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머리 Feb 05. 2022

대리 기사의 눈에 비친 사람들

카테고리  남자

찬바람이 얼굴을 찢을 듯한 추위임에도 신호 대기 중인 옆 차선의 어떤 사람은 차 창문을 내리고선 보란 듯이 자기는 건강해서  이런 추위쯤은 견딜 수 있다며 양볼과 귓불이 파랗게 변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서 빨리 초록불 신호등으로 변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른 저녁 강남에서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은 언제나 막혀서 짜증인데 쿠바산 시거를 피우며 이 추위에도 창문 밖으로 재를 툭툭 떨어뜨리며 운전한 어떤 사람은 마치 70년대 서부영화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양 폼을 잡고 운전을 하는데 남들이 자기를 멋있게 볼 거라고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정작 다른 차들은 바쁘게 지나간다.

어쩌다 늦은 밤 신사동에서 고객을 태우고 출발하는데  맞은편 좁은 길에서 다가오는 자동차 운전자는  팔뚝에 알 수 없는 글이 그려져 있거나 일본 야쿠자 부하들이나 했을 기괴한 문신이 보이는 팔을 창문 밖으로 내놓고 자기가 먼저 가겠으니 길을 막거나 방해하면 문신이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며 유유히 지나간다.  

고객 동네에 거의 도착할 즈음 동네 헬스장에서  한 3-4개월 아령 좀 들었는지 약간 굵은 팔뚝과 벌어진 어깨가 자랑스럽다며 기세 등등 러닝셔츠 같은 옷을 입고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머가 좋은지 빌딩 사이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어지지 않은 연인들도 보이고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의 군상들을 고객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많이 보게 된다.

또 이런 사람도있다.

낮술을 드신 고객을 모시고 목적지로 향하는 시내 도로를 가다보면 하나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양새로 고급차를 타고 고작 기름은 한 칸 정도 주입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있는데  호주머니엔 겨우 돈 몆천 원 정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세상 사람들이 알 리가 만무하고 어쩌다 운전중 예쁜 여성이 운전하는 차를 보면  따라가다  적색 신호에 걸려 정차할 때 득달같이 옆 차선에 붙어 창문을 자연스럽게 내리고 나 여기 있으니 관심 좀 가져 달라며 추파를 주는데 정작 여성 운전자는 좀체 관심도 눈길도 주지 않는다.

대리 기사를 하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많이 본다. 나도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면 술 한잔 하고 호기에 기꺼이 계산을 했고 헤어진 후 만만치 않은 금액에 후회도 많이 하곤 했는데 40대 정도 되는 고객을 만나 그분의 집으로 가는 길에  자기 친구들을 욕하며 어떻게 만날 때마다 내가 계산을 하느냐며 친구들이 아니라 렁뱅이 새끼들이라며 나에게 불평을 하더니 오래된 김치 한쪽도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비벼 먹고 찌개로 만들어 먹는 자기 아내를 생각하면 아련하고 그 돈이면 어린 자식들 좋은 음식을 먹일 수 있을 텐데 내가 무슨 허튼짓을 했냐며 허탈하게 웃기도 했다. 또 어떤 50대 분은 자신이 할 일은 모두가 잘 될 것 같아 여기저기 대출을 받고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실패했고 사업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의욕만으로는 시작했다가 망했다고 하시고선 옆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나에게  대리운전에 대한 소득이나 애로점을 넌지시 묻고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그분은 자신은 마이다스 손이라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하늘을 찌르기에 기세 등등하여 일을 벌였지만 결과는 참혹했고 아내와 자식들과 헤어져 원룸에서 고달프게 산다고 했다.

아무튼 나 역시 거의 매일 이불을 둘러 쓰고 아내가 들을 수 없는 소리로 한숨을 푹푹 쉬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벌여 놓은 일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답이 안 나와 괴롭기만 했다.

어느 날 이렇게 허세와 가식에 뜬구름만 쫒고 살다가는 온 가족들 굶겨 죽이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어 대리 기사를 하는데 술 취한 사람들 취중진담을 듣거나 지나가는 행인들과  기타 운전자들을 보면서 나의 지나간 삶이 보여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