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83화, 세대주의에 물든 교회, 십자가를 잃어버리다
한국 교회 강단에서 '개혁주의', '복음주의'라는 단어는 마치 훈장처럼 달려 있다. 그런데 신자들이 실제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 세상은 너무 타락해서 곧 끝이야.", "이스라엘이 회복돼야 주님이 오셔.", "휴거 전에 준비해야 해." 대체 이 말들의 공통점이 뭘까? 세대주의다.
세대주의는 이단처럼 요란하게 문 앞에서 소리치지 않는다. 감동적인 간증, 베스트셀러, 유튜브 예언 해석 영상 속에 살며시 숨어서 교회 안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세대주의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 어느새 세대주의자가 되어 믿고 살아간다. 복음은 "다 이루었다"(요 19:30)라는 완료형 선언인데, 세대주의는 "아직… 아직…"이라는 미완의 조바심으로 신앙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 사이, 어느새 십자가는 드라마의 중심에서 무대 뒤 배경으로 밀려난다.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하나님이 인류를 시대별로 다른 방식으로 다루신다"라는 가설을 하나의 체계로 만든 신학이다. 19세기 존 넬슨 다비(John N. Darby)가 이 틀을 정교화했고, 스코필드 주석 성경과 달라스 신학교 전통을 통해 전 세계 복음주의권에 퍼졌다.
다비는 성경 역사를 마치 케이크 자르듯 일곱 구간으로 쪼갠다. 무죄, 양심, 인간정부, 약속, 율법, 은혜(교회), 왕국(천년왕국).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른 기준으로 시험하시고, 인간이 실패하면 다음 시대가 시작된다는 스토리텔링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균열이 생긴다. 이 구조는 구원의 일관성을 흔든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하나님이 마치 규칙을 바꾸는 게임 마스터처럼 다른 방식의 구원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3)
"그(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이 예가 되나니."(고후 1:20)
구원의 원리는 시대를 초월한다. 언제나 은혜로, 언제나 믿음으로다. 세대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탈선한다. 하나님을 시대별로 각기 다른 매뉴얼로 인간을 대하는 관리자로 격하시킨다는 점이다.
핵심만 잡으면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일곱 단어가 세대주의의 뼈대다.
① 시대(Dispensation)
하나님이 각 시대를 별도의 경륜으로 운영하신다는 전제다. 하지만 성경은 시대를 가로질러 흐르는 단 하나의 복음을 증언한다(롬 3:21~26).
② 이스라엘 vs. 교회
세대주의는 두 민족, 두 개의 구원 계획을 말한다. 반면 복음은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4~16)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고 선포한다.
③ 삽입기(Parenthesis)
교회는 이스라엘 역사 한가운데 잠깐 끼워진 '괄호'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신약은 교회를 임시방편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로 증언한다(벧전 2:9~10, 갈 3:28~29).
④ 휴거(Rapture)
재림이 두 단계로 나뉘어 "환난 전 휴거 → 지상 재림"으로 전개된다는 도식이다. 그런데 신약은 주님의 강림과 부활을 하나의 사건, 하나의 순간으로 묶어 말한다(살전 4:16~17, 요 5:28~29).
⑤ 천년왕국(Millennium)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고 유대인이 통치하는 지상 왕국을 그린다. 하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눅 17:21)라고 하셨고, 신약의 왕국은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긴장 속에서 지금, 여기 펼쳐지고 있다(골 1:13).
⑥ 적그리스도(Antichrist)
미래에 등장할 단 한 명의 악당에 온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나니"(요일 2:18).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은 이미 2천 년 내내 교회사 전반에 작동해 왔다.
⑦ 이원론(Dualism)
세상은 사탄의 놀이터, 교회는 대피소라는 흑백논리다. 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그리고 "만물을 그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려 하심"(골 1:20)이라 말한다. 세상은 포기할 곳이 아니라 구원이 일어나는 현장이다.
세대주의는 시간을 칼로 베지만, 복음은 구원으로 시간을 꿰맨다. 세대주의는 교회를 괄호로 만들고, 복음은 교회를 마침표로 세운다.
① 미국 선교사 경로(1900년대)
스코필드 주석 성경과 북미 복음주의 신학교를 통해 세대주의가 도입됐다.
② 일제강점기 말세 정서(1930~40년대)
고난 속에서 '곧 오실 주님'을 바라는 정서가 문자 그대로 믿는 종말론과 결합했다.
③ 전후 복음주의 재유입(1950~70년대)
미국 유학을 다녀온 목회자들이 교단과 신학교에서 체계화했다.
④ 대중화(1980~90년대)
『지구 최후의 날』, 『Left Behind』, 휴거 영화, 대형 집회들이 눈물과 감정의 언어로 보급했다.
⑤ 정서의 잔존(2000년대)
겉으로는 개혁주의를 표방해도, 무의식은 여전히 "징조→사건→불안"의 무한 반복에 갇혀 있다.
교리는 칼빈을 입에 올리지만, 머릿속은 다비로 돌아간다. 교과서보다 서점과 유튜브가 더 강력한 신학교가 되었다.
① 방향 상실: 사건의 종교
설교가 복음의 중심(십자가·부활·은혜)보다 시간표와 징조에 매달릴 때, 신앙은 '살아내는 확신'에서 '버텨내는 긴장'으로 변질된다. 복음은 끝난 이야기를 선포하고, 세대주의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사람을 붙잡는다.
② 공동체 붕괴: '깨어 있음'의 우월감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는 소수'라는 자기 이미지가 '깨어 있는 자 vs. 잠든 자'라는 계급을 만든다. 이제 신앙의 깊이는 은혜가 아니라 정보로 판가름난다.
③ 감정적 종말주의: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신앙
회개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아니라 벌을 피하는 행위가 되고, 예배의 정서는 감사보다 긴장에 지배당한다(요일 4:18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④ 사회 도피주의: 세상은 버릴 곳
'이 세상은 사탄의 무대'라는 이원론은 정의, 문화, 직업 같은 공적 영역을 향한 무관심을 낳는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다(요 17장).
⑤ 정치적 극단화: 영적 전쟁의 오용
'적그리스도' 서사가 정치 진영으로 번역되면, 교회는 복음의 화해자가 아니라 전쟁의 선동가가 된다. 복음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십자가만 세운다.
⑥ 음모론 결합: 주권의 약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세계정부, 짐승의 표. 이런 담론은 신학이 아니라 왜곡된 정서의 부산물이다. "지금은 사탄이 판을 치고 있다"라는 느낌이 커질수록,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는 작아진다. 음모론은 하나님의 주권을 쪼그라뜨린다. 복음은 하나님을 왕으로 회복한다.
세대주의는 교회를 바쁘게는 만들지만, 평안하게는 못한다.
세대주의는 논쟁으로 퍼지지 않았다. 감동으로 번졌다. 스코필드 주석, 할 린지의 책들, 『Left Behind』 시리즈, '이스라엘 회복' 내러티브… "은혜롭다"는 평가 뒤에 숨어 있다. 세대주의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단 세 가지 질문만 던지면 된다.
"이 책의 중심은 예수인가 시대인가?"
"하나님은 언약으로 일하시는가, 조건으로 움직이시는가?"
"이야기의 주인공은 메시아인가 아니면 민족, 이벤트인가?"
이 세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감동은 곧장 다른 복음을 실어나르는 택배차가 된다.
교회는 예언의 해석자가 아니다. 복음의 증인이다. 신앙은 긴장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은혜로 선다. 오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중심은 '시대의 정보'가 아니라 '십자가의 확신'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는 이미 그분께 주어졌다. 그러니 교회는 두려움으로 모이는 곳이 아니라, 평안으로 가는 곳이다. 세대주의는 성경을 달력으로 읽지만, 복음은 성경을 십자가로 읽는다. 스스로 이런 질문에 답을 해보자.
"나는 지금 무엇으로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 예수의 은혜인가? 시대의 이벤트인가?
"나의 교회는 어떤 언어를 더 자주 말하는가?" - 사건과 징조인가? 십자가와 부활인가?
"내 신앙의 에너지원은 두려움인가? 감사인가?"
이 세 질문 앞에서 "세대주의, 너무 위험한데.", "기독교에 이미 깊게 스며들었구나."라는 경각심이 일어났다면, 이미 복음으로의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 여기서, 십자가로 돌아가자. 복음은 시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로 역사를 하나로 잇는다. 복음은 달력이 아니라 십자가다. 복음에 다른 것이 더해지면 그건 바로 다른 복음, 이단이다.
복음 + 시대 = 다른 복음
복음 + nothing = 진짜 복음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인천성산교회 l 인천이단상담소(상담 및 문의): 032-464-4677, 465-4677
인천성산교회 유튜브: www.youtube.com/@인천성산교회인천이단
인천성산교회 고광종 담임목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tamidnote924
인천성산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로128번길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