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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주 May 31. 2018

꽃가루, 그리고 우리의 일상

볼프강 라이프(Wolfgang Laib)의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

Wolfgang Laib, Pollen from hazelnut(at the MOMA),  2013


좋은 작품은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흔적이 머무는 곳은 머리가 될 수도, 가슴이 될 수도 있다. 그중에서 가슴에 흔적이 머무는 작품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에게도 그런 작품이 있다. 바로 볼프강 라이프의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Pollen from hazelnut)>이다.      



이 작품은 ‘본다’라는 표현보다 ‘체험한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본다’는 것은 나와 작품이 분리된 채, 단순히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면, ‘체험한다’는 것은 작품과 내가 있는 곳이 하나가 되어 온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을 좀 더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는 우리를 체험하게 만든다. 거의 영적 체험에 가깝다. 여기에서 영적 체험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의미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아도 우리는 성스러움을 느낀다. 방금 태어난 아이를 안았을 때,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붉게 타오르며 질 때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함을 느낀다. 그 순간 우린 고요하게 침묵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      





한 번 상상해보자. 어두침침하고 고요한 갤러리에 밝은 광채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것은 봄날의 햇살처럼, 금세 따스한 기운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광채는 멀리서 보면 단순한 노란색 그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고운 가루가 펼쳐져 있다. 이 샛노란 가루의 정체는 다름 아닌 꽃가루이다. 작품의 재료를 아는 순간, 따스했던 기운에 좀 더 엄숙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진다.      



이러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가 노란색 가루, 그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루'는 그저 눈앞에 달랑 놓인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다가, 볼 줄 아는 자에게 그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봄철이 되면 항상 자동차 위에 뿌옇게 내려앉은 꽃가루도 제 몸 안에 우리의 세계를 품고 있다. 하지만 우린  평소 그 꽃가루를 닦아낼 때 그런 생각을 했던가? 사실 그 꽃가루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면 거기서 존재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즉 그 익숙함 아래로 감추어졌던 진리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술 작품은 일상 속에 감추어진 것, 망각된 것들을 불현듯 우리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는 우리 앞의 공간을 특별한 장소로 바꾸어버린다. 그 순간 우리는 문득 다른 곳에 있게 된다. 그때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물을 봤던 일상적 시각이 없어지면서 감춰졌던 사물의 진정한 의미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닦아버린 노란색 가루가 바로 꽃가루였다는 것을,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는 모든 식물의 시작을 담고 있다. 지구 상에 있는 그토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이 이렇게 작고 연약한 물질에서부터 시작된다. 꽃가루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아름답다. 꽃가루의 은폐되고 망각된 존재가 우리 눈에 들어왔기에 우리는 이토록 단순하고 소박한 꽃가루에 감동하게 된다.     



그런데 작품의 감동은 소재인 꽃가루에만 있지 않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의미가 생성된다. 만약 작가가 이 꽃가루를 돈으로 사거나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면 작품이 주는 감동이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1977년부터 그가 살고 있는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 주변에서 꽃가루를 직접 모았다.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매일 산과 들에 오가면서 정성스럽게 꽃가루를 채취했다. 작은 유리병에 꽃가루를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수백 번이 넘는 발걸음이 필요하다. 그는 수행하듯 조용히 대자연 속에서 꽃가루를 모았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자연의 작지만 위대한 선물이 모여 지금의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가 되었다.      



The artist’s tools of choice, a small sieve and metal spoon, PHOTOGRAPHY BY  JASON MANDEL      


이렇게 자연에서 꽃가루를 모으는 순간부터가 작품이다. 즉, 꽃가루를 모으는 과정이 작품인 셈이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모은 꽃가루를 바닥에 펼쳐내는 작업 역시 작품에 속한다. 포털 사이트에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를 검색하면 달랑 작품만 찍은 사진보다는 대부분 그가 작품 작업에 몰두해 있는 것이 많다. 이는 작품이 완성된 최종 모습보다는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깡마른 몸에 구부정한 등, 정갈하고 윤이 나는 머리 그리고 깨끗한 면소재의 옷.

볼프강 라이프는 흡사 수도승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시종일관 온화한 얼굴로 차분하게 작품에 몰두한다. 지긋이 작품을 담아낼 바닥을 응시하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 꽃가루를 가는 체에 담는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체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조용히 꽃가루를 곱게 펼쳐나간다. 마치 정신 수양하듯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엄숙하고 고요히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뉴욕 모마에서 "Pollen from hazelnut"(2013)를 설치하는 볼프강 라이프, Production still from the ART21  



자연으로부터 꽃가루를 정성껏 채취하고, 수행하듯 일일이 체로 꽃가루를 펼쳐내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바로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라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작품 안에는 수많은 의미와 시간이 담겨있다. 꽃가루는 아직 피지 않았지만 앞으로 피어날 꽃을 담고 있고, 수십 년 동안 매년 봄에 채취했기에 거기에는 수많은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숭고한 아우라로 표출된다.      



뉴욕 모마에서 "Pollen from hazelnut"(2013)를 설치하는 볼프강 라이프, Production still from the ART21



우리의 인생도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와 비슷하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의 작품이라고 본다면, 하루하루 그 모두가 작품이다. 일상이 쌓여 우리의 인생이 되고, 내가 된다. 무엇을 성취한 그 시점만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어가는 그 과정 모두가 소중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오직 목표를 성취한 그 시점인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의 일상을 희생하게 된다. 마치 일 년, 365일 중 단 며칠밖에 안 되는 기념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념일이 아니라 일상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러한 일상이 더 중요하다.      



작은 꽃가루가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듯이, 우리의 인생도 그냥 흘려보냈던 작은 하루가 모여 하나가 된다.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는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방법으로 가장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꽃가루’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비슷하다. 그 둘은 그동안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쳤었다. <헤이즐넛에서 온 꽃가루>에서 작은 꽃가루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듯이, 소소한 우리의 ‘일상’도 다시 보면 소중한 존재이자, 무수히 많은 울림이 숨어있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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