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삼개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갖게 된 ‘나의 첫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 중에 제일 오래됐고, 처음부터 내 것이었고, 지금까지 온전한 내 소유의 책 말이다. 물론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내 책은 있었다. 하지만 그 책들은 꼬맹이들이나 보는 글씨가 큰 동화책이거나 대부분이 커다란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 책뿐이었다. ‘나의 첫 책’처럼 그림은 적고 글자가 많은 그리고 종이도 얇은 그럴듯한 모양을 갖춘 책으로 한정한다면 바로 이 책이 나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주일학교 백일장에서 상품으로 받았다.
『눈 속에서 삼 개월』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J. 폴셰가 지었고 구혜영이 옮겼다고 되있다. 겉장을 들추면 붉은색 잉크로 커다랗게 “상”이라고 찍혀있고, “1980년 추계 백일장 대회 - 천주교 봉천동교회 초등부 주일학교”라고 아래에 적혀있다. 그 백일장에서 어떤 글을 썼는지는 기억이 없다. 만약 책 속지에 이런 기록이 없다면 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그 아래에는 “조요왕(성진)”이라는 검정색 글씨가 적혀있다. 요왕은 가톨릭교회에서 사도요한을 세례자요한과 구분해서 부르던 세례명이다.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어릴 때는 밖에서 선물을 받으면 집으로 가져와 할아버지와 함께 끌러봐야 한다는 가정교육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엄하게 가르친 건 아니었다. 엄마가 그게 옳은 일이라 일러주었다. 그렇게 하는 걸 할아버지는 더 기뻐했으니까. 당연히 이 책을 받았을 때도 가방에 넣어 두었다가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와 함께 포장지를 끌렀다. 포장지에 싸여있을 때는 색연필 세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제법 묵직한 느낌이 커다란 초콜릿 같기도 했다. 아마도 이 기억은 내 바람이 실제처럼 기억에 남아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장지를 끌러봤을 때는 기대와 다르게 푸른색 표지의 책이 들어있었다. 흰 염소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내 또래의 아이가 그려져 있는 푸른표지.
‘쓸데없이 책이 들어있다니...’
할아버지 앞에서 책에 대한 실망을 표할 수는 없었다. 나는 늘 그랬다. 내 기분을 먼저 드러내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눈빛을 먼저 봤다. 책을 백일장 선물로 받아온 나를 할아버지는 무척 대견해했다. 책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실용적이고 값나가는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이 기억 때문일까. 실망이라는 두 글자는 기대했던 선물을 받지 못한 것과 같은 의미로 남아있다.
내 실망을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할아버지는 책 속지에 정성스럽게 이름을 써 주었다. 평소에도 할아버지는 글씨를 정말 멋있게 쓰는 사람이었다. 글씨도 멋있었지만, 글씨를 쓰는 할아버지도 멋있었다. 꽁무니를 누르면 ‘똑딱’하는 소리가 나는 검은색 볼펜을 꺼내 글씨를 썼다. 흘림도 아닌, 정자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느낌의 글씨. 이응은 왼쪽 반과 오른쪽 반으로 나눠서 쓰고 세로획은 굵고 힘있게 내려쓰는 글씨체였다. 문장의 제일 끝에는 반드시 마침표를 찍었다. 할아버지 주머니에는 늘 작은 수첩이 있었다. 그 수첩에는 가족의 생일과 기념일, 주소, 전화번호 같은 게 적혀있었고 가끔은 신문 기사나 기도문을 옮겨 적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책에 내 이름을 쓰며 상품을 받아온 손자가 무척 자랑스러웠을 거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공부나 글쓰기를 가장 귀한 일로 여겼던 할아버지였다. 더군다나 여덟 살짜리 손자가 백일장에서 받아온 상이니 얼마나 뿌듯해했을까.
하지만 나의 첫 책은 초등학교 1학년이 읽기엔 조금 어려웠다. 서너 페이지마다 등장인물이 그려져 있기는 했지만 그즈음 내가 읽던 책에 비해 글씨도 작았다. 무엇보다 책에 그려져 있는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와 달랐다. 책 속의 할아버지는 이마가 넓고 둥근 얼굴에 배도 튀어나와 있었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아이도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 표정은 나보다 훨씬 밝았고 키도 더 컸다. 이질감, 아니 동질감이 전혀 들지 않아서였을까. 읽어보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첫 책은 그 후로 한동안 그대로 책장 한 구석에 꽂혀있기만 했다.
상품을 받아오고 2년 후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이었다. 영원히 헤어진다는 게 뭔지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였다.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내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고 전해 들었다. 장례가 끝나고 할아버지가 쓰던 물건 몇 개를 가지라고 했다. 내가 선택한 물건은 하얀색 묵주(가톨릭교회에서 기도할 때 사용하는 도구)와 예수성심상(예수가 옷자락을 열고 가슴에 심장이 빛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석상) 그리고 볼펜이다. 묵주와 예수성심상, 두 가지는 지금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5학년쯤 되었을까. 책장에서 빛이 바래고 있는 푸른색 책등이 눈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소년이 주인공이고, 등장인물은 소년과 할아버지가 전부였다. 그게 이유였을까. 책 속의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었다. 할아버지와 몇 년 전의 나를 기억하며 단숨에 읽었다.
과거 목동이었던 할아버지와 앞으로 목동이 되려는 꿈을 꾸는 손자가 우연히 산에 올랐다가 갑작스러운 눈 폭풍에 산장에 갇히게 된다. 몸이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산장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소년은 불안, 고독, 죽음 등 인간이 겪어야 할 수난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소년은 처음 산에 오르던 날부터 할아버지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기가 이 책이다.
책을 덮고 기억을 더듬었다. 책을 받아온 날, 할아버지는 당신이 먼저 책을 읽겠다고 했다. 손자를 산장에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에게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산장에 혼자 남은 손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까. 당신의 손자를 세상에 남겨둬야 하는 때가 가까워져 온다고 느꼈을 할아버지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젊어서 늑막염을 앓았던 할아버지는 갈비뼈가 다섯 개나 없었다. 처음에는 오른쪽 세 개를 떼어내고 늑막염 수술을 했다. 하지만 의사의 실수로 고무호수를 집어넣고 봉합 한 건 재수술을 하면서 알게 됐다. 결국 왼쪽 갈비뼈 두 개도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할아버지는 늘 기침을 달고 살았다. 매일 수차례 가래도 뱉어내야했고, 항상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손잡이가 둥글게 굽어있는 짙은색 지팡이. 그래서였을까. 할아버지는 나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내 지팡이다.”
그 기억과 함께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기억났다. 상품으로 받아온 책은 어린 내가 앞으로 세상을 대하면서 기억하길 바라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에게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혼자 있어도 외로워 말고, 두려워 말아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너를 위해 존재한단다. 너는 세상의 중심이다.’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숙제를 끝낸 것 처럼 홀가분했다. 읽기 어렵던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았다.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은 후로 독서에 대해서 자신이 생겼나 보다. 계속해서 책을 찾아 읽었다. 거실 한쪽에 꽂혀있는 책을 보며 제목이 좋아서 읽었고 손이 닿아서 읽었다. 엄마에게 책을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그렇게 갖게 된 나의 책을 책꽂이에 하나씩 꽂아두며 흐뭇하게 들여다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책에 대한 철학이 대단히 완고했다. 책을 방바닥에 내려두면 크게 야단을 쳤다. 책을 밟거나 베고 눕는 행동도 당연히 허락되지 않았다. 책은 오로지 읽고 공부하는 용도 이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다른 일에는 한없이 인자한 분이었지만 책에 대해서만은 절대적이었다.
“책이란, 네 머릿속에 들어가서 생각을 만드는 것이다. 그 생각은 너의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네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을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겠니?”
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이렇게 책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 주셨다. 그 이유일까. 나는 아직도 책을 접거나 표지를 둥글게 만들어 책갈피로 사용하지 못한다. 책갈피는 반드시 명함처럼 빳빳해야 하고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도 못 한다. 책에 엄청난 죄를 짓는 느낌이다. 근래 들어 조금씩 밑줄도 그어보고 메모도 하지만, 줄을 그으면서 자주 멈칫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책을 읽을 때 노트를 옆에 두고 읽는다. 생각해야 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페이지 번호와 함께 노트에 적어둔다. 그렇게 책을 다 읽은 후 적어두었던 글과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그렇게 하면 책을 두 번 읽는 셈이 된다. 그리고 컴퓨터에 메모를 짧은 감상과 함께 인터넷에 기록해 둔다. 그건 나만의 독후감이다. 가끔은 기록해 두었던 글을 살펴보며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돌이켜보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자 책을 대하는 자세다. 나는 여전히 내 책장 제일 높은 곳에 꽂혀서 나와 함께 하는 나의 첫 책을 사랑한다.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첫 번째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적혀있다.
‘아무쪼록 제가 할아버지의 가르치심을 잘 지키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