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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Aug 13. 2019

'벌레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

[독서 모임 기록]


 ‘벌레들’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했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100여 년 동안 한국을 변화시켰던 그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까?

 마음으로 다가온 부분들이 있다. 동학이라는 한 사상이 당시 큰 흐름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세기가 지난 한국은 현재 ‘인권’이라는 개념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들이 말하던 ‘인내천’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절대적인 성역인 것이다. ‘인권’을 글로 가르치는 입장에서 우리는 개념의 출발을 서양으로 받아들이고 그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두 글자를 강조하고 있다. 불가침성이니 보편성이니 양도불가능성이니 하는 특징들과 함께 정치적으로 서양 사회에서 이 단어가 발달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충분히 인권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신분 차별에 신음하던 민중의 삶에서 동학사상이 가진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득권이 가진 권력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핵심 의미이지 않겠는가? 지금도 항상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새로운’이 갖는 방향성에 대해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통해서 이념(이데올로기)이 갖는 잔인함을 목격한다. 지금도 이념은 우리 사회에서 갈등 중이다. 미선이효순이 사건을 통해 시민 권력의 장이 된 광화문과 서울시청 광장이라는 장소에서 항상 볼 수 있다. 생활정치의 변화를 목도할 수 있다. 그 장소에는 한국갈등의 장면들이 항상 존재한다. 지금도 이념을 둘러싼 각축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책들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 입은 민중의 삶을 표현해주고 있다. ‘물푸레나무’가 목격한 끔찍한 학살의 모습, 조카의 눈에 비친 삼촌의 비밀 등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 항상 숨 쉬고 있는 것들이다. 단편 제목과 같이 ‘어린 물푸레나무의 기억’은 당시 사건을 ‘어린’의 입장에서 목격하고 그 기억을 성장한 지금의 나 또는 우리로 연결시켜보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우리들이 꼭 기억하고 짚어봐야 할 사건이라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성장기에 한참 한국 현대사 드라마가 유행했었다. 전두환 정권의 출발과 끝을 재조명한 ‘제5공화국’에서 삼청교육대를 소재로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다. 당시 학교에서 불량 학생들을 정리해 삼청교육대로 보냈다는 스토리는 그 때에도 충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붉고 푸른 못’은 당시의 폭력이 곪고 곪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녹슬어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은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발현될 수 있다. 국가 폭력의 경험이 시나브로 개인의 삶으로 잠약하여 있다 더 크게 일상으로 흩뿌려지는 것이다. 폭력 그 자체는 부당하다. 정당한 폭력, 합리적 폭력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위치에서 내가 혹시나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사한 폭력이 누군가에게 바이러스처럼 침투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권력은 상대적이다. 나의 폭력은 언젠가 당했었을 폭력의 재현이었으리라...

 몇몇 단편들은 아쉬움이 좀 남았다. 좀 더 역사적 사건과 연결고리를 가졌으면 좋았을 작품들이 있었다. 그러나 근현대사 흐름에 맞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국가, 권력, 신분, 이념, 폭력 등 핵심 사건들을 통해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들을 알게 해준다. 기념비적인 역사가 아닌 민중의 삶 속에서 말이다. 역사는 기억이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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