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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Feb 22. 2024

멘델의 유전법칙

금화조와 아버지, 그리고 나

계속되는 추위에 문을 꽁꽁 닫고 지내다가 환기를 하려고 모처럼 창을 열었다. 코를 후비고 들어오는 칼날 같은 겨울 공기는 금방 익숙해졌다. 허파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맛있어서 실컷 들이마시려 할 즈음 날카로운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철판을 뾰족한 무언가로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린 여자아이의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다. 창밖으로 고개를 빼서 소리가 나는 쪽을 살폈다. 서너 마리의 새가 치고받고 싸우는 것인지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푸드덕거리며 메타세쿼이아 가지 사이를 방정맞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잠시 걸터앉아 있는 모습은 까치와 흡사했지만, 그보다 조금 작고 온몸이 짙은 회색이었다. 직박구리였다. 모든 동물이 그렇지만 조류는 더욱, 수컷이 조금 더 화려한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기에 양쪽 볼이 불그스레한 녀석이 수컷이겠거니 짐작했다. 직박구리를 한동안 보면서 새를 키웠던 일이 떠올랐다. 그 새도 수컷의 볼이 불그스름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아버지는 작은 새 두 마리를 집으로 가져왔다. 밝은 회색 깃털에 참새보다 조금 더 작은 새. 금화조라고 했다. 밝은 홍시색 부리를 가지고 있는 새는 수줍은 듯 발그스레한 볼과 날개에 있는 흰색 점박 무늬로 수컷과 암컷을 구분했다. 좁쌀보다 조금 큰 깜장 눈알 아래로 눈물 자국처럼 검은 털이 박혀 있어 조금은 애처롭게 보이기도 했다. 작은 새는 쉬지 않고 빽빽거렸다. 짹짹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참새의 짹짹 보다는 어린아이의 배냇소리처럼 빽빽이는 소리에 가까웠다.

어느 날 둥지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하얀색 알이 보였다. 알은 너무 작고 껍질이 얇아 자칫 잘못하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암컷은 알을 품지 않았다. 수컷과 함께 밖으로 나와 빽빽거리며 돌아다니기만 했다. 하루가 지나도록 품지 않은 알은 썩어서 검게 변했고 티스푼으로 걷어 낼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알을 낳았지만, 새는 여전히 알을 품지 않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고민을 했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새를 사 온 상점을 찾아 물어보았다. 주인아저씨는 암컷을 가져오면 다른 놈으로 바꿔 준다고 했다. 바꿔 온 암컷 역시 낳기만 했지 알을 품지 않았다. 썩어 버린 알을 치우는 일도 지난해질 무렵 도서관에 가면 무언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집 근처 대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조류에 대한 여러 책을 살폈지만, 금화조가 알을 품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혹, 최신 서적에는 설명이 있지 않을까 싶어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직원이 취미 코너에서 추천해 준 책에서 그 답을 찾았다. 금화조는 수컷을 잘 만나야 알을 품는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책을 보고 찾아온 이야기에 시큰둥하였다. 아마도 아버지는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이었을 거다. 내가 책에서 찾아온 것이 올바른 정보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자기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새집에서 수컷 바꿔 오기를 서너 차례, 드디어 암컷이 알을 품기 시작했다. 알을 낳은 암컷이 둥지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수컷이 둥지 앞을 막아서서 나오지 못하게 쪼아댔다. 수컷은 암컷을 지켰고 암컷은 알을 지켰다. 보름 정도 지났을까. 네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수컷이 먹이를 물어와 새끼들에게 먹였고, 암컷도 밖으로 나와 목욕을 했다. 산고를 치른 암컷을 위해 수수와 좁쌀도 듬뿍 넣어 줬다. 새끼는 금세 자랐다. 한 달 정도 지나 둥지 밖으로 나왔고 두 달 정도 지나 거의 성체의 몸집을 가졌다. 금화조는 정확하게 네 개의 알을 낳았다. 항상 세 개를 먼저 낳고 하나는 그다음에 낳았다. 알을 낳는 시기는 달랐지만, 부화는 네 개가 같은 때에 이뤄졌다.


처음으로 새가 부화하고 두어 달이 지났다. 새가 여섯 마리나 되니 큰 새장이 필요했다. 아버지와 설계도를 그렸다. 가로는 베란다 폭에 맞게, 높이는 내 눈높이로. 공터에 버려져 있는 책상을 분해해서 커다란 새장을 만들었다. 앞쪽에는 촘촘한 철망으로 막았고 위쪽으로 경첩을 달아 먹이를 주고 새장 청소를 할 수 있게 했다. 길섶에 길게 자란 풀을 뽑아 넣어 주었더니 풀을 물어다 둥지를 꾸미기도 했다. 부모의 피를 잘 물려받아서일까. 알을 낳는 족족 부화했다. 유전자의 힘이었다.

새가 많아져서 새집에 되팔았다. 대여섯 마리씩 모아서 새집에 가져가면 한 마리에 삼백 원에서 오백 원 정도로 가격을 쳐주었다. 부화를 잘하는 혈통 좋은 금화조라며 주인아저씨가 반겼다. 이웃집에 나눠주기도 했고 몇 마리는 자연으로 방생하기도 했지만, 번식은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일 년 정도 키웠을까. 나의 일상은 금화조에게 맞춰져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물을 갈아주고 풀을 뜯어 넣어 주고, 바닥에 모래를 바꿔 주는 일이 매일이었다. 가끔은 부러진 큰 나뭇가지를 넣어 주기도 했는데 그 나무에 앉아서 빽빽이며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다. 그러다가 부화한 지 일주일쯤 된 새끼들 사이에서 온몸이 흰색 털로 덮여 있는 새를 발견했다. 난데없이 흰색 금화조가 태어난 것이다. 

다음 날 학교 생물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알비노’에 대해 책을 찾아 보여주었다. 알비노는 눈동자까지 밝은 색이었다. 내 흰색 금화조는 깃털만 흰색이지 부리는 홍시색이고 눈동자도 까만색으로 콕 박혀 있었다. 알비노가 아니었다. 도서관과 교보문고를 찾아서 책을 살폈지만, 더 이상의 정보는 알 수 없었다. 



그즈음 나는 생물 수업 시간에 유전법칙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었다. 멘델이라는 사람이 완두콩 실험을 했고 우성과 열성에 대해서, 그리고 항상 3대 1의 비율로 완두콩의 주름이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한다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흰색과 회색 금화조를 한 마리씩 별도로 분리해 보았다. 네 개의 알 중에 세 개는 회색, 하나는 흰색이었다. 나의 호기심은 계속됐고, 흰색과 흰색끼리 교배를 시켜보기도 했다. 세 마리는 흰색, 하나는 회색의 결과를 얻었다. 이 실험을 매번 기록했고, 수개월 치 기록을 생물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서 발표했고 좋은 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자연스럽게 새의 관리와 권한은 아버지 손을 떠나 내가 물려받았다. 아버지에게 슬쩍 새장이 하나 더 필요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커다란 새장이 하나 더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원했던 건 새장이 아니라 새장을 함께 만드는 일, 함께 만드는 시간이었는데 아버지는 그걸 몰랐다. 만들어진 새장을 다시 만들 수는 없으니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흰색끼리만 교배를 계속하면 영원히 흰색만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회색끼리 교배해도 완벽한 규칙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멘델이 이야기한 우성과 열성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값진 경험이었다. 흰색이 열성이고 회색이 우성이었다. 우성인자는 열성인자를 앞선다. 열성인자가 가지고 있는 형질은 늘 잠재되어 있다.


내 속에 잠재된 열성인자는 무엇일까. 아버지의 우성인자와 열성인자 중에 어떤 것을 더 많이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는 무척 성실했다. 나는 아버지의 근면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버지는 노래를 잘 불렀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아버지는 한 가정을 잘 꾸렸지만 나는 내 가정을 잘 꾸리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아버지의 열성인자를 훨씬 더 많이 물려받았나 보다. 거울 보는 일을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들여다보면서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눈매도 닮았고, 이마도 닮았다. 손재주가 좋은 것도 닮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것도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나이가 들면서 벗겨지고 있는 이마도 아버지를 닮았다. 호기심이 많은 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이것이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유전형질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이 나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면 나는 아버지의 어떤 형질을 물려받은 것일까. 어떤 우성형질이 드러나 있고, 어떤 열성형질을 감추고 있는 걸까.


마흔 마리 정도 되던 금화조는 번식을 거듭하다가 무척 추운 어느 날 나의 불찰로 모두 얼어 죽었다. 바닥에 새까맣게 떨어져 있던 금화조를 치우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직박구리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 금화조도 저런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던 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환기가 끝났으면 얼른 창문을 닫으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직박구리의 울음처럼 들려온다.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ko/photos/조류-얼룩말-피리-새-류-핀치-19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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