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첫 번째 환상은 아마도 10살, 해리포터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내 삶 속 한 장면이 되기를 바라며 올빼미가 전해줄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만 11살이 훌쩍 넘어갈 때 까지도 편지를 전해주는 올빼미는 만날 수 없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입학 통지서에 대한 기대는 점점 사라졌고,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환상이 실현되는 순간, 그건 환상이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또 하나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은 더 이상 환상 속에 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환상의 무대에선 늘 내가 주인공이었다. 마법가루로 순간 이동을 하는 나, 어둠의 마법사를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 나...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판타지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봐도, 상상력을 한껏 가동시켜 봐도 모든 것이 마치 껍데기처럼 허구로 느껴질 뿐이다. 게다가 그 안의 주인공은 늘 내가 아닌 가상의 인물이다. 내 삶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깃거리는 아닐 거란 확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면서 한편으로는 <환상은 어쩌면 실현불가능한 - 긍정적인 - 아주 아름다운 공간에 '나'를 대입했을 때 완성 가능한 단어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그 곳에 없다면, 그 속이 아무리 화려한들 환상이란 단어와 어울리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환상은 주관적인 것이니까.
대신 나는 어쩌면 정반대일, 일상이란 공간에 존재한다. 환상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도 일상에 너무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란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면 남들보다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어느 순간부턴 나의 일상을 바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펼칠 뿐이다.
어릴 적과 달라진 나라고 해도 미련이나 불만이 있진 않다.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나름의 애착이 있고, 그 속에서 행복과 자부심을 찾는데 이미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그저 과거에는 잘만 하던 다리찢기가 아주 오랜만에 시도하니 될듯말듯 되지 않을 때 드는 살짝의 씁쓸함만이 감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