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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Apr 19. 2019

비트겐슈타인이 천재로 불리는 까닭 (2)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 《비트겐슈타인 평전》다시 읽기 (2)

올해는 영국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 1889-1951)의 탄생 130주년입니다. 

필로소픽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탄생 130주년(4월 26일)을 맞아 2012년에 출간했던 《비트겐슈타인 평전》의 리커버 개정판을 출간 예정입니다. 

개정판 출간에 앞서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을 톺아보는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새롭게 선보일 《비트겐슈타인 평전》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과연 천재란 무엇인지, '천재'라는 화두를 좀 더 생각해봤습니다. 


'천재의 의무'라는 부제는 아무래도 '귀족의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따온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책 내용에서 보자면, 귀족이 되는 것에는 책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과는 달리, 몽크가 말하는 천재의 의무는 천재가 되는 것에는 책무가 따른다는 상식적인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이 말은 청년 비트겐슈타인이 심취했던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에서 전개되는 천재의 사상에 더 관계가 깊다고 보입니다.   

바이닝거에 따르면, 천재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가장 고귀한 것, 신적인 것을 완전히 개발하고 실현하는 존재입니다. "천재성은 가장 고귀한 도덕성이며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인 거죠. "만약 자신을 감각과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없다면", 즉 천재가 될 수 없다면 사람은 살 권리가 없다고 봅니다. 무섭죠? 

천재가 아니라면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은 매우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통속적 의미와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천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리는 천재가 아니다. 좌절이다. 그러니 죽어야겠다." 이렇게 단순한 생각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재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가장 고귀한 것, 즉 신적인 것을 실현하는 것이고 이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천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천재성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는 좀 더 무서운 말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천재의 의무란 천재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천재성의 실현 자체가 인간의 도덕적 의무, 즉 정언명법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이상한' 사상에 비트겐슈타인이 심취하게 된 것은 왜일까요? 몽크가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아무래도 천재로 인정되는 형제들에 대한 열등감(?) 또는 내지는 그로부터 받은 감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열네 살이 될 때까지 [비트겐슈타인]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기보다 자신의 주위를 천재들이 둘러싸고 있음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훗날 그가 새벽 3시에 피아노 소리를 듣고 깨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그의 형] 한스가 자신이 작곡한 작품 중 하나를 연주하고 있었다. 한스의 집중력은 광적이었다. 그는 땀을 흘리며 완전히 열중해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이 온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천재적인 재능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전형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비트겐슈타인이 천재의 전형적인 사례로 든 것은 베토벤이었는데(오토 바이닝거는 베토벤이 죽은 집에서 자살했지요), 천재의 특징은 무자비한 몰입으로 독창적이고 위대한 작품을 생산한다는 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천재의 전형으로 든 음악가 '베토벤'
베토벤의 방문 앞에서, 그가 새 둔주곡을 놓고 저주하고 신음하며 노래하는 걸 들은 한 친구가 있었다. … 한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베토벤이 문밖으로 왔는데 그는 마치 악마와 싸운 사람 같았다. 그의 격노를 피해 요리사와 하녀가 떠났기 때문에 36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러셀에게 철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후에는 탈진에 이르기까지 분석을 밀고 나가는 몰입적 사유를 보여줍니다. 논리적 문제들에 대한 열정이 인생 전체를 사로잡았는데, 1912년 부활절 휴가 동안 일시적으로 영감이 안 떠오르자 절망에 빠집니다. 


러셀에 의하면 부활절 휴가에서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은 충격을 받은 듯 항상 침울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했으며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면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논리학이 그를 미치게 하고 있다고 러셀에게 말했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위험 상황이라고 보고 잠시 동안 논리학을 잊고 승마나 테니스 같은 운동으로 기분전환을 하라고 강요합니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집중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고 최면술을 통해서까지 집중력을 높여 논리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합니다. 물론 실패했지만요. 

결국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를 떠나서 노르웨이의 산속에 들어가서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논리학에만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러셀에게 말합니다. 러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은 노르웨이로 떠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노르웨이 호숫가에 짓고 철학 연구에 몰두한 오두막 - 출처: http://www.wittgenstein-foundation.com/


러셀의 말을 순순히 듣는다면 이미 비트겐슈타인이 아니겠지요. 다행히도 비트겐슈타인은 노르웨이에서 훗날 "그때 나의 정신은 불타고 있었다"라고 회상할 정도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논리학에서의 '다음번 성취'를 이루어냅니다.

그 다음 번 성취란 어떤 성취를 말하는 걸까요? 2019년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을 맞아 새롭게 출간되는 리커버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 기념 
리커버 개정판『비트겐슈타인 평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나와 세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필로소픽의 「MEANING OF LIFE」 시리즈 제8권 .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평가되는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결정판으로, 난해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흐름 속에서 꼼꼼하게 재구성해냈다. 목숨을 걸고 철학을 했던 한 남자의 삶과 사랑, 윤리적·미학적·논리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어느 철학 천재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러셀, 포퍼, 프레게, 무어 등 당대 철학자들에서부터 케인스, 스라파, 프로이트, 튜링, 릴케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 문화, 예술계 인문들과 비트겐슈타인의 교류를 통해 20세기 초 유럽의 지성사를 이끈 천재들의 향연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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