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에서 하나로
어떤 장면들마다 당시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던 시간들이 잠시 멈췄었다. 그동안 발생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억을 재구성하여 내일을 위해 기록하고자 한다.
1. 삼신 할매의 기적
7월 마지막 주 삼신 할매의 점지가 있다. 병원에서 전화를 받은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자기야, 임신이래..."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1년 반 동안의 기다림을 잊는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니면 아내는 휴직을 끝내고 복직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난임 휴직은 최대 2년을 쓸 수 있는데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기에 이마저 허무하게 끝나면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상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시도하면 좋을 것 같기에 휴직을 연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와 생각이 달라 잠시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 미안함이 남아 있기에 더욱 말없이 끌어안았다.
초음파를 보러 갔을 때 쌍둥이를 확인하면서 걱정이 시작되었다.
2. 예상치 못한 일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는 기뻐한 마음보다 걱정을 드러내는 말이 많아졌다. 작은 체구에 둘 다 나이가 찬 상태이기에 둘을 동시에 기를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임신에 대한 고민이 양육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것도 기우였다. 얼마 뒤부터 이런 고민은 사치라는 듯이 현실의 문제들이 마구 밀려왔다.
11주차 초음파를 보러 간 아내에게 카톡이 하나 왔다.
"자기야, 통화 괜찮아?"
이 때부터 이 카톡 문구는 나에게 불안감을 지속시켜주는 부정의 자극으로 남아있다. 통화를 하던 중 아내는 울먹이며 배 속 아이 하나가 탈장이라는 말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바로 난임병원 옆에 있는 여성병원으로 옮겨 융모막 검사를 받는다고 했다. 무슨 검사인지 알 수가 없어 큰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만 한 채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입원을 한다는 것이었다. 검사 중에 배를 너무 쑤셔대서 집에 가기 힘든 상태여서 입원을 하루 해야 할 것 같다기에 바로 조퇴를 쓰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입원 수속을 밟고 보호자는 코로나 상황에서 같이 있을 수 없다기에 저녁을 사서 넣어주고 집으로 돌아와 탈장에 대한 내용을 쉼없이 검색해보았다.
태아 탈장은 여러 종류가 있고 최근에는 의술이 좋아져 수술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내용들을 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임신맘까페에서 더많은 부정적 내용들을 확인하며 우울감이 지배하는 삶을 이어나갔다. 이 때부터는 계속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다.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어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탈장 진단서를 받고 큰 병원도 가서 진료를 보았다. 서울대병원은 걱정말라면서 낳아서 바로 수술하면 된다고 희망의 말들로 아내를 위로했다. 대형병원에서는 흔한 케이스인지라 우리의 심각성은 축에도 끼지 않는 듯했다. 1시 진료 예약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만난 건 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초진이기에 각종 검사와 초음파 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지난 번 초음파 때보다 탈장이 커보였다.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고 탈장 크기는 예상해서 말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긍정의 신호를 계속 보내고 나도 그런 말들을 계속했지만 아내는 차원이 다른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13주차 때는 아산병원에 다녀왔다. 서울대병원과 더불어 태아치료의 양대산맥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는 태아 심장 질환 수술로 유명했다. 어떤 희망을 갖기 위해서인지, 확실한 단념을 위해서인지 모를 이 때부터 아내는 도저히 아픈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다는 말을 했다. 아산병원 의사는 희망의 표현보다는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스타일이었다. 아내는 의사에게 바로 아이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다. 역시 그 의사는 사실에 입각해서만 말해주었다. 낙태가 헌법불일치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 탈장은 사유가 되지 않으며 혹시나 이 아이를 지우고 싶으면 둘 모두를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병원보다 선명한 초음파를 보며 탈장은 더 심해져 있었고 계속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까지 말했다. 자연스럽게 심장이 멈추고 도태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희망만을 주는 서울대병원보다는 뭔가 더 속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 때 모종의 결심을 한 듯 했다.
3. 현실의 고민들
큰 병원들에 다녀온 이후 아내는 결정을 내렸다. 아이를 지우겠다는 것이다. 11주차에 탈장 소견을 들은 이후 아내는 침대에 누워 인터넷의 세계와만 소통했다. 누구의 얘기도 귀에 들리지 않는 듯 했다. 혼자 벽을 쌓고 침대에 누워 치료 가능한 병원, 지울 수 있는 방법만 검색을 했다. 이런 아내를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생명을 지운다는 생각을 내가 동의해야 하는지, 실제 품고 있는 아내의 결정에 선뜻 공감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안타깝게만 다가왔다. 몇날 몇일을 깊게 생각하고 또 생각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기야, 나 결정을 내렸어. 아픈 애를 낳아서 수술하면 된다고 하니 생명 지우는 얘기를 바로 하는 게 도저히 찝찝했는데... 이제 생각을 바꿨어. 우리 복덩이만 낳아서 어떻게든 잘 기르자."
아내는 두 눈 가득 눈물의 홍수를 보였다.
4. 수많은 고민은 자연의 이치가 답이었다.
생명의 흐름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었나보다. 숱한 고민과 다른 병원으로 외유할 동안에는 심장 소리도 튼튼하던 쑥쑥이는 그 때서야 어미의 아픔을 공감한 듯 희미한 심장 박동 소리만 남겨두고 있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때 쑥쑥이는 결정을 내렸다. 의사도 이와 같은 소리로 아내를 위로했다.
"엄마 도와주는 거야."
아내는 그 자리에서 슬픔을 토하듯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아산병원에서 들었던 자연 도태 가능성이 실현됐지만 다양한 마음이 복잡하게 들어왔다. 복덩이와 쑥쑥이를 마주해 환희에 부풀었던 세 달, 쑥쑥이의 아픔에 불안했던 한 달, 복덩이도 잘못 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살아갈 남은 시간들... 인생을 경험하며 우리 부부는 삶과 죽음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통해 경험하고 있었다.
5. 남은 자의 기록
나에게 지난 한 달동안의 시간은 물리적으로만 존재했다. 모든 흐름이 일시 정지되었다 재생이 되니 모든 것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간을 지금 기억해낸다는 것은 모든 것이 재구성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쑥쑥이를 추모하기로 했다. 심장이 멈춘지 49일이 되는 날에 함께 절에 가 쑥쑥이를 위한 등을 달고 우리 부부에게 와줘서 고맙고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달래기로 했다.
복덩이는 이제 20주가 넘어섰다. 그토록 바라던 딸아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쑥쑥이 때문에 그리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함께 품어진 아이라 영향이 있진 않을지, 제대로 검사하지 못한 그동안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지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불안과 환희의 공존 속에 살아가야 한다.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긴 아내는 복덩이의 20주 정밀 초음파를 보았다. 30분 가까이 초음파를 봤는데 그 결과가 좋아 다시 환희의 순간을 경험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남은 기간 우리는 다시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