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늦게 2019년을 떠나보내며
설 연휴가 끝이 났다. 제법 바빴던 2019년을 보내고, 새로 맞이하는 2020년을 나는 구정 연휴를 핑계로 계속 미뤄왔다. 1월에도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하고는 있지만 평소보다 한 템포 느린 속도로, 뒷짐 지고 걷듯 먼 하늘을 자주 보며 오늘에 이르렀다. 본격적인 멘털 정비를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설 연휴는 딸과 두 조카 녀석과 함께 광탈하였고;; 뿌연 하늘만큼이나 나른한 오늘에서야 정리할 분위기가 되었다. 보통 나는 아주 가끔 브런치에 떠드는 것으로 자가 반성(?)과 함께 미래의 계획들을 뱉어내는 편인데, 과연 정리가 되려나-
새로워져야 한다는 간절함, 올해는 오직 그것뿐.
2019년 연말에 너무나 충격적이면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자기 계발 짤(?)을 하나 보았다. 강렬한 문장이 그대로 가슴에 꽂혀, 한 글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재생할 수 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 아인슈타인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단어가 세기 때문인지 잊히지가 않는다.
유사한 자극 포스팅들이 연말에 연이어 등장하였는데, 같은 맥락에서 울림을 준 것이 또 있었다. 인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3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 다른 시간, 다른 장소, 새로운 사람. 그 또한 지극히 동의할만한 내용이라 반박 불가 무릎 탁! 치며, 그래! 반드시 바뀌어야만 한다!라는 절박감이 나를 휘감았다.
어제는 나를 더 채찍질하는 재밌는 꿈을 꾸었는데, 내가 첫 사회생활을 했던 엘지생활건강에 재입사하는 꿈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볼 때마다, 그리고 실제 지금의 업황을 봐도 엘지생건은 정말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변함이 없지만! 꿈속에서 나의 마음은 대단히 절망적이었다. 재입사 첫 출근날의 꿈속에서 나는 숨통 쪼이는 업무 요구와 과거를 재현한 듯한 유관부서의 연락, 답답한 몇몇의 인물들까지 겹치면서 아놔.. 나 어뜨카냐.. 하는 생각을 하다 깼고, 잠시 동안 그것이 꿈이었는지 되새김질해보고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이 힘들고 바쁘고, 정말 다사다난했지만 퇴사하고 독립한 4년의 시간을 후회한 적은 없다. 특히 작년은 업무적으로는 도약의 시간이었다. 일은 끊이지 않았고, 다양한 접근을 해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이 활기찼던 2019년을 지나고 나서 절박하게 바꿔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갉아먹을 뿐'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독립하기 전의 나와 독립 후 4년을 생존한 나의 역량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밥벌이를 하고 있는 프레젠테이션 컨설팅 및 디자인은 경험치만큼 '숙련'되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대단히 새로운 스킬셋이 추가된 적이 없으며, 디자인 감각이 대폭 향상되었다고도 말할 수가 없다. 제법 좋은 재주를 믿고, 그것을 무기로 정글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가지고 있던 총알들을 계속 4년째 쏘기만 했지, 새로운 총알, 무기를 들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냥 지금의 나를 갉아먹으며 4년 동안 버텨왔으니 수입이 늘어난 들 그것은 한계가 뻔한 것이 틀림없었다.
새로운 공간과 사람. 자영업에서 사업으로.
어찌 되었든 나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일단 공간과 사람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TNC랩 홍용준 대표님의 도움으로 함께 쓸 수 있는 좋은 공간을 얻었고, 책상을 펼쳐놓고 사람도 뽑기로 했다. 작은 회사에 누가 올까 싶어 구구절절 회사 설명과 비전에 대해 자세히 공고를 하였더니만 3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최종 8명의 면접을 보고, 마지막 선택을 고심 중이다. 새로 선발되는 친구와 얼마나 좋은 호흡을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렇게 나는 일단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고, 막연하게 겁이 나서 시도하지 못했던 직원도 채용 중이다.
사실 대단한 플랜을 가지고 움직인 것은 아니다.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했고, 적어도 내가 다른 영역으로 생각과 활동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선 내 시간을 만드는 것이 간절했다. 일단 내 일손 일부를 성공적으로 덜어줄 수 있다면 성공 이리라는 생각이다. 그런 구조가 가능한지는 부딪혀 보지 않고는 모르겠다는 생각에, 뜸 들이던 숙제를 일단은 저지른 셈이다.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어찌 되었든 액션이 시작되어 다행.
나의 방향을 되묻다
이제 앞으로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내가 퇴사 시점부터 생각했던, 마케터적인 시각에서 항상 생각했던 것은 내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였다. 내 일에 대해서, 꼭 그게 아니라 다른 관점이 되더라도 흔적이 남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그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용역'이었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남의 일이자 업적'이 되는 것이다. 돈이 되니 열심히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이 구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항상 평가절하하곤 했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사람을 더 뽑아 이 일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늦어졌던 것 같다. 난 그냥 용역 말고 겁나 멋진 콘텐츠 기반 비즈니스를 할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으로. (하지도 못하면서)
이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직원의 운명이 생기는 만큼, 지금껏 제법 잘 해온 용역 모델은 피할 수도 없다. 용역은 이제 우리 팀의 기반이 될 테니 올해는 계속 프레젠테이션 용역을 하되 작년의 경험으로 배운 '좋은 클라이언트를 늘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내 할 일을 공개된 브런치에 쓰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이 글이 연말에 나의 거울이 되길 바라고, 유사한 고민으로 퇴사하고 좌충우돌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프레젠테이션 용역에 있어 일이 즐거웠던 IR/데모데이 피칭 작업 확대를 위해서 VC, 스타트업들, 엑셀러레이터들과의 접점을 최대한 늘려봐야지. 그리고 한번 맺어지면 오래가는, 가장 안정적(?)인 공공기관들에 대한 직접 영업을 확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용역에 있어 이 두 줄기가 올해 화두. 얼마나 더 확대할 수 있을지는 연말 즈음에 다시 돌아보기로 하자.
직원이 드디어 내 시간을 조금씩 벌어다 줄 즈음, 나는 꼭 강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연사가 되어 볼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몸을 던져 볼 생각이다. 내가 해온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콘텐츠로 꼭 풀고 싶다. 기버(Giver)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내가 가진 이야기와 재주를 최대한 풀어내어 많은 이들에게 주고 싶다. 이러한 작업들은 이제 더는 미루지 않고 해야지. 정해진 날짜를 두고 발행을 해볼 생각이다. 조금 더 똑똑한 비즈니스를 위해 이 콘텐츠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자꾸 맥을 끊어왔던 마케팅 팟캐스트 "돌팔지마"와, 내 육아 콘텐츠 또한 너무 욕심내지 말고 발행기간을 설정하여 적어도 "꾸준히"하고 싶다. 가장 콘텐츠 노동이 적었기에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인스타그램 육아기록은 어느새 팔로워가 7,500여 명이 된 지 제법 되었다. (분명 콘텐츠라는 것은 꾸준히 하면 성과는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콘텐츠는 당장 수익에는 아무런 득이 없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즐기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꾸준히만 해낸다면 분명 어떤 스파크가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쓰다 보니 욕심이 참 '오져버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주 롱텀으로, 한 발자국씩만 나갈 수 있게 해 보련다.
나의 속도를 되묻다
프레젠테이션의 경우, 나는 장담컨대 퀄리티 대비 속도 면에서는 이제 누구보다도 빠르다고 자부한다. 프레젠테이션을 수주함에 있어서는 겁이 1도 없다. 그러나 이 용역 말고 나머지 위에 열거한 새로운 방향들은 모두 다 걸음마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계속 스스로 주문을 거는 것은, 천천히 해도 된다.라는 것이다.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조금 조바심이 나더라도 계속 걷는 것이 필요한 한 해라는 생각을 한다. 당장의 작은 이익들을 최대한 외면하고, 지금 계획한 바를 실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내년과 내후년이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참 대단한 마음 수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하.
먼저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도와줄 거면 제대로 돕고, 받아야 할 때는 제대로 받고.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자. (벌써 두 번째 되뇌고 있음!) 이렇게 1년을 걸어보면 또 느끼는 바가 있겠지. 이것이 당장 내 속도를 늦추는 것 같더라도 주저하지 않기로 하자. 영업 활동에 있어 먼저 내어주는 방식을 다각도로 접목해 볼 생각이다. 이러한 실험도 나중에 꼭 결과 리뷰를 해보기로 하자.
제일 중요한 것은, 퇴사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되새김이다. 바로 내 가족, 내 아내와 딸에게 필요한 당장의 행복을 절대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내가 회사를 떠나 독립 주체로 살면서 아무리 바빠도 평균적인 인생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던 것은, 적어도 가족에게 쓰는 시간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었던 점이다. 이제 내가 그 '회사'라는 것을 만드는 첫걸음에 섰지만 나는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내 직원에게도 그것만큼은 보호해 주면서 이 철학을 지키고 싶다. 이런 회사가 잘 굴러갈지 아닐지 또한 1년 후 즈음이면 답이 나와 있겠지. 조금 느리더라도 역시 조바심 내지 말자. 천천히 해도 된다. 계속 되뇌어 본다.
이제 또 나는 언제쯤 브런치에 글을 남기게 될까. 그때는 오늘의 다짐들이 멋지게 자리 잡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껏 그래 왔지만 이제는 더더욱 나 홀로 될 일은 아니다. 내 가족이, 나의 직원이, 내 파트너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미래가 될 수 있게 차근차근 나아가 봐야지. 이제 5년 차에 들어 1인 기업을 졸업하고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드는 나님, 화이팅이다. (힘내라 너 망하면 답도 없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