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로소픽 Mar 26. 2019

플랫랜드의 본질

[책 미리보기] 최초의 SF 수학소설《플랫랜드》, 그 첫 번째 이야기 


저는 우리의 세계를 플랫랜드라고 부르려 합니다. 그 세계의 이름이 플랫랜드라서가 아니라, 스페이스랜드에 사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행복한 독자 여러분에게 우리 세계의 본질을 좀 더 명확하게 알려드리기 위해서죠. 

커다란 종이 한 장을 상상해보십시오. 직선,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등 여러 가지 도형들이 그 위에서 한 자리에 꼼짝 없이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 표면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도형들은 종이 표면의 위에서 혹은 안에서 이동하지만, 종이 너머로 풀쩍 뛰어오르거나 아래로 쑥 뛰어내리지는 못해요. 비록 가장자리는 딱딱하고 빛이 나긴 하지만 마치 그림자와 같죠. 이제 제가 사는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제법 감을 잡으셨나요? 

하하,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이것을 “우리 우주”라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제 마음은 더 높은 관점을 향해 활짝 열려 있지요. 이런 나라에서는 “입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걸 금세 눈치채셨겠죠? 그렇지만 아마 여러분은 제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주변을 돌아다니는 삼각형, 사각형, 그밖에 다른 도형들을 적어도 우리가 시각에 의해 구분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천만에요. 우리는 도형을 볼 수 없고, 하물며 구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눈에는 직선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보일 수도 없으니까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증명해드리지요. 

공간 내부에 있는 여러 개의 탁자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그 한 가운데에 동전 하나를 올려놓아 보세요. 이제 몸을 구부려 그것을 내려다보세요. 동그란 원으로 보일 겁니다. 

이제 탁자 가장자리로 물러나 서서히 눈높이를 낮춰보세요(그렇게 플랫랜드 주민들의 조건에 점점 가까워지는 겁니다). 동전이 점점 타원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여러분의 시선이 탁자의 가장자리와 정확히 수평이 될 때, 말하자면 플랫랜드 주민의 시선을 갖게 될 때 동전은 더 이상 타원으로 보이지 않고, 여러분 눈에 직선이 되어 있을 거예요. 삼각형이든 사각형이든, 판지에서 오려낸 어떤 도형이든 같은 방식으로 본다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시선을 탁자 가장자리에 맞추고 도형을 보는 순간, 도형은 더 이상 도형으로 보이지 않고 일직선으로 보이게 된다는 걸 이제 아시겠지요? 



정삼각형을 예로 들어보죠. 이 정삼각형이 훌륭한 상인 계급을 대표한다고 가정하고 말이에요. 도형 ⑴은 여러분이 위에서 몸을 굽혀 바라볼 때 보이는 상인의 모습입니다. 도형 ⑵와 ⑶은 여러분의 시선을 거의 탁자 높이 가까이 맞추었을 때 보이는 상인의 모습이고요. 그렇다면 시선을 탁자 높이와 정확히 맞춘다면(플랫랜드에서 상인을 바라보는 모습이 되겠지요), 여러분의 눈에는 직선만 보이게 될 겁니다. 


제가 스페이스랜드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여러분 나라의 선원들이 바다를 항해하면서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바라보이는 섬이나 해안을 구별할 때 이와 아주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하더군요. 저 먼 육지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만과 갑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을 테지요 하지만 . 멀리서 보면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면 위에 죽 이어진 잿빛의 선만 보입니다. 태양이 그것들을 환하게 비추어 명암에 의해 섬의 들고 나는 부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래요, 플랫랜드에서 삼각형이나 그밖에 우리와 친분 있는 도형들이 다가올 때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이 바로 이렇답니다. 우리에게는 그림자를 만드는 태양이나 그 비슷한 종류의 빛이 없기 때문에 스페이스랜드에서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볼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어요. 

만약 친구가 가까이 다가오면 우리는 그의 선이 점점 커지는 걸 보게 되고, 친구가 멀어지면 그의 선이 점점 작아지는 걸 보게 되는 거지요. 여전히 직선 모양으로 말입니다. 친구가 삼각형이든 사각형이든 오각형이든 육각형이든 동그라미든, 어차피 우리 눈에는 오직 직선으로만 보인답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불리한 환경에서 어떻게 친구와 다른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겠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네요. 하긴, 그렇게 묻는 것도 당연해요. 이제 곧 제가 들려드리는 플랫랜드 주민들에 대한 설명이 이 질문에 대한 매우 적절하고 알기 쉬운 답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지금은 우리 나라의 기후와 집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최초의 SF 소설『플랫랜드』

"아인슈타인보다 앞선 '차원'에 대한 정교한 상상" 


19세기에 출간된 《플랫랜드》는 20세기 물리학자들의 극찬을 받은 수학소설이다. 2차원 세계의 한 사각형이 3차원을 경험하면서 공간과 차원을 새롭게 인식하는 이야기로,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기하학적 개념을 소설 속에 잘 녹여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돋보이는 사회성 짙은 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걸리버와 앨리스의 모험에 필적하는 환상문학의 고전이자 SF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현재 수십 개의 판본이 존재하며, 영미권 명문대 학생들의 필수 교양서로 권장되고 있다. 3차원적 생각의 틀에 갇힌 현대의 독자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사고를 선사할 작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