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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Sep 18. 2024

혈액은 어떻게 관리되고 유통되는가

출처 : 스브스 프리미엄


 근무처가 혈액원과 같은 건물에 있어 멀리 가지 않고도 원내 헌혈의집에서 헌혈할 수 있어 좋다. “미리 예약 안 했는데 헌혈할 수 있어요?”라고 원내 헌혈실 문을 살짝 열어 얼굴만 삐죽 내밀고 P간호사에게 물었더니 “괜찮아요.”라며 들어오라고 했다. 하루 전이라도 예약하고 가면 혈액원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일하다 시간이 나고 마음이 동할 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베드에 누워 전혈을 마칠 무렵 “요즘도 더블이에요?”라고 P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오전은 트리플로 했고, 오후에는 더블로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암호 같은 이 말은 혈액백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혈액백은 혈액을 채취할 때부터 수혈자에게 사용될 때까지 이를 보관하는 저장용기를 말한다. 더블은 혈액백이 두 개, 트리플은 세 개, 쿼드러플은 네 개를 뜻한다.


 더블(이중백)은 농축적혈구와 신선동결혈장을, 트리플(삼중백)은 농축적혈구와 신선동결혈장과 농축혈소판을, 쿼드러플(사중백)은 백혈구여과제거적혈구와 신선동결혈장과 농축혈소판을 추출할 때 사용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트리플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혈액공급에도, 혈액수입에도 효과적이다. 그런데 의료갈등이 장기화됨에 따라 병원에서 수술이 줄어들게 되면서 혈액 사용량도 함께 줄어들어 트리플 채혈을 더블로 조절하게 되었다.


 여기서 혈액의 구성을 한 번 살펴보자. 적혈구는 인체조직의 모든 세포에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데 35일까지 체외에서 보관할 수 있다. 혈소판은 손상된 혈관벽에 붙어서 혈액응고를 일으켜 피를 멎게 하는 기능과 감염이나 염증이 있을 때 면역작용을 하는데 보존기한이 5일(120시간)에 불과하다. 혈장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전해질, 영양분, 비타민, 호르몬, 효소 그리고 항체 및 혈액응고 인자 등 중요한 단백 성분이 들어있는데 영하 18도 이하에서 1년 보관이 가능하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혈소판을 필요로 한다. 평상시라면 수술이 잦아 한 사람의 인체에서 트리플로 받아 세 성분제제를 만들어 각기 필요한 곳에 공급하겠지만, 의료갈등으로 수술이 감소된 특별한 상황에서 트리플을 받았다가 보존기한 내 혈소판 공급처를 찾지 못하면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수급관리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더블로 헌혈을 받는 것이다.


 워낙 특수한 상황이라 혈액공급이 줄어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혈액은 매일 채혈되고 검사되고 제조되고 공급되고 있다.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혈액은 헌혈자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수혈자에게 가게 되는지 한번 살펴보자.


 헌혈은 헌혈과정과 헌혈 후 처리과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헌혈과정으로는 헌혈자가 헌혈기록카드(전자문진)를 작성하고, 문진간호사와 상담하고, 헌혈하는 과정으로 헌혈버스나 헌혈의집에서 진행된다. 헌혈 후 처리과정은 혈액을 입고하고, 검사하고, 제조하고, 공급하는 4단계로 이루어진다. 채혈현장에서 채취된 헌혈자검체와 혈액은 지정된 혈액 및 검체 운송절차에 따라 적정온도를 유지한 채 혈액원으로 운송된다. 혈액원 검체접수 담당자는 운송된 검체와 혈액의 숫자가 일치하는지 살피고 혈액을 입고한다. 그리고 검사센터에 검사의뢰를 한다.


 헌혈한 혈액은 검사를 거쳐서 이상이 없는 경우에만 병원이나 의약품 제조용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십자는 서울에 중앙혈액검사센터, 대전에 중부혈액검사센터, 부산에 남부혈액검사센터 등 3개의 검사센터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검사센터에서는 혈액형 검사뿐만 아니라 면역검사, 비예기항체 검사, 핵산증폭검사, 매독항체검사, 사람T세로림프친화바이러스 검사, ALT 검사 등을 각 검사파트에서 실시하여 이상 유무를 살핀다.


 검사 의뢰와 동시에 혈액원 제제팀에서는 입고된 혈액을 제제하기 시작한다. 삼중백과 사중백은 채혈 후 8시간 이내에 제조해야만 하기 때문에 시간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편도 2시간 떨어진 곳에 오전부터 헌혈을 나가서 채혈을 받는다면 출장마감까지 혈액을 보관하여 귀원하면 시간이 초과할 수 있으므로 중간마다 1~2차례 혈액원으로 수거해서 그때그때 제조를 하게 된다.


 그렇게 제조된 혈액 중 적혈구제제는 내부온도가 1~6℃를 유지하는 혈액냉장고(실)에 보관하며, 혈소판제제는 내부온도가 20~24℃를 유지하는 혈소판교반기에 보관한다. 동결혈장제제는 내부온도가 –20℃ 이하를 유지하는 혈액냉장고(실)에 보관한다. 모든 혈액제제는 정상혈액과 미검, 재검, 부적격 혈액제제별로 구분하여 보존‧관리된다. 그렇게 보관된 혈액의 검사결과가 이상 없으면 혈액 공급이 시작되는 것이다.


 적격 혈액제제의 출고는 의료기관의 요청에 따라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수혈용 출고와 혈액원 간의 재고관리를 위한 조절출고, 그리고 혈장분획센터로 분획제제의 원료혈장을 출고하는 분획용 출고가 있다. 부적격 혈액으로 판정된 경우에는 의료기관으로 출고해선 안 된다. 예외적으로 부적격 혈액을 출고할 수 있는 경우로는 승인받은 연구용과 시약제조 및 품질관리검사용으로 공급되는 품질관리용만 가능하다. 그 외의 모든 부적격 혈액은 폐기물처리업체에 위탁하여 소각처리 한다.


 이처럼 의료기관에 수혈용 혈액제제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혈액제제별, 혈액형별로 적정한 양의 재고를 유지해야 한다. 혈액제제별 적정재고 산정 기준은 적혈구제제는 1일 평균 출고량의 5일분이며, 신선동결혈장은 1일 평균 출고량의 21일분, 혈소판제제는 1일 평균 출고량의 2일분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국가기반시설 혈액분야 위기대응실무 매뉴얼에 따라 파업이나 국가 재난 및 기타 위기상황에서의 적정재고 유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되어 있다. 이에 맞춰 적십자도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혈액수급은 늘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 때도 3일 치를 밑도는 날이 많아서 어려웠고,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는 동절기나 하절기에도 늘 어려웠다. 그런데 올해는 의료갈등은 깊어지고 길어지는데 혈액보유량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 있는 상황이다. 혈액량이 많다고 다들 좋아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혈액량이 느는 만큼 적자도 늘어난다고 하니 이것 참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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