳이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슬프니까.)


  K사 이후 국내 대기업을 거쳐 지금은 외국계 기업에 재직 중이다. 취준생 시절에 그렸던 미래와는 많은 부분 달라졌다. 가치관이 많이 바뀌면서 커리어의 방향도 변했다. 공공분야에서 일해야만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은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건 내 가치관은 무엇이며 그에 부합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취업시장이 많이 어렵다. IMF 이후로 쉬웠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우선 취업을 목표로 많게는 수백 번의 지원을 한다. 취업 자체가 너무나도 절실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기준은 있었으면 좋겠다. 무조건 취업만 하면 된다는 시각을 갖고 입사했다가 얼마 못가 퇴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잠시 동안 돈을 벌고 안정을 찾았을지는 몰라도 그 안정감이 일상이 된 이후에는 고민이 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친한 지인 중에 수화통역사가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고 행복해 보였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경제적으로 더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의 선택을 스스로 존중했다. 나의 작은 외삼촌은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를 가기 위해 교대에 진학했고, 당시 교대 남학생은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지만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군 복무를 했다. 졸업 후에는 10여 년의 직장생활을 하다 모든 돈을 외할머니께 남기고 불가에 귀의했다. 내가 존경하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회의 기준이나 현실보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삶의 길을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다. 비록 극단적인 선택이 있었을지언정 그들은 스스로를 믿고 행동에 옮겼다.


  신입으로 첫 직장을 구하든, 경력을 바탕으로 이직을 하든 자신 만의 방향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조급할 수 있겠지만, 인생은 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는 일을 구하는 것이 커리어나 행복에 있어 더 바람직하다. 누군가는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적당히 이상적이어야 한다. 삼성은 내 길이 아니라고 말했던 시절과 삼성에서도 일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지금의 나는 달라 보여도 같다. 나는 계속해서 가치관에 맞는 이상을 추구할 것이고, 당신도 이상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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