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화영 Feb 19. 2021

다르다는 것은 불편한 것

존중을 위해 필요한 것들

코로나 때문에 이번 설 명절에도 부모님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했다. 지난 추석 때처럼 연휴 끝나고 혼자 목포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와이프와 딸은 스마트폰으로 세배인사를 드리고, 세뱃돈은 계좌이체로 받았다. 우리 가족도 변화된 환경에 나름 적응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명절 때마다 모이던 친구들도 이번에는 만날 수 없었다. 잘 지내는지 전화로 안부인사 정도만 서로 나눴다. 대전에 사는 한 친구 녀석은 이번에 와이프와 크게 싸운 모양이다. 결혼을 마흔 넘어서 하고 2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는 친구인데, 이 친구 가족은 설 당일에 목포 부모님 댁에 잠깐 들려서 인사만 드리고 다시 대전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세 가족이 대전에서 목포까지 차를 끌고 갔는데, 부모님 집에도 안 들어가고 밖에서 인사만 하고 돌아온 것이 싸움이 원인이었다. 친구 와이프는 코로나 규제(5인 이상 집합 금지)때문에 집 안까지는 안 들어간 것인데, 내 친구는 부모님께서 섭섭해하신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친구는 와이프가 본인의 생각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말이 세게 나가게 되었고, 그것이 말싸움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존중

잘 알려진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부터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5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아래에 있는 욕구가 먼저 채워져야 상위의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가장 상위에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 바로 아래에 있는 욕구가 바로 '존중의 욕구'이다. 인간에게 존중은 채워져야 하는 욕구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많은 조직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구성원 간의 존중을 요구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존중받는 것, 누군가를 존중하는 것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누군가에게 존중받기 위해서는 먼저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다른 것은 불편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와이프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많이 모으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결정하는 것을 최대한 뒤로 늦춰서 한다.(MBTI에서 P형) 반면에 나는 결정을 빠르게 하는 것을 선호하는 유형이다.(MBTI에서 J형) 함께 쇼핑을 할 때마다 서로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함께 쇼핑을 하지 않는다. 쇼핑할 때마다 서로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격뿐만 아니라 취미, 가치관, 직장에서 일하는 스타일 등에서 누군가와 다를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는 존중을 쉽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존중은 '나와 다른 것은 불편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교정반사'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본인과 다른 것은 반사적으로 바꿔주려고 하는 경향이다. 와이프에게 쇼핑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잔소리하고, 아이에게 정해진 계획표대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나의 생각대로 상대방을 고쳐주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한다. 존중(respect)이라는 단어는 'respicere(바라보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철학자 에리히프롬은 '존중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며, 인간의 개성과 독자성을 인식하는 능력'이라고 얘기한다. 누군가를 알지 못하면서 그를 존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교정반사처럼 상대의 상황이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폭력과 다름없다. 존중을 위해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존중을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 동기의 카톡 프로필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나의 기분은 나의 태도가 되면 안 된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금방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의 감정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영향을 주게 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임이 틀림없고 매번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려는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 기분이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잘 관리할 수 있어야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  

다윈은 진화론의 핵심을 '종의 다양성'이라고 했다. 자연은 환경에 부적합한 생물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적응에 유리한 기능을 선택하고 발전시키려고 하는데, 환경에 적합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종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많은 조직에서도 조직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다양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조직에서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도서 '담론'에서 신영복은 공자의 화동담론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존중이라는 것은 개인이나 가정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역시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왜 S 반도체 직원들은 화가 났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