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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Jun 22. 2023

아빠는 나를 여전히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대표는 무슨, 다시 회사원이 되었지만...


아빠와의 통화

아빠와 자주 통화하며 일상을 조잘대는 애교 많은 딸은 아니다. 전화를 한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주로 아빠로부터 전화가 온다.

외근 중이던 그날도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친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마자 아빠는 크게 외쳤다.


어이, 신대표~

- 뭐야, 나 이제 대표 아니야. 이제 신 사원이야.
-아냐. 무슨 소리냐.
모든 사람은 대표야. 자기의 인생을 경영햐는 CEO 지
-.....  아, 그래? 아빠 말이 맞네. 나 신대표구나.


창업을 하겠다고 들고 나서자마자, 아빠의 휴대폰에 저장된 내 이름이 ‘큰 딸’에서 ‘신대표‘로 바뀌어 있었다.

뒤에선 물론 걱정했겠지만, 내 앞에선 늘 응원과 격려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나의 도전을 한다는 것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냥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해도 될 것을....” 걱정스러운 말을 일삼던 엄마를 방어해 주는 것은 늘 아빠였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민주는 잘할 거고, 꼭 큰 사람이 될 거야.”




아빠가 이렇게 나의 거침없는 행보를 응원해 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빠도 비슷한 도전을 했었다.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당시 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 집은 약간의(?) 여유를 잃었지만, 덕분에 나는 당시 아빠의 생각에 공감하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아빠는 나에게 공부를 하라는 둥, TV를 그만 보라는 등의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처럼, “넌 잘하고 있어.” “우리 민주 최고” “넌 더 큰 꿈을 꿀 거고, 그걸 이뤄낼 거다.” 와 같은 말을 해 주었다.

때론 허구만 쫓는, 혹은 모든 부분에서 너무 이상적이라 넌덜머리가 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빠 딸이었는지 결국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아빠의 말들은 내가 실제로 큰 꿈을 꾸게 만들어 주었고, 동시에 삶을 걷는 아빠의 속도와 태도, 추구하는 것들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아빠의 전폭적인 지지와 긍정적인 언어들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니 작아지는 순간들이 많다.

아빠가 나를 ‘신대표’라며 치켜세워 주었던 그날도 나는 한참 작아져있었고, 고갈되어 있었다.

힘든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고, 갓 입사한 회사에서, 하필 출장 인원의 막내로, 온갖 뒤치다 거리를 하며 바쁜 와중이었다.

신대표를 크게 외치며 전화를 받던 아빠에게 “뭐야, 나 이제 대표 아니야. 이제 신 사원이야.” 에는 그런 복잡하고 힘든 감정들이 안 섞여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아빠가 아랑곳 않고 내뱉은 모든 사람은 CEO라는 그 말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에겐 영원하고 든든한 아군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서 메모를 남겼다.

“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을 경영하는 CEO, 그러니 나도 언제나 ‘대표 마인드’를 가져야지.
내 인생을 책임지고 경영하는 멋진 기업가로 성장해야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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