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루루흐> 에서.
이곳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각자가 되는 시간을 내건다.
단,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려면 방문자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동반 2인까지 착석 가능 / 2시간 이용 시간제한 / 사진 촬영 제한 / 노트북 사용 금지 / 주차 불가
‘뭐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아?’ 싶지만
아파트와 연립 주택 사이 1층. 마을에 조용히 스며든 이곳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나 역시 책 한 권 들고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굳이' 찾아온 이였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테이블마다 사람들은 각자 자리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혼자였지만, 약속된 침묵에 소리 내는 것이 절로 조심스러웠다. 이어폰을 꽂고 주변 소음을 막을 필요도 없이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음악이면 충분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얼음은 이미 녹아 커피는 연한 색을 띠고 있었다.
오후 네 시.
나는 겨우내 짧아진 해가 실내에 대각선으로 파고드는 시간을 빤히 바라봤다.
아까는 미처 눈에 들지 않았던 한 사람에 시선이 멈췄다.
여자는 검은색 니트, 검은색 바지를 입고 회색 모카신을 신고 있었다. 나이는 30대쯤?
머리칼과 기운 해에 지는 그림자 때문에 생김새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냉랭한 공기가 바닥에 맴도는 탓인지 목에는 패턴이 단조로운 얇은 목도리를 두르고 길게 늘어뜨린 채 골똘하게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다 마신 아이스 드립 커피 한 잔, 빈 요구르트 그릇이 머무른 시간을 알려준다.
책을 읽다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쓰고, 또 그러다가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다.
흰 벽을 캔버스 삼아 유화로 시간을 묶어둔 듯한 여자의 모습을 한참을 쳐다봤다.
아무도, 그 무엇도 방해 못할 테이블만큼의 세계.
그 세계가 한 데 어우러진 이곳에서 여자의 것은 어쩐지 묵직해 보였다.
허락을 넘어 동의된 침묵과 고독은 모두를 품고 있었다.
마음속을 부유하던 사사로운 생각들이 천천히 가라앉았고먼발치의 여자는 내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