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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Apr 10. 2019

비트겐슈타인이 천재로 불리는 까닭 (1)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 《비트겐슈타인 평전》다시 읽기 (1)


올해는 영국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 1889-1951)의 탄생 130주년입니다. 

필로소픽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탄생 130주년(4월 26일)을 맞아 2012년에 출간했던 《비트겐슈타인 평전》의 리커버 개정판을 출간 예정입니다. 

개정판 출간에 앞서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을 톺아보는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새롭게 선보일 《비트겐슈타인 평전》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레이 몽크가 쓴 《비트겐슈타인 평전》의 부제는 '천재의 의무(The Duty of Genius)'입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천재 철학자로 유명하기에, 천재라는 수식어는 어색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 하나. 

천재면 천재지 의무는 또 뭘까?


천재에게 주어진 의무란 무엇인지 궁금하더라고요. 호기심을 유발하는 부제였던 거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 책을 훑어보게 되니까 성공한 것인데 적어도 저한테는 성공한 부제였습니다. 


아무튼 그의 스승인 러셀이 평했듯이 심오하고, 지배적이며, 열정적인, 전통적 천재상에 가장 부합하는 천재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왜 천재이고 천재로 불리는지 느낀 부분이 있어요.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학생의 '겸손한 자세'를 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1911년 10월 18일에 러셀의 연구실을 약속도 잡지 않고 무작정 찾아갑니다. 러셀은 자신의 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 낯선 독일인이 나타났습니다. 영어를 거의 못했지만 독일어로 말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알고 보니 샤를로텐부르크에서 공학을 공부하던 중 수리철학에 대한 열정이 생겨서 나에게 배우려고 막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매우 반겼다고 합니다. 주목할 것은 '처음에'라는 사실입니다. (-_-). 러셀의 수리논리학 강의는 수강생이 고작 3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인기 없는 강좌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강의 중에 거의 혼자 토론에 참여했고 강의가 끝나면 방에까지 쫓아와서 질문 공세를 펼쳤다고 해요. 그러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죠.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강의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생은 그야말로 천사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이에 대해 러셀은 호의적으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귀찮아하기도 했어요. 참 복잡한 감정으로 그를 대했죠. 이러한 그의 감정은 편지에서 잘 드러납니다. 


"독일인 학생이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에 따라와서 저녁 식사 때까지 논쟁을 했습니다. 완고하고 고집 세지만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911년 10월 19일)


"나의 독일인 공학도는 논쟁을 매우 좋아해서 성가실 정도입니다. 그는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이 확실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 [그는] 돌아와서 내가 옷을 입는 동안 내내 논쟁을 했습니다." (1911년 11월 1일)


'골칫거리'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얼마나 러셀을 괴롭힌 걸까요?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만난 지 열흘밖에 안 된 22세의 학부생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러셀 교수에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맞서서 논쟁했다는 점 말이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뭘 알고 러셀 교수와 토론을 한 걸까요? 우리나라 대학생 가운데서 교수님의 가르침에 맞서서 주눅이 들지 않고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간 큰 대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의 결기를 가진 그런 학생 말이죠. 그런 학생을 그냥 두고 볼 교수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벌벌 떨 것 같네요. 학점 걱정도 들고 그 논쟁에 대해서 교수님보다 더 잘 알 것이라는 자신이 없으니까요. 

여하튼 비트겐슈타인이 가지고 있는 이 주눅 들지 않는 갑(甲)의 자세, 이것이 바로 천재의 징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걸 알아보고 용인해준 러셀도 대단한 스승 같습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1912년 2월 1일에야 정식으로 케임브리지에 입학합니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한 번도 논리학을 공식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저명한 논리학자이자 킹스 칼리지의 교수였던 존슨에게 논리학을 배울 수 있도록 주선해줍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첫 시간에 그가 내게 가르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한편 존슨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의 태도가 황당했는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고 비꼬는 투로 말합니다. 존슨 교수는 순순히 강의를 듣지 않고 너무 논쟁을 거는 비트겐슈타인의 태도에 질려서 러셀에게 가르칠 수 없다며 포기해버립니다. 여기서 또 그가 취하는 갑의 자세가 드러나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태도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분투를 통해 힘겹게 얻어낸 특성이라고 몽크가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은 천재성을 보이지 못했고, 신동으로 불리는 형제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순종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천재의 특징을 가지는 데 있어 비트겐슈타인이 영향을 받았던 책이 바로 유대인 사상가 오토 바이닝거의 문제작 《성과 성격》입니다. 《비트겐슈타인 평전》 시작도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합니다. 


"논리학과 윤리학은 같다. 
그것들은 자신에 대한 의무일 뿐이다."


《성과 성격》은 천재가 아닌 삶은 가치가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자기 책의 결론대로 저자 자신이 충격적인 자살로 삶을 마감함으로 인해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자살을 '고통으로부터의 비겁한 탈출이 아니라 비극적 결론을 용감하게 받아들인 윤리적 행위'로 여겼습니다. 바이닝거의 죽음을 모방한 자살이 여러 건 일어났는데 이때 청년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의 군더더기'일 뿐인 자신이 자살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감정이 무려 9년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러셀을 만나면서 자신이 철학적 천재라는 걸 확인받은 후 극복합니다. 


"인류가 존속해야 한다는 것은 이성에게는 아무 흥미가 없는 일이다. 인간성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사람은 문제와 죄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것이다. 오직 문제만, 오직 죄만을 말이다.

바이닝거의 이론에 따르는 선택은 정말로 냉혹하고 무서운 것이다. 천재 아니면 죽음. 만약 '여성'이나 '유대인'으로서만 살게 된다면, 즉 만약 자신을 감각과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없다면 사람은 살 권리가 없다. 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삶은 영적인 삶이다. 

사랑을 성욕과 엄격하게 구별하고 천재의 작품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보며, 성적인 것은 천재가 요구하는 정직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확신은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태도와 잘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이 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바이닝거의 책이 비트겐슈타인의 사고에 가장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믿을 만하다."


천재 아니면 죽음! 굉장히 극단적이죠. 


2019년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을 맞아 새롭게 출간되는 리커버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통해 그가 천재라 불리는 이유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 기념 
리커버 개정판『비트겐슈타인 평전』(4월 말 출간 예정)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나와 세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필로소픽의 「MEANING OF LIFE」 시리즈 제8권 .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평가되는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결정판으로, 난해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흐름 속에서 꼼꼼하게 재구성해냈다. 목숨을 걸고 철학을 했던 한 남자의 삶과 사랑, 윤리적·미학적·논리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어느 철학 천재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러셀, 포퍼, 프레게, 무어 등 당대 철학자들에서부터 케인스, 스라파, 프로이트, 튜링, 릴케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 문화, 예술계 인문들과 비트겐슈타인의 교류를 통해 20세기 초 유럽의 지성사를 이끈 천재들의 향연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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