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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Mar 28. 2019

플랫랜드의 기후와 주택

[책 미리보기] 최초의 SF 수학소설《플랫랜드》, 그 두 번째 이야기


여러분 나라처럼 우리나라에도 나침반에 동서남북 네 방향이 다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에는 태양도 천체도 없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북쪽을 구분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다 방법이 있지요. 

우리의 자연법칙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남쪽으로 끌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화한 기후에서는 이 끌어당기는 힘이 아주 약하지만(그래서 제법 건강한 여자라면 북쪽으로 몇 펄롱쯤은 거뜬히 이동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남쪽을 향해 끌어당기는 힘은 우리 땅 대부분의 지역에서 나침반처럼 이용하기에 충분하죠. 항상 북쪽에서 오는 비(일정한 주기로 내리지요)도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요. 

그뿐 아니라 마을의 집들도 방향을 안내해주고 있어요. 플랫랜드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당연히 측벽이 북쪽과 남쪽을 향해 있죠. 그래야 지붕이 북쪽에서 오는 비를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집이 없는 지역에서는 나무 둥치가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하지요. 이런 식으로 대체로 우리에게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온화한 지역에서는 남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이따금 우리를 안내할 집도 나무도 없는 아주 황량한 벌판을 지날 때면, 비가 올 때까지 몇 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렸다가 비가 오면 그제야 이동을 계속해야 한답니다. 노약자들, 특히 연약한 여성들은 건장한 남성들보다 이 끌어당기는 힘에 훨씬 큰 타격을 입어요. 그래서 길을 가다 여성을 만나면 언제나 길의 북쪽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예절입니다. 당신이 건강할 때나 남북을 구분하기 어려운 기후에서나 갑작스레 이 일을 하기란 언제나 쉽지는 않은 법이지요. 

우리나라의 집에는 창문이 없어요. 집 안이든 밖이든, 밤이고 낮이고, 언제 어디서나 빛이 똑같이 비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빛이 언제 어디에서 비치는지 몰라요. 옛날 학자들은 “빛은 어디에서 시작될까?”라는 흥미로운 의문을 수시로 제기하고 연구하면서 해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장차 해답을 얻을 수도 있었을 이 사람들은 결국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답니다. 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지워 연구를 금지하려는 간접적인 시도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아주 최근에 입법부에서 이 연구를 완전히 금지해버렸어요. 

저는 (아아, 플랫랜드에서 유일하게 저 혼자만이) 이 수수께끼 같은 문제의 답을 똑똑히 알고 있지만, 이제 우리 나라 사람 누구에게도 제가 아는 지식을 이해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제 공간의 진실에 대해, 3차원 세계로부터 빛이 들어오는 이론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저는 마치 세상에서 제일 미친놈처럼 조롱을 받고 있어요!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는 그만 두고, 이제 우리나라의 집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집의 구조는 아래 그림의 도형처럼 오각형이랍니다. 북쪽의 RO, OF 두 면이 지붕이고 대부분 문이 없어요. 동쪽에는 여자들이 드나드는 작은 문이 있고, 서쪽에는 남자들이 드나드는 훨씬 큰 문이 있습니다. 남쪽 면, 즉 바닥에도 대체로 문이 없어요. 



사각형과 삼각형 형태의 집은 지을 수가 없습니다. 사각형의 각은 오각형의 각보다 훨씬 뾰족한 데다(정삼각형의 각은 더욱 그렇죠), 집과 같은 무생물의 선은 남자와 여자의 선보다 더 흐릿해서 꽤나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덤벙대거나 정신이 딴 데 팔린 채 지나가다가, 아뿔싸, 사각형이나 삼각형 집의 뾰족한 끝에 부딪쳤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시대로 일찍이 11세기에 일반적으로 삼각형 집은 법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방어시설, 화약고, 병영 등 일반 대중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 건물을 제외하면 말이지요. 


이 시기에는 어디에서든 사각형 집을 지을 수 있었어요. 특별세를 내야 했지만요. 하지만 그로부터 3세기가 지난 뒤, 지속적인 치안을 위해 인구 만 명 이상의 모든 마을에서는 오각형 미만의 집을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졌답니다. 분별 있는 지역 단체들은 입법부의 이런 노력을 지지하고 있고, 지금은 시골에서도 두 집 건너 한 집이 오각형 건물로 대체되고 있어요. 아주 외딴 낙후된 농경 지 역에서 가끔 골동품연구가가 아직도 사각형 집을 발견할지도 모르지만요.




최초의 SF 소설『플랫랜드』


"아인슈타인보다 앞선 '차원'에 대한 정교한 상상" 

19세기에 출간된 《플랫랜드》는 20세기 물리학자들의 극찬을 받은 수학소설이다. 2차원 세계의 한 사각형이 3차원을 경험하면서 공간과 차원을 새롭게 인식하는 이야기로,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기하학적 개념을 소설 속에 잘 녹여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돋보이는 사회성 짙은 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걸리버와 앨리스의 모험에 필적하는 환상문학의 고전이자 SF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현재 수십 개의 판본이 존재하며, 영미권 명문대 학생들의 필수 교양서로 권장되고 있다. 3차원적 생각의 틀에 갇힌 현대의 독자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사고를 선사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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