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행동 기록
MBTI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길래, 다섯 번 이상 검사를 해 봤는데 여전히 나는 ENFP다.
'재기 발랄한 활동가'라고 불리는 ENFP는 새로운 것을 즐기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재밌어 보여서’, ‘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실행해 온 것들로 30년이 쌓였다.
복잡한 생각을 거치지 않았고 일단 해보고 배우기를 반복했는데, 그래서 제목에 '5초'라는 단어를 넣었다.
어떤 행동들은 당시 누군가로부터 가치가 없을 것,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어떤 경험이든 배울 것들이 있었고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약 20년의 경험을 곱씹었다.
나는 너무 열심히, 잘 살아왔고 지금의 내가 된 것에 감사하며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중학교 때 나는 노래방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인기가요를 섭렵했다. 무대에 선 가수들이 멋지고 부러웠다.
엄마에게 실용음악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오디션 보는 법을 수소문해 인터넷 카페를 가입하고 JYP사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한 소절 불렀는데 "다음"을 외쳤던 담당자 때문에 자존감이 뚝 떨어진 날이었다.
당시에 연예인 붐 같은 것이 불었던 것 같다.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래퍼를 꿈꾸던 친한 친구와 유닛을 만들었다. 둘만으로 뭔가 부족해 친구의 추천으로 2명을 보컬로 더 영입했다. 연습실을 빌려 안무도 짜고, 밤낮없이 연습했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노래로 우리는 꽤 큰 성과를 거뒀다. 도대회에 나가 청소년 부문 1등을 한 것이다.
가수의 꿈은 어느샌가 사라졌지만, 그 일은 성취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남겼고, 인생에 몇 없을 성공 경험을 만들어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멋지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입이 쩍 벌어지는 공연을 보여준 치어리딩 언니오빠들에게 홀딱 반했다. 나는 바로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지원자로 인해 오디션을 거쳐야 했는데, 혹시나 떨어질까 봐 당시 유행하던 노래였던 소녀시대의 ‘gee'를 열심히 추었고,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람들과 팀을 짜서 운동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며 동고동락했다. 그때의 친구들은 너무나 가족같이 지내서 그런지, 오랜만에 아무 연락 없이 만나도 특별하고 재밌었다. 직접 고민해서 만든 안무와 잘 되지 않는 동작을 함께 완성해 내어 무대를 올렸을 때, 정말 보람차고 행복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어서 그런지, 중학교 때부터 돈 버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용돈을 벌려고 전단지 알바를 구하기도 했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살 수 있는 게 많아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쭉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온갖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백화점, 식당, 카페, 화장품 매장 등. 심지어 교환학생을 하는 동안에도 한국어를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했다. 교환 학생을 다녀온 뒤 복학을 해야 했는데, 그보다는 '왠지'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아주 멀리, 길게 가고 싶었다.
당시 나는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여행을 다녀오면 모호한 목적과 꿈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역시, 5초 고민한 뒤 휴학계를 냈다. 8개월간 빙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고 시간과 마음이 맞았던 친구들과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 여행은 내게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줬다. 세계는 넓었고, 굳이 한국 사람, 한국 문화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때부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일부러 많이 만들었다. 그 이후, 두어 번 더 유럽으로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했으나, 그 시기부터 현실적인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나의 자유분방함과 5초 선택을 가로막기 시작했던 시기다.
그렇게 처음으로 긴 고민 끝에 스물일곱에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입사 이후에는 내가 고민을 길게 하지 않고 바로 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결정은 '퇴사'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 번의 퇴사를 거치고, 스물아홉에 창업을 했다.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 창업이라니, 남들은 수백 번 고민해서 결정하는 일인데 말이다.
창업과 그 이후, 그리고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했겠지만, 왠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족함 속에서 많이 배웠고 더 나아진 내가 있을 뿐이다.
TV 프로그램 중 <유퀴즈온더블럭>을 즐겨본다. 어느 날 둘리를 제작한 김수정 작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 한동안 너무 본인을 괴롭게 했다고.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다고 한다. 답이 없는데 답을 찾으려 하니 괴로웠던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서른 하나의 나도 자꾸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고 ‘꿈'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버리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 내 인생에서 특별함을 기대했던 시기가 있었고, 주목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답을 찾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고민이 생기면 실행을 통해 답을 찾아왔던 것이다. 바로 앞의 이야기들처럼.
그래서 그 과정이 무의미했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다. 계속 찾아 헤맸고, 이것저것 실행했던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안정감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하루에 충실하고, 내게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 짓는 일, 그 두 가지뿐이다. 더 많이 바라고 이상을 좇을수록 일상이 허무한 느낌을 받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만 충실하려고 한다.
겨우 서른한 살, 앞으로의 인생은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까. 전보다 훨씬 여유 있어졌지만 이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험은 자신만의 옳은 방향에 대한 확신을 준다. 그래서 이후에도 쭉, 다양하고 많은 경험들을 통해 40살, 50살에도 계속 성장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나를 더 사랑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길, 오늘도 내 선택으로 있는 자리에서 글을 쓰며 행복해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