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고교학점제, 우려되는 점을 점검해봅니다.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과 관련하여 여전히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는 지금, 벌써 2024년이 지나가고 2025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학교에서 시험적으로 시행하며 제도를 정비해 왔지만, 이 제도는 여전히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고교학점제의 추진은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의대 증원 사태와도 유사한 맥락을 띠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논란과,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충분한 인력 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일방향적인 강의식 수업에 익숙한 교사들의 현실적 어려움
한국 교육은 오랜 세월 동안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 방식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이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깊게 자리 잡은 교육의 '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성을 가진 교사들이 갑자기 대학 강의와 유사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고교학점제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으이 방식은 다양한 형식과 자유로운 사고를 전제로 하지만, 고등학교 교사들은 정해진 교과서를 사용해 정해진 교육과정에 기반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물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시는 교사들께서는 이런 고교학점제 하에서도 최선의 노력으로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고 싶어 하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갑자기 자유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수년간 자동 변속기만 사용해 온 사람에게 수동 변속기를 타고 산길을 달리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그 실행의 주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결국 그 제도는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더욱 심화될 계열 편향 문제
고교학점제 도입이 논란이 될 때마다 문제가 된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학문 간 균형의 문제인데요.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고교학점제의 특성 때문입니다. 2024년 현재 문, 이과 반의 선택 비율은 한 블로그 게시물에 따르면 일반고는 4:6 정도, 자사고나 특목고의 경우 외고, 국제고와 같은 특수 케이스가 아니라면 2:8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0101_0002577006
이렇게 문이과의 선호도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문과 과목들이 더욱 기피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고교학점제 공식 사이트에 제시한 구성 방안을 살펴보면 우려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서에서 제시한 <방안1>은 기존의 선택과목 제도와는 학제 간 제한이 사라졌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고, 문제는 <방안2>입니다. 다음 두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는데요.
이렇게 되면 2학년, 3학년 때는 국어를 아예 안듣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과목을 아예 안들어버리는 상황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단순히 선택 과목을 줄이거나 필수로 편성하는 문제를 떠나, 문과가 아예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는 어쨌든 강제로라도 수업 시수를 맞추게 되어 있지만,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만 선택하게 되고, 현재의 추세가 유지된다면 이과 과목이 우세를 점할 것입니다. 만약 문과가 사라진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와는 다르게, 고교학점제에서는 문과 과목을 듣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현 상태의 연장선이 아닌, 더욱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문제입니다.
셋째, 교사들의 피로감 가중
고교학점제의 시행으로 인해 교사들의 업무 부담은 극에 달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수업 구상, 학교 행정 업무, 학생 관리 등 여러 가지 업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10462)
그런데 고교학점제 아래에서는 수업의 형식조차 정해져 있지 않고, 교사들이 그저 콘텐츠만 정해진 상황에서 자유롭게 수업을 구성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수업을 선택하도록 만들기 위해 경쟁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합니다. 이는 고교학점제의 수업 개설이 학생들의 선호도 조사에 기반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학교 교사들에게 그것을 유도할 수 있는 유인책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모든 수업이 무난한 형식으로 진행되거나, 신규 임용된 교사나 열정이 남아 있는 일부 교사들이 독박 수업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마치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 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교사에게 남는 것은 더 큰 책임감과 그에 따른 피로감 뿐일 것입니다.
고교학점제, 과연 준비가 되었는가?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좋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고교학점제는 단순한 과목 선택의 문제를 넘어, 교육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수능이나 입시 위주의 교육을 넘어서는 무언가로의 발전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교육이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이끌어가야 할 중요한 분야입니다. 그렇기에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이에 맞춰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산업 수요나 필요에 따라 즉각적으로 조정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그저 '좋은 취지'만 남고, 실질적인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교육당국은 그동안 집중이수제나 수능 A/B형 시행 등 수많은 교육 개혁 정책들이 '좋은 취지'를 내세워 시행되었으나, 결국 그 결과는 더 큰 혼란과 문제를 초래한 사례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카루스가 태양에 다가가다 날개가 녹아 추락하듯, 준비되지 않은 고교학점제는 결국 더 큰 추락을 불러올 위험이 있습니다. 정부는 고교학점제가 그저 이상적인 제도로 끝나지 않도록, 실제 현장을 더욱 면밀하게 관관찰하고, 그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