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먹을 거라면 (1)
'하루 한 끼 만들어 먹기'
퇴사 후 하고 싶은 것들을 종이에 적어본 적이 있다. 대체로 신체를 건강하게, 정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가짐이었는데, 가령, 아침 요가하기, 매일 일기 쓰기, 김밥 싸서 한강 가기, 혼자 여행 가기와 같은 우아하고 평온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하루 한 끼 직접 해 먹기'를 가장 잘 해내고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다만 좋아한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니 조금 더 정확하게, 흉내를 잘 낸다. 식재료를 즐겁게 다루는 사람들의 감각과 솜씨를 믿고 따라만 하면 나도 그럴싸하지만 소박한 끼니를 차릴 수 있다.
계란찜에 꽂힌 적이 있었다. 왜 그토록 계란찜을 찾았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계란찜이지 않은가. 다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안주로 나오는 계란찜을 먹고 싶었다. 만개의 레시피 앱에서 [계란찜]을 검색해보니 계란찜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 푸딩 계란찜, 폭탄 계란찜, 시금치 프리타타, 파프리카 계란찜 등. 사실 내가 찾는 건 폭탄 계란찜에 가장 가까웠으나 상상만으로도 더러워질 가스레인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한참 스크롤을 내리다 꽤나 맛있어 보이는 썸네일을 발견했다. 타이틀도 매혹적인.
"꿀맛 보장 레시피, 정말 간단, 매우 맛남, 시골밥상, 집밥 (살짝 국물 있는 스타일)"
살짝 국물 있는 스타일, 이거다 싶었다. 뚝배기 바닥까지 퍽퍽하게 익은 계란찜이 아닌 국물이 있어 찌개처럼 퍼먹을 수도 있는 계란찜. 초간단 황금 레시피를 자부하는 설명은 길지 않았고 재료도 간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 해먹은 이후 지금까지도 무조건 공식처럼 이 매력적인 레시피를 따르고 있다.
꿀맛 보장 레시피의 핵심 포인트는 불을 끄는 시기다. 뚝배기 안쪽 표면에 참기름을 골고루 발라준 뒤(이것 역시 레시피에서 강조하는 부분), 달궈진 뚝배기에 계란물을 넣고 거품기로 계속 저어주는데 가장자리에 거품이 생기면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아준다. 설명대로라면 거품이 생길 쯤엔 계란물속 계란이 겨우 몽글몽글해지는데 그때 불을 끄라는 것이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일단 뚜껑을 닫고 2분 정도를 기다린다. 의심하는 마음을 외면해야 한다. 3분 요리, 컵라면이 그렇듯 주방에서는 긴 2분이 지나고 뚜껑을 열면, 뚝배기 가운데 소복하게 계란이 부풀어 있고 그 주변은 촉촉하게 살포시 익은 계란찜이 영롱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계란의 숨이 순식간에 죽으니 서둘러 그 위에 통깨와 고춧가루를 뿌려주면 요리 끝. 거기에 전날 먹다 남은 밥 한 공기를 데우고 아삭아삭한 무생채 한 접시면 한 끼가 완성된다. 밥숟가락으로 듬뿍 퍼서 입으로 호호 불어 먹기 시작하면 몸이 천천히 기분 좋게 데워지는 기분이 좋다.
내가 차려 먹는 나의 한 끼는 요리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 물론 간단할수록 흉내내기가 쉽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화려하지 않아도 단조로운 요리법만으로도 충분히 식재료 본연의 맛과 즐거움을 챙길 수 있다. 이런 따뜻한 한 끼를 아점으로 챙겨 먹는다. 주말뿐만 아닌 평일에도. 역시 일 하지 않는 자의 행복은 모두 주변에 있다. 아니, 이제야 그런 소중한 것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걸, 일을 그만두니 알게 되었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내일 아침도 나는 계란찜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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