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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에서 만난 원주 국보 3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과 탑비,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36

by 포데로샤

인터넷에서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국보를 검색하면 총 세 점이 나온다. 첫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둘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셋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36이다. 이번 추석 명절은 모처럼 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12일에 부모님이 금혼을 맞이하시기에 온 가족 1박 2일 원주 여행을 기획했다. 여행앱에서 오크밸리를 숙소로 예약하고 코스를 짜니 동선에 국보 세 점이 모두 들어왔다.


지난 8월 말, 법천사지 첫 방문에서 지광국사탑을 본 감동이 컸기에 가족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고, 그때 다리 통증으로 걸음이 불편해 탑비를 못 보고 온 아쉬움을 이번에 해결하고도 싶었다. 마지막으로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36이 오크밸리 내 뮤지엄 산 종이박물관에 있다고 하니 모든 게 일타 삼피였다. 볼거리가 충분하니 가족 여행으로 딱 맞는 여정이라 생각했다.


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국보 101호)


충주시 앙성면 소재지에서 부모님과 여동생을 만나 온 가족 같이 식사를 하고, 국도 길을 따라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에 갔다. 좁은 마을길 안쪽에 커다란 터와 유적전시관이 있을지는 부모님도 생각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내내 흐린 날씨 탓인지 주차장에는 차량 한 대만 주차되어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유적전시관 안에 고려시대 승탑의 백미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살짝 보였다. 우리는 먼저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법천사지와 지광국사에 대해서는 유홍준 교수 (현 국립중앙박물관장)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남한강 편)에 설명이 잘 나온다. 법천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돼 법고사로 불리다가 지광국사 사후에 이름이 법천사(法泉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탑과 탑비의 주인공인 지광국사(984~1070)는 원주 출신으로 법호가 해린이다. 어려서 출가의 뜻을 품고 법고사 관웅 스님을 찾아가 수업을 받다가 스승을 따라 개경 해안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해린은 21세에 승과에 급제하였고, 임금은 해린을 찬양해 대덕이라는 법계를 내렸다고 한다.


이후 해린은 학문과 수도에 정진해 대덕(大德), 대사, 삼중대사, 승통 등의 법계를 거쳐 왕사, 국사에 추대되었다. 국사는 당신의 명이 다했음을 알고 1067년 처음 출가했던 법천사로 돌아와 3년을 머물다 열반에 들었다. 문종은 시호를 지광, 탑호를 현묘라 내리고 비문을 지으라고 명했는데, 그렇게 세워진 것이 지광국사탑과 탑비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화려하고 정교하다. 아름다운 장식과 무늬가 4면에 걸쳐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세상에는 '클래스가 다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탑을 조성한 석공의 수준은 그 시대를 아울러 최고이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완성도가 남다르다. 네 면을 돌면서 봐야 각각의 자리에서 보게 되는 감동을 다 느낄 수 있다. 높이가 5.4미터에 무게가 39.4톤이나 된다고 하니 이렇게 조성하기까지 과학의 원리도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당초 지광국사 탑비 옆에 있었던 지광국사탑은 1912년 일반 오사카로 밀반출됐다가 1915년에 반환됐다. 6.25 전쟁의 포탄으로 산산조각이 나는 아픔도 있었다. 2016년까지 경복궁 경내에 있다가 보존 처리를 위해 2016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2020년까지 약 5년 간 부재 29점에 대한 보존처리를 받았고, 2023년 8월 부재 상태로 유적전시관으로 옮겨졌다. 2024년 8월부터 3개월 간 탑의 하중과 진도 7의 지진에도 버틸 수 있는 면진대를 설치하고 탑을 올린 뒤 일반에 공개되었다. 부모님과 가족들도 탑의 아름다움에 놀라워하면서 감탄하였다.


2.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국보 제59호)


유적전시관에서 지광국사 탑비까지 천천히 걸어가면 한때 이 절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 당간지주가 있는 언덕 위에서 탑비 위치에서 500여 미터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때마침 지광국사탑비로 가는 길 왼편에 조성된 코스모스 꽃밭을 보시고는 너무나 이쁘다고 좋아하셨다. 중간중간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셨다. 부모님 사진도 찍어드렸다.



탑비에 오르기 위해서는 살짝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마지막 계단이 경사가 가팔라서 부모님과 아이는 조심해서 올랐다. 탑비까지 올라 역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눈이 다 시원했다. 유적전시관에 탑이 돌아오기 전에는 탑비만 외따로 서 있어 조금은 스산하기도 하였을 듯하다. 그러나 전시관이 갖춰지고 그 안에 탑이 자리하니 이 부지 전체가 다시 균형감 있게 살아난 듯했다.


지광국사 탑비는 옆에서 보면 아랫부분이 깨어졌는지 좁아져 아슬해 보인다.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잘 서 있다. 이 탑비는 고려 선종 2년(1085년) 지광국사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돌과 왕관 모양의 머릿돌이 올려진 형태다. 거북이 얼굴은 용에 가깝고 등에는 왕(王) 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비신의 양 측면에는 운룡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에도 오밀조밀한 연꽃과 구름 모양 등이 가득하다. 정말 조각이 정교하다. 아이는 전시관에서 받아온 탁본을 대조해 가며 보았다.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36 (국보 277호)


여행 2일 차 오전에는 뮤지엄 산에 갔다. 7년 만의 재방문이다. 산속에 노출 콘크리트의 건축물의 대가 '안도 타타오' 설계로 만든 신비로운 건축물과 정원이 들어서 있다. 이 공간을 거닐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자극과 힐링이 된다. 여기에 뮤지엄 산 안에 있는 종이박물관에는 꼭 가 보고 싶었다. 목판본 기록유산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36>이 여기에 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실라찬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에 제 36권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 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5cm, 가로 891cm 종이 17장을 이어 붙였다고 한다.


국보로 지정된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을 찾아보니 총 여섯 권이 나왔다. 각기 소유자가 다르다. 소유자 중에 개인도 있어 눈길이 간다. 그중 제36권은 한솔제지가 소유자인데, 종이를 만드는 회사가 기록유산을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그것도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박물관에서는 작품을 여러 공간에 나눠 전시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전시설에서 이 유물을 만났다.

<국가유산>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1은 경기도 박물관에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는 서울 성보문화재단에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13은 개인인 서울 종로구 김***가,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29는 단양군 구인사에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36은 강원도 오크밸리에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74는 단양군 천태종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유리관 안에 길게 펼쳐진 작품을 보았지만 금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전시품이 진품 아닌 복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실물의 우수성을 보고 싶었는데 국보급 유물이다 보니 별도 공간에서 보관하고 있나 보다. 그 형태를 보고 왔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삶은 유한하고 사람은 떠나갔으나 기록은 세상에 남아서 존재한다는 것. 놀랍다.


이번에는 가족이 함께 하는 국보 순례를 했다.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알아서 다닌다기 보다는 이렇게 함께 아룸다운 유적지를 다녔다는 것만으로도 추억이고,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그것으로 충분하다.



출처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 (남한강 편),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공식 블로그


*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에는 지광국사의 입적이 1067년으로 되어 있다. 이후 기록된 국가유산포털과 유적전시관에는 팸플릿에는 1070년으로 나온다. 1070년이 맞는 것으로 보고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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