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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경 Dec 15. 2021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일에 대하여

금속을 공예합니다

약 3개월째 금속 공예를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두 시간. 금속 재료를 활용해 반지, 팔찌, 귀걸이 등 주얼리를 만든다. 오래전부터 작은 악세서리를 잘 사들였는데, 대단한 디자인은 아닐지라도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여러 공방의 컨디션과 포트폴리오를 훑었고,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작은 공방을 선택했다. 공예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강사의 감각을 배우는 일인데, 계동 공방의 작업물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금속 공예는 황동 판, 은 판, 왁스 등을 주재료로 다룬다. 작업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주재료들을 자르고, 열을 가하고, 다듬는 일을 반복한다. 황동이나 은보다 밀도나 세기가 강한 쇠톱으로 판을 톱질하고, 단단한 은을 손으로 휘도록 토치로 벌겋게 달구고 -은 재료는 가열되면 은의 입자와 입자 사이가 넓어져 쉽게 휘어질 만큼 부드러워진다- 시퍼런 액체에 담가 그을림을 없앤다. 이후 다양한 크기의 평대줄로 모양을 다듬고, 종이 사포로 결을 만들거나 광을 낸다. 그 외에도 쇠망치, 고무망치, 쇠 가위, 드릴 등을 곁에 두고 사용한다. 작고 쿨한 악세서리는 이런 쇠붙이들로 만들어진다. 수업이 끝나면 양손 가득 쇠 냄새가 짙게 묻어날 때도 있는데, 그 옛날 놀이터 그네를 타고 내려오면 손바닥에서 나는 냄새가 떠오른다.


이토록 비일상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물리적이고도 화학적인 작업엔 큰 힘보단 섬세함이 요구된다. 물론 얼마만큼의 악력은 갖춰야 하지만, 앞에서 말한 도구들은 이름만 무시무시하지 사실 굉장히 작은 편이다. 작은 톱, 작은 망치, 작은 드릴. 붉게 달구어진 쇠를 달금질 하고 망치질하는 대장간이 아니다. 나는 손에 낄 작은 반지를 만드는 중이다. 그래서 힘보다는 예리한 눈썰미를 장착해야 작업물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동그란 반지가 찌그러지진 않았는지, 고르게 줄질이 되지 않아 튀어나온 부분은 없는지 등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작업이 서툴면, 꼼꼼함은 망설인 흔적들로 작업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루기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럼 또 그 망설임을 지우기 위해 다듬고 또 다듬는다.


그러다 보니 작은 것들을 만드는 과정엔 실수를 범하기 쉽다. 판에 금긋계로 그은 선을 넘어 톱질을 하기도, 자르지 말아야 할 것을 자르기도 한다. 이를 만회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만 해결하고 이어서 작업을 한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별 수 없이 작업을 리셋해야 하지만, 그럴만한 실수는 딱히 없다. 부분 땜질 등 그때그때 가능한 방법으로 실수를 메우고 완성하는 법을 익혀야 실력이 늘고 작품의 완성도가 오른다고, 강사님은 나의 작업물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게다가 취미로 하는 일에 점수를 매기거나 돈을 받는 게 아니니 실수해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그래, 좀 실수한 작업물이면 아무렴 어떻겠는가. 내가 좋아서, 내가 간직할 작은 물건일 뿐인 것을.


귀걸이, 명패, 이니셜 팔찌, 반지, 브로치 등 수업 과정을 성실히 따르며 제법 많은 소품들을 얻었다. 평소 SNS를 하지 않는 편이라 보란 듯이 자랑할 일은 없다. 대신 명패는 매일 앉는 책상 위에 세워두고, 브로치는 매일 쓰는 파우치에 달고, 반지는 기분에 따라 골라 끼고 외출한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갖는 일은 즐겁다. 이걸 만들면서 내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어려운 과정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내가 알면 된다. 그런 것들이 내 주변과 내 삶에 조금씩 늘어가면 좋겠다.


지난 3개월 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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