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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Feb 09. 2024

밤빵 아저씨

유년시절 언젠가

시내버스를 혼자 타기 시작한 건 일곱 살부터였다. 유치원은 반드시 성당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고집이 이유였다. 가까운 곳에도 유치원이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완고했다. 통학버스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집에서 문방구를 지나 시장통을 거치고 조금 더 내려가면 55번 버스 종점이 있었다. 55를 보이는 대로 읽어 ‘꼬꼬 번 버스’라 불렀다. 아침에는 엄마가 버스를 태워주면서 안내양 누나에게 부탁했고 나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다섯 번째 정류장에서 내리면 됐다. 하원 할 땐 선생님이 버스를 태워줬지만, 종점에서 내린 후에는 시장통을 거슬러 오르막을 올라 집까지 혼자 가야 했다. 아주 가끔은 할아버지가 마중 나와 기다리기도 했지만 매일은 아니었다. 


집까지 오는 지난한 길. 파란색 유리창의 '박치과'를 지나 '영수네'라고 쓰여 있는 과일가게를 지나고, 기차표 운동화를 파는 신발가게 옆에 얼음이 녹아 물이 줄줄 흐르는 생선 가게 앞을 코를 막고 조심스럽게 까치발로 지나면 시장통 끝자락이다. 그 한 귀퉁이에 그곳이 있었다. 

밤 모양의 작은 빵을 구워 파는 작은 리어카. 한 개에 얼마라고 붙어 있었겠지만, 그 기억은 지워지고 없다. 한 번에 여섯 개 밤빵을 만들 수 있는 틀 일곱 개가 둥글게 놓여있었다. 둥근 빵틀은 아저씨가 꼬챙이로 움직이는 만큼 돌아갔다. 아저씨 오른쪽 머리 높이에는 태권브이에 나오는 깡통 로봇 머리통 같은 게 매달려 있고 깡통 아래에는 코끼리 코처럼 기다랗게 튜브가 매달려 있었다. 코끼리 코를 비틀면 밀가루 반죽이 흘러나왔다. 코끼리가 콧물을 흘리는 건 아닐까 상상도 했다. 아저씨는 무심히 코끼리 코를 다시 걸어놓고 이번에는 병원에서나 볼법한 혓바닥 누르는 도구처럼 생긴 것과 원통을 반으로 잘라놓은 도구를 양손에 들고 흰색 팥을 반죽 위에 조금씩 덜어 넣었다. 다시 코끼리 코를 잡고 처음에 넣었던 반죽보다 훨씬 적은 반죽을 팥 위에 흘리듯이 짜 넣었다. 철그렁하는 소리를 내는 뚜껑을 덮으면서 끝이 구부러진 젓가락으로 탁, 혹은 탱하는 소리와 함께 한쪽 손으로 둥글게 놓인 빵틀을 한쪽으로 슬쩍 돌렸다. 아저씨 앞에 돌아온 빵틀을 열면 가지런히 여섯 개 밤빵이 암갈색으로 잘 익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아저씨는 아기 볼살 다루듯 살살 들어내서 한 김 식힌 후에 빵 테두리에 붙어있는 거스름을 슥슥 긁어내고 내 눈높이에 있는 진열대에 잘 늘어놓았다. 아저씨는 쉬지 않고 이 동작을 반복했고 나는 빵틀이 거의 두 바퀴가 도는 동안 밤빵 만드는 일을 구경했다. 


재미있었다. 빵이 만들어지는 게 신기했다. 때로는 아저씨가 나에게 한번 만들어 보라고 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오랫동안 봤기 때문에 잘할 자신도 있었다. 한참 서서 구경하고 있으면 아저씨는 밤빵을 하나 건네줬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넙죽 받아서 아주 조금씩 뜯어먹으며 집으로 갔다. 드물게 아저씨 대신 아주머니가 나와 있을 때도 있었는데 아저씨가 있을 때 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켜봐도 아주머니는 빵을 주지 않았다. 저 많은 빵에서 하나쯤 건네주는 게 그렇게 싫은지 원망도 했고, 이쯤되면 아저씨는 빵을 하나 준다고 이야기하면 아주머니도 빵을 하나 주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 후로는 아주머니가 나와 있는 날에는 그 앞을 지나면서 턱을 치켜들고 조금은 당당히 지나가기도 했다. 물론 작은 실망도 함께였지만.


요즘에는 대형 마트에서도 계란빵이나 호떡, 즉석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호두과자도 만들어 판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완전히 자동화돼 있는 기계가 빵을 만들어 낸다. 전원을 넣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가능해졌다. 가끔은 기계가 만들어 낸 빵을 사 먹지만 내 입 속에 남아있는 그 밤빵의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윤오영 선생은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서 방망이 깎아 팔던 노인을 이야기한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마지막에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라고 하며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라고 했다. 밤빵을 그리며 나도 그 말을 떠올려본다. 


“요새는 붕어빵 만드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문득 40년 전 밤빵 만들던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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