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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진 Apr 05. 2018

내 돈,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무슨 문제야?

자본주의 사회, '윤리적 소비'의 중요성


멍멍, 꿀꿀

 

 거친 표현이지만, 소위 '개돼지' 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흔히 정치, 사회, 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의식 없는 대중을 비난할 때 사용되던 단어였지만, 근래에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비윤리,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삼는 기업 집단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무비판적으로 구매해주는 소비자들을 가리켜 개돼지라 멸칭하는 것이다.


 워낙 과격한 표현인지라 소모적인 감정싸움이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어쩐지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무차별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여지는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좀처럼 생산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하곤 한다. 결국 '내 돈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대체 무슨 참견이냐'는 반론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다.





 확실히, 무엇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는 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이다. 그런데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어떤 기업의 상품을 구매한다는 행위를, 곧 그 기업에게 '투표'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주권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셈이니, 이는 마치 정치에서 어떤 정당에게 한 표를 던짐으로써 그 정당의 정책에 추력을 실어주고자 하는 행위와 상통한다. 그러면 결국 투표와 구매는 모두 내 이익을 더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집단에 대해 영향력(주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은 행위라고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때, 이 두 행위 간에 결정적인 차이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정치(민주주의) 체제에서의 투표권은 모든 구성원 각자에게 보편적이고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경제(자본주의) 체제에서의 투표권은 그 사람이 가진 자본만큼 주어진다는 점이다. 바로 이 결정적인 차이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된다.


 현대 인류 사회를 구성하는 두 원리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상호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자본에 의해 구성된 권력(이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 칭한다)은 반드시 민중에 의해 구성된 권력(이하 '선출된 권력'이라 칭한다)을 잠식하려고 하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자연적인 힘과도 같은 것이어서,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외력이 끊임없이 작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정해진 결과로 치닫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본가들이 가능하면 비윤리, 비도덕적인 행위를 동원해가면서까지 자본을 취하려 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이 욕망에 잠식되고 마는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본가들에게 있어 (자유)민주주의라는 사회 메커니즘은 불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며, 자신들의 목을 죄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가 금권과 폭력이어야만 자신들의 생존을 도모하고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에 있어 유리하게 작용할뿐더러, 무엇보다도 그 편이 더 비용이 절약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짊어져야 할 대가가 훨씬 더 적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하게도 지극히 반사회적인 것이다. 때문에 결국 인간인 이상 절대다수의 경우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을 침범하려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본가들의 전횡과 부정이 이처럼 필연적인 바라면, 당연히 그 대척점에 있는 대다수의 일반 대중들은 여기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저항'이라는 단어를 무슨 레지스탕스적인 투쟁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는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태생적인 욕구에 충실한 것이며 생존을 위한 반응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건축물이 자연에 의해서 풍화되어버리고 마는 것처럼, 끊임없는 갈등을 겪지 않고서는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가진 그 엄청난 투표권(자본)을 총동원해 필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일반 대중들은 얼마 쥐고 있지도 못한 투표권이나마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 논할 것도 없는 센스다. 그래서 어떤 기업이 '갑질'을 일삼으며 소비자들을 무지렁이 취급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오히려 그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맹목적으로 구매(투표)해주는 이들에게 통렬한 힐난이 가해지는 것이다. 그 기업에게 더욱 부정을 일삼아달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외면하고 있는 방관자보다도 더욱 죄질이 나쁜데, 이는 일종의 공범이나 다름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한들 어쩔 수 없다. 억울한 일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어떠한 행위도 그 결과까지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는 이다.


  



 인류가 격동의 역사를 거치며 찾아낸 최적의 대안이라는 사실이 무색하리만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자기파괴의 모순'이 그것인데, 끊임없이 수정 및 보완되지 않으면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 자체가 끊임없이 폐단을 적층하고 재생산하게끔 되어 있는 탓에 종국에는 자멸을 초래하고 만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비슷한 형태로 채택하고 공유하고 있음에도, 그 폐단의 정도가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진 '자정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다면 알 수 있겠지만, 소위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분류되는 국가들의 국민들이 특별히 더 선하다거나 탐욕이 적어서 폐단을 그나마 덜 겪었던 것이 아니라는 소리.  단지 조금 더 먼저 겪어보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 - 즉 일련의 제동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어 구성원들 간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생긴 것이다.


 가상의 예시를 하나 들어 보자. 어떤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평소 악의적인 폭리 추구 행태로 많은 소비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법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하청 기업의 인력과 기술을 탈취하는 것은 물론, 살인적인 업무량이나 허울뿐인 사원 복지 등 악덕 기업이라고 칭할 만한 요건은 다 갖췄다. 같은 상품이더라도 자국 국민들에게는 높은 가격에 팔아 과도한 이윤을 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 국민들에게는 낮은 가격에 팔아 시장 침투력을 확보하는 내외수 차별도 일삼는다. 내수용 상품은 극심한 원가 절감 탓에 품질이 형편없는 반면, 수출용 상품은 기업의 역량을 총동원한 듯 품질이 우수하고 합리적이다. 또한 갑질 논란이니 산업 재해니 하는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해도, 자국 국민에게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피해를 전가하는 반면, 외국의 국민들에게는 다소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성의를 다해 적절한 대처를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은 국가 A, B, C 각각 모두에게 존재한다(위에서도 말했듯 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때, 각 국가의 구성원들이 행하는 대처 방법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먼저 A 국가에서는, 수많은 소비자 단체들이 격렬하게 항의를 한다. 기업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기도 한다. 미디어 매체를 총동원하여 이 기업의 악행을 공론화하여 공개적으로 비난받게 하고, 잡지 등지에 광고와 칼럼 따위를 실어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그러자 이를 접한 대중들도 이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필수재가 아닌 이상에야 대체재가 있으니 굳이 특정한 제품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이 기업은 급감하는 매출과 멈추지 않는 비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그간의 악행을 정상화하기에 이른다.


 다음으로 B 국가에서는, 정부에서 관련법 개정을 전면적으로 검토한 후 신속하게 추진한다.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있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만한 문제들이라면 하나하나 세세하게 규제하여, 기업의 악행을 철저히 차단한다. 제 아무리 막강한 기업이라고 해도 국가 위에 완전히 군림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기에, 이 기업 역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제시된 부분을 정상화하는 노선을 택한다.


 마지막으로 C 국가의 경우, 여러 소비자 단체들이 비난 여론을 형성하려고는 했으나 오히려 기업 측에서 명예훼손이니 영업방해 등을 언급하며 소송을 통해 공격적으로 대응한 탓에 크게 공론화되지 못하고 심지어는 단체가 해산당하기까지 한다. 매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도 위법으로 취급되는 탓에 일개 개인은 공격할 방법조차 없다. 또한 이 단체들은 다른 국가의 단체들과는 달리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간신히 운영되는 단체들이었기에,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스탠스를 취하면 이 단체들도 반기업적인 정서를 형성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동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대중들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대체로 관심이 없는데, 일단 소비자단체 같은 곳에 가입하여 행동하거나 어떤 재정적인 후원을 할 만한 여유 자체가 없다. 게다가 본인부터가 그런 악덕 기업의 노동자인지라, 별 수 없이 얽매여 있는 상황이다. 대체재라도 풍부하면 모르겠는데, 이미 뭘 골라도 그 기업이 그 기업인 상황. 필수재 시장에까지 넓고 깊숙하게 침투해버린지라 불매 운동 같은 건 별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어렵다. 덕분에 C 국가에서는 이러한 기업이 더욱더 폭리를 취하며 거대하게 성장하여 공룡 기업, 초국적 기업의 지위에까지 이르게 된다.


 가상의 예시이지만, 각각 어떤 국가들을 빗대고 있는지는 대략적으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정 능력의 여하, 제동 장치의 여부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고, 특정한 집단이나 국가에게만 부여된 바도 아니다. 다만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갈등하며 이르게 된 합의의 총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라는 행위를 윤리와 도덕으로써 치열하게 고찰하고, 어떤 기업 집단의 상품을 구매한다는 행위란 실로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체계인 것이다. '내 돈을 꼭 내 마음대로만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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