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연재] #03. 이선옥의 《우먼스플레인》
김용민: ‘이영자’라고 20대, 영남, 자영업자 층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황현희: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에 따르면 20대의 문 대통령 지지율이 지난 2018년 6월에는 83%였습니다. 굉장히 높았죠. 그런데 11월 첫째 주에 65%, 둘째 주에 59%, 셋째 주에는 56%로 하락했습니다. 관심을 끄는 게 20대 중에서도 남성 지지율 하락이 전체 지지율 하락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김: 지난 6월에 비해서 27%포인트가 빠졌습니다. 어마어마한 거죠. 흥미로운 건, 40–50대 남성들 지지율은 변동이 없는데 20대 남성지지율이 폭락 수준이에요.
황: 30대 남성 지지율도 많이 빠졌어요. 82%에서 59%로. (…중략…)
황: 작가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젠더 문제가 이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이선옥: 깜짝 놀랐어요. 우리가 <우먼스플레인>을 하면서 20대 남자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는 얘길 해왔잖아요.
김: 이선옥 작가님한테 처음 들은 얘기였어요. ‘에이, 그래도’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며칠 후에 신문에 실린 거예요.
이: 제가 3년 전부터 얘기한 건데.
황: 민주당에서 20–30대 남자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건 자유한국당에서 60–70대 남자 지지자가 떠나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으니까.
이: 20대 지지율 하락에 병역 문제도 컸다고 봐요. 6월에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그다음에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판결 내렸어요. 병역도 젠더이슈와 무관하지 않거든요. 지금 20대들은 따로 불만을 표출할 창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의사표시를 했다고 봐요. (…중략…)
이: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자신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하고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여성들은 여성들대로 기대가 있고 남성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을 굳이 반대하진 않았어요. 그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현 정부와 민주당 지자체장들이 시행하는 여성우대정책에 불만이 있어요. 지금 20대 남성들은 공기업 같은 취업 시장에서는 자신들이 페널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황: 2년 정도 뒤처져 있고.
이: 여성 쿼터제를 시행하거든요. 그리고 정부가 계속 여성을 우대하라는 압력을 주니까 남성들은 오히려 패널티라고 생각해요. 지금 20대 남성들이 가진 시대정신이 억울함이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억울함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내가 하지 않을 걸 했다고 할 때, 다른 하나는 내가 하기는 했지만 한 거에 비해서 과한 책임을 물을 때. 20대 남성들은 두 가지가 다 있는 거예요. ‘내가 무슨 기득권이야? 자라면서 한 번도 남자라고 이익 받은 게 없고 지금은 오히려 불리한데.’라는 게 있고요. 그리고 성범죄 얘기를 할 때 가해자가 대부분 남성입니다. 그래서 남성 전체가 성범죄자 집단으로 취급받잖아요.
황: 잠재적 가해자.
이: 그런 취급을 받으니까 ‘남성들이 성범죄에서 가해자인 것 맞아. 맞는데 내가 그런 건 아니잖아. 왜 그러지 않은 나까지 그런 취급을 받아야 돼?’ 하는 억울함이 있죠. 그런데 정부가 억울함을 해소해주기보다 계속 공정하지 않은 신호를 준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함이 분노 에너지로 가는 거예요. 억울한 사람이 어디에서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체념해서 무기력한 상태가 되거나 분노하게 되는데, 저는 분노 단계라고 봅니다. 이걸 그저 일시적인 상황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략…)
그런 데다가 각종 여성우대정책이 계속 이어지니까 이번 지지율 조사에서 병역 이슈와 맞물려서 터졌다고 봅니다. 이런 분노들이 쌓이니까 남성들이 온라인에 여성들을 우대하는 게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게시물을 끊임없이 올립니다. 예를 들어서 여경이 팔굽혀펴기를 못하는 영상, 교통사고가 났는데 남성 시민이 피해자를 구하고 있고 여경들은 옆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영상, 이런 영상들을 계속 찾아내서 올리는 거예요. (…중략…)
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가 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게 온라인에 존재하는 허수의 감정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실재하는 여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셔야 됩니다.
김: 혜화역 집회만큼 남성들이 나오면 인식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세계적으로도 남성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서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집회 같은 게 없습니다.
황: 그런 집회에 나가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을 거예요.
이: 여성이 약자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성은 자기가 약자라는 인식과 이에 더해 페미니즘이라는 이즘으로 무장해 있잖아요. 이념을 가진 집단은 조직화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런데 남성은 그런 이데올로기가 없고, 또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결집할 수 있는 게 없죠. 그래서 남성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표로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을 만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저는 본질적으로는 정부의 국정철학에서 기본권과 여성 인권을 동등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 봅니다. 페미니즘이 곧 성평등이 아닙니다.
성평등은 가치고, 페미니즘은 이즘이에요, 이념. 정부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가치이지 이념이 아닙니다.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것은 성평등과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는 뜻이라고 전 이해합니다. 이념적 의미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이념이고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한 가지 방안이에요.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통해서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려고 하는 거고요.
황: 성평등이라는 대전제 안에 있는 하나의 이즘이다.
이: 가치와 이념의 차이인 거죠. 성평등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고 성평등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페미니즘인 거죠. 둘을 동급으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에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성평등의 가치에 부합할 때는 정책에 반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안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정부는 구성원들의 갈등과 대립 상황을 조정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해야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는 인식을 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정부가 갈등을 조정할 때 적용해야 하는 것은 규범입니다. 규범은 헌법일 수도 있고 법률일 수도 있고 제도일 수도 있어요. 거기에 집중해야지, 여성이 약자니까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언더도그마에 정부가 빠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중략…)
여성우대정책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펴는 건 당연하죠. 어떤 철학으로 할 것이냐를 얘기하는 거예요. 국가나 정부가 견지해야 할 태도, 기본적인 철학이 보여야 되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공정함이란 신호고요. (…중략…) 여성을 들여다본 만큼, 이제라도 남성들의 분노가 사회의 나쁜 에너지로 작동하지 않도록 잘 살피고 보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