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등장하면 바쁜 척을 시작했다.
동사무소로 출근하던 첫 날이었다. 나의 근무 자리는 넓게 오픈되어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인수인계는 이미 끝났고, 처음 혼자 근무하는 오전이라 컴퓨터를 켜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9시 반 쯤 됐을까, 복도에서 바스락이는 비닐 봉지 소리가 들렸다.
"안녕."
"안녕하세요."
"새로운 언니네?"
"네, 잘 부탁드려요."
"그 전 사람은 그만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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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공세는 끊임 없이 이어졌다.
할머니는 키가 작고,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으셨다. 팔과 다리가 통통하셨는데 살이 찐 게 아니라 부은 것 같았다. 할머니의 눈이 참 특이했는데, 흰 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 눈 전체가 까맸고 초점이 흐려 어딜 보는 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선 내 말에 아무도 꼼짝 못 해.
이번엔 텃세였다. 할머니는 본인이 이 동사무소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러시구나, 고생하셨네요." 긴 대화에 나의 대답은 점점 영혼을 잃어갔다. 그리고 믹스 커피를 한 잔 타 드리니 구석에 앉아 홀짝이고는 당을 충전했으니 분리수거를 해야겠다며 유유히 떠나셨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할머니는 바스락 거리는 비닐 봉지 소리와 함께 몸에 비해 긴 팔을 들어올리며 "안녕." 하며 나타나셨다. 9시 반 쯤 등장해서, 10시 반 전에 떠나셨다. 한 시간 내내 뒷편 구석자리에 앉아 자랑스러운 딸 이야기를 비롯하여 동사무소 사람들을 구시렁거리며 흉보는 소리를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는 "짜증나." 였다.
아무리 어르신이라지만 불평과 짜증을 늘어놓는 사람이 반가울 리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일이 정신 없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괜히 엑셀을 켜 두고 못 듣는 척을 하기도 했고, 강사님이 나타나면 할머니 말씀을 끊고 바쁜 척 대화했다. 처음엔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내가 그럴 수록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바쁘냐며 핀잔을 주었기 때문에 점점 일말의 죄책감도 사라져갔다.
내가 대화하기를 거부하자 할머니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나를 보곤 다가와서 "돈 애껴." 하시고는 미니 카누를 우수수 책상에 떨어트리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자 "떨어지면 또 말해." 하셨다. 어디서 나셨냐고 하니 동사무소 탕비실에서 슬쩍 했단다. 할머니는 종종 동사무소 탕비실에서 간식거리나, 차, 커피를 슬쩍해서 갖다 주셨다. 나중에는 동 직원이 눈치챘는지 소량만 비치해 놓는다며 툴툴댔다. 나도 가끔 할머니에게 커피를 사 드렸다. 대화는 줄어들었지만 서로 물질적으로 오고 갔던 사이. 나는 이 편이 더 좋았다.
할머니는 동사무소의 모든 물건의 주인인 양 굴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화장실 휴지를 수업 때 가져다 쓰면 안 된다며 언성을 높이셨다. 당시 나는 프로그램 접수 기간에, 주민의 민원 업무까지 겹쳐 매우 바빴고, 예민해져 있었다. 할머니의 고집까지 더해지니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늘 부드러운 얼굴이던 내가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니 할머니는 순간 얼음이 되어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소리를 낸 지 1초 만에 아차 싶어 인상을 풀고 한숨을 내비쳤다. 할머니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상실감 가득한 까만 눈동자. 이 할머니는 왜 자꾸 나한테 죄책감이 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할머니를 외면하고 서류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할머니는 터벅터벅 뒤돌아 가셨다.
그러던 할머니가 더 이상 나의 집무실(?)에 들어올 수 없게 된 계기가 생겼다. 중요 서류들이 보관된 공간인데 사람들이 너무 쉽게 들락인다는 이유로 설치된 임시 칸막이가 생겼다. 할머니가 잠시 쉬러 와 믹스 커피를 홀짝일 수 있는 자리가 사라졌다. 할머니는 청소도 하러 들어가지 말까봐! 라며 툴툴대셨다. 나는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은근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지고 대화가 줄어드니 귀찮기만 했던 할머니가 다시 보였다. 문득 할머니의 인생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얼핏 들었던 말론 아주 잘 나가던 집 딸로 태어나 미술을 했다고 한다. 딸은 피부과 실장으로 근무하고 여러 대회에서 나가서 상도 탔다고 한다. 그 두 가지가 할머니의 자랑스러운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현재의 할머니는 짜증을 가득 품고 동사무소 청사 전체를 청소하시며 매일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한다. 몸도 성한 곳이 없고, 별 일 아닌 일로 사람들을 미워한다. 아마 할머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 곳에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얼마 전 12월 마지막 주를 앞둔 금요일,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잘 있어."라고 하셨다. 어디 가시냐 물었더니 동사무소에서 이제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며 그만 두라고 했단다. 지역 일자리 활성화를 위해 본동의 주민들만 채용하는 자리인데, 할머니가 이사를 가게 된 탓이라고 했다. 늘 짜증나를 연발하며 출근했지만 할머니는 정말 성실하셨다. 약속된 출근 시간에 청소를 시작하면 다 끝내지 못한다며 2시간 일찍인 새벽 6시에 도착해 일을 해 오셨기 때문이다.
"아휴.. 누가 할머니처럼 그렇게 일 해줄까요. 고생하셨어요 할머니. 이 참에 푹 쉬세요."
나의 위로하는 말에 피식 웃는다. 그리곤 사실 쉬게 되어 좋기도 하다며 동에서 어떻게든 복지 비용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몇 번 본 적 있는 그 상실감 가득한 눈동자로 이야기 하는 할머니를 보자니 맘이 참 안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어김없이 할머니가 등장했다.
"나, 복지 센터에서 스포츠댄스랑 미술을 배우기로 했어.
옛날에 내가 미술을 참 잘 했거든 …"
어머 그러셨어요 할머니, 너무 잘 됐네요. 그래요 이제 힘든 일 고만 하시고 재밌게 사세요.
할머니 오늘은 바쁜 척 안 하고 얼마든지 들어드릴게요. 작별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못된 마음을 거두고 할머니의 앞날을 응원해 주었다. 오늘은 다행히 나에게도 마음의 여유가 있고, 할머니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