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번아웃 일리는 없다는 오만을 반성한다.
열정적 행동가, 넉다운되다.
군대에서 한참 책을 많이 볼 때였다. 상당히 유명한 미래학자의 책이었는데(송구하게도 작가의 성함은 잊어버렸다.) 내 가슴속에 아주 진하게 남은 한 문장이 있다. 그가 책의 본문도 아니고 서문에서 말하길 "나의 묘비에 이렇게 적히길 바란다. 열정적 행동가 여기에 잠들다." 오 마이 갓. 열정적 행동가. 이것이다! 이게 바로 나다!
나는 그 이후로 좌우명을 자신 있게 "열정적 행동가"라고 떠들었다. 실제로 나만큼 쉴 새 없이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흔한 부류는 아니리라.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안타깝(?)지만,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해야만 삶을 사는 기분이 드는 다소 피곤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고교시절부터 나의 몰입은 장르를 바꿔가며 계속되었다. 매번 1등을 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의 목표지점까지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되도록 빈손으로 그만두는 일은 없고자 했다. 창업해서는 더 열심히 달렸다. 늘어나는 일에 3-4시간 조각 잠을 자며 볼륨을 키워 지금은 4명 이서도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알찬 스튜디오가 되었다. 휴식이라는 게 있었나 싶은 빽빽한 삶이었다. 다행히 모두가 무사하게 느껴졌다.
가끔 일하다 지칠 때면 제주도에 가곤 했다. 제주도에 간 횟수가 많은 해일수록 사실 내 삶의 여백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도망가던 곳이었으니. 제주에 가도 노트북을 펼치지 않은 날은 없었다. 그래도 금능 바다를 잠깐 보고 있으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 보내고 돌아오면 다시 한동안 껄껄껄 허허허 하며, 원래의 강철 멘탈갑 열정적 행동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줄 알았다.
새벽 기상이 너무 힘들어졌다.
본격적으로 회사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이래로 내 기상시간은 항상 4시였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기 전부터 난 4시 기상이었고, 벌떡 일어나 사무실에 출근해서 앉으면 보통 4시 40분 즈음을 넘지 않았다. 일이 좀 바쁜 날에는 3시 반쯤 일어나, 사무실에 4시 무렵부터 일을 하기도 했다. 익숙해지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 집중하는 그 새벽 공기 특유의 느낌도 좋았다. 최근까지도 나는 항상 그 시간을 지켜왔다. 그런데 아주 갑작스럽게 그것이 너무 힘들어졌다.
알람을 4시에 맞추어도 몇 번이나 다시 울려 겨우 5시 무렵에나 눈을 떴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지자 자꾸 아내가 뒤척이는 것 같아서 아예 알람을 5시 반으로 조정했다. 5시 반도 힘들었다. 6시가 다되어 눈을 뜨면, 사무실에 6시 40분 무렵. 여전히 이른 시간이지만, 나는 이상하게 자꾸 늦어지는 내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잠드는 시간은 이른 편이므로 물리적으로 자는 시간이 특별히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렵게 일어나 회사에 나와도 집중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소한 다른 문제에 집착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 음악 스트리밍이 자꾸 끊기는 문제 같은. 뭔갈 자꾸 사기도 했다. 괜히 키보드 한번 바꿔보고. 사무실 슬리퍼도 주문했는데 아직 안 왔다. 괜히 선반을 하나 더 사볼까? 하다가 그것은 포기했다마는. 쓸데없는 관심을 여기저리 뿌려댔다.
신발끈을 고쳐 메고 으쌰! 하고 쉽게 달려 나갔던 지난날들에 비하면, 지금은 일어나서 몇 발자국 가기도 전에 기립성 어지럼증으로 휘청하는 느낌. 신발끈이 아니라 밑창이 떨어져 나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자꾸 난 이상하다.. 하면서 신발끈을 고쳐 메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거무죽죽한 회색이 된 느낌
열정적 행동가라는 단어가 분명하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선명한 빨간색(255,0,0)으로 주변을 물들이는 데에 주저 없는 사람이었다. 내 아내와 딸에게도 항상 껄껄껄 유쾌한 아빠였으면 했고, 직원들에게는 대표이기 이전에 듬직하며 동시에 따르고 싶은 선배이고 싶었다. 클라이언트들에게는 마음 편안한 파트너이고 싶었고, 다소 힘들어도 유머가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모두 다 멋지게 해내는 것은 당연히 어렵겠지만, 제법 뜻대로 잘 이끌었던 삶이라 생각했다.
최근의 피로감은 가끔 일에 지쳐 으악-하고 제주로 떠나던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괜히 살만 더 찌는 것 같고, 거울 속의 내 얼굴, 내 눈빛에 총기가 흐려 보였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났고, 새 생명을 품에 안았을 때 벅차오르는 마음은 마치 처음인 양 새로웠고 너무도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은 금세 영상통화로 전환(조리원 면회 통제)되어 버렸고. 몸조리하느라 아내는 조리원으로, 첫째 딸은 할머니 집에 두고서는 빈 집에 혼자 가 집 정리를 하다 보면 사무치게 우울감이 스며왔다.
누군가는 아내가 조리원에 있는 이 시간을 마지막 방학이라 여기라 하였는데 전혀 방학 같지 않았다. 할 일은 그대로 매일매일 빼곡했다. 차라리 아내한테 혼나면서 어지른 집을 치우거나,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딸내미가 재잘거리는 소리에 대꾸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원래 혼자 있을 때 더 바쁘고, 아이디어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시간을 툭 던져주면 계획이 막 늘어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요즈음은 그냥 회색이 되어버렸다. 뭔가 계속하고 있는데, 그냥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아..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나.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 바빠서 아 힘들다.. 하던 때와는 심적 체력이 다른 느낌. 글로 한번 남겨야겠다 싶어, 오늘은 일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글을 쓴다.
그럼 어떻게 다시 빨간색을 찾지?
그래, 번아웃 좋다. 나 지쳤다! 인정을 해주련다. 근데, 그럼 어떻게 나는 다시 빨간색을 되찾을 수 있는 걸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잘 쉬는 법을 모르겠다. 할 일들은 항상 있고, 많고, 계속 쌓인다. 나는 매일 내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쉬어야 충전이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아내는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서 나에게 편지를 써주었다. 아침 기상이 참 어려운 요즈음, 부스스하게 자다 깨서 편지를 보고는 눈물이 났다. 사실 그날 이후로 나는 항상 아침에 그 편지를 읽는다.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여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내도 사실 나의 마음과 상태를 알고 있으리라. 내가 지쳐 보이기에, 아내는 그렇게 편지를 써주었던 것 같다.
심지어 아내는 둘째 갓난쟁이가 생긴 이 마당에 나에게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재충전을 하고 오라며, 며칠 금방 지난다며 말이다. 아내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아마 다른 친구들한테 말하면 열광적인 부러움을 살만한 이야기 이리라. 그런데 글쎄, 여행을 다녀오면 나는 충전이 되는 걸까? 어떻게 쉬어야 나는 열정적 행동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어서 다시 에너지 넘치는 아빠, 남편, 대표로 돌아오고 싶은데.. 무슨 템플스테이라도 갔다 와야 되나. 허허 참. 여전히 나는 쉬어도 될까에 대한 겁이 난다. 이렇게 회색으로 지나느니 며칠 쉬는 게 낫겠다 싶으면서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내가 좀 안타깝다. 이 어정쩡함이 참 안타깝다.
'열정적 행동가' 곧 돌아오리.
아직은 어떤 휴식이 좋은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에너지를 엄청나게 뿜어주시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좋은 쉼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어떻게 그 에너지를 유지하는지, 내가 시도해보지 않은 어떠한 쉼의 방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놀라운 에너지들을 쏟아내 주시는 분들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 있자면 더 힘 빠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에너제틱한가 싶어서.. 하하. 나는 매일매일 무언가 해내고는 있지만, 이렇게 대충 회색으로 사는 것은 썩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제대로 쉬는 방법, 나에게 맞는 방법을 이 기회에 찾아야겠다. 쉼을 미루는 것도 정말 끝자락인가 보다.
글을 다시 위에서부터 보니 좀 바보 같다. 쉬어야겠다. 근데 할 일이 많다. 쉬고 싶다. 근데 내 역할이 많다. 아아- 쉬어야 한다. 이렇게 같은 말이 입에서 맴도는 걸 보면, 쉬고는 싶은 모양이다. 인정하고 좋은 휴식을 생각해 봐야지. 남들 다 그렇게 애쓰며 사는데, 나만 엄살떠는 거 같아서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어서 털어내고 열정적 행동가를 다시 만나러 가야지.
어서 내 색깔을 다시 찾고 싶다. 곧 돌아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