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전환점.
2013년 6월 17일 01:49
오늘 아침부터 이른 장마가 찾아온다지. 수런대는 바람처럼 내 마음도 수런댄다.
하루하루를 세며 계속 마음이 떨려온다. 아마 그 탓이리라.
나는 왜 그토록 열망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기쁨도 잠시 이토록 가슴이 뛰고 괴로워질까.
사람들도 나랑 다 같을까. 오늘을 포함해 딱 세 밤 남았다.
평일에 늦든말든 달콤한 꿈을 꾸며 느지막이 일어나는 것도.
하지만 잠에서 깨었을 때 무시무시하게 엄습하는 고요한 불안함은 더 이상 없겠지.
이제 진검승부. 온에어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들이 과연 상대방에게 텔레파시처럼 기적적으로 닿을까.
그런 것들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안 그러길 바라기도 한다. 감정의 문제는 어렵다. 답이 안 나온다. 마음을 먹어도 냉정하게 생각해도 배반하는 것이 남은 감정이다.
해묵은 감정이 언제쯤 바보 같은 기억으로 퇴색될까. 그것 또한 알 수 없기에 어렵다. 그렇기에 기적을 바란다. 어렵사리 성사된 내 일이 운명처럼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 내게 주어진 것처럼, 당신과 나도 나와 누군가도 운명처럼 하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적이나 운명 같은 건 그 단어 뜻만큼 꿈같은 일은 아니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때가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이 준비된 것처럼 딱 맞아떨어질 때가.
그렇기에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이 때가 아닌 일에 애타지도 애쓰지도 말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가 시작되고 6개월째, 겨우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출근이 결정되고 든 생각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라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일로 삼는 첫 발걸음은 무척 기쁘지만 무겁다.
이제 죄책감 없이 맘껏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즐겁다.
책을 많이 많이 읽고 글도 꾸준히 쓰고, 일도 열심히 배우고 공부도 빠짐없이 해야지.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그만 어른이 되고 싶다.
이 애틋함은 이제 접어두고 나는 나를 위해 준비된 운명이 무르익을 때까지 다시 한번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도록 달려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2013년 6월 17일 17:49
출근이 확정되었을 때 기쁘다기보다는 어라? 정말? 사실? 이런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요약과 기획안을 꼬박 이틀 매달려 작성하고 밤을 새워서 퇴고한 후 제출했을 때, 나는 거의 반 포기에 가까운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내가 쓴 것들이 정확히 요구하는 바와 맞아떨어졌는지, 그리고 마음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풀릴 리 없다는 의심도 한 몫했을 것이다. 이때까지 늘 일이 성사되려고 하면 금방 어그러지곤 했으니까. 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친구는 축하를 전했고 엄마도 웃었지만 나는 전혀 웃지 못했다. 어쩐지 다음주가 되면 일이 또 엎어질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었다.
오늘에 와서 출근날 지참해야 할 서류들과 읽어보면 좋은 책들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가 도착했고 재빨리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서류를 준비했다. 어디선가 신입은 꼭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 새 볼펜과 노트도 준비했다. 이르긴 하지만 이제 내가 감당해야 되는 내 생활비를 계산하고 얼마를 저축할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담배를 한 대 태우니 이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 금요일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네가 3~4월에 면접을 보러 갔던 회사에서 떨어진 게 참 다행인 것 같다고. 좋은 자리가 났을 때 마침 연관된 모두가 사정이 있어 고사했던 것, 내가 추천을 받게 된 경로, 구직 활동 경험이 있었던 것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이 일이 성사되기 위한 딱 들어맞는 운명 같지 않냐고.
만약 내가 초능력이 있어 6월에 이 일을 하게 될지 알고 있었더라면 내 지난 6개월은 어땠을까. 알았다면 마음고생은 없었을 것이고 평온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알았더라면 지금에 내가 존재했을까?
졸업영화제를 마친 12월, 나는 토익 공부를 시작하고 자소서를 1월까지 준비했다. 2월에 조금씩 나기 시작한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죄다 낙방했다. 토익 점수는 비약적으로 상승해 두 번째 본시험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얻었다. 3월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친구와 부산 여행을 다녀오고 자소서를 끊임없이 수정했다. 그 노력이 통해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몇 군데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지만, 면접 준비가 부족해서인지 다음 단계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이긴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업계의 열악한 환경도 접했고 과연 이 길이 맞는가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5월이 되어 다시 한번 지친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향을 방문했다. 4월까지 느낀 것들에 대해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또 다른 기회가 생겨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이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내가 의심하고 있던 부분에서 확실하게 생각을 바꾸게 해 준 피디님을 만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피디님이 나를 좋게 보셔 드라마 제작사를 소개해 주셨지만 그쪽의 사정 때문에 결국에 일은 얻지 못했다.
앞으로의 진로와 내 계획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6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앞으로 내 진로에 도움이 될 내 능력을 키워가기로 마음먹은 날,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면접을 보고 거의 채용이 확실시되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하지만 그쪽의 사정으로 또 한 번의 테스트를 거치고 싶다는 말을 들었고 나는 무너졌었다. 이때까지 내가 겪은 일로 미루어보면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정도의 일로 무너질 만큼 상당히 지쳐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건 매듭은 짓고 싶었다. 나는 모든 일에 매듭을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대학 3학년 때 영화를 찍지 못하면서 깨달은 일이다. 어떤 일이든 매듭을 짓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자 했다.
결국은 채용이 되었다. 이 결말이 오기까지 참 많은 고민과 의문이 나를 괴롭혔고 거기에 나름의 결론을 내리며 앞으로 나아갔었다. 그 과정이 없었더라면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정해진 운명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진지하고 치열한 감정은 없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계약직 인턴이라 잠깐 거쳐가는 일이고, 급여도 무척 적지만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너무 가슴이 뛰고 그와 동시에 무척 떨리기도 한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염원하고 기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생활에 온 힘을 다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졸업 작품을 준비하며 뼈 아픈 후회를 했다. 나는 좋은 시절을 낭비했다. 지금 이 순간은 어쩌면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아닐까. 염원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더 이상은 그저 세월을 보내며 이 소중한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살아내겠다. 나는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아직까지 신기루 같은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비록 일이 결정되기 전 무참히 무너졌지만 필요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제대로 된 진지한 일을 하기 전에 내 마음 가짐을 점검해 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노력해 온 과정은 하나의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변모한다. 나는 무척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의 앞에 서 있다. 또 다른 시작이 거대한 결말이 되어 또 다른 거대한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부디 이 시작이 빛나는 미래의 복선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러므로 기회를 주신 신께 감사를, 고생한 내게 위로를, 이 작지만 값진 시작에 축복을.
가장 힘들고 지칠 때 언제나 곁을 지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소중한 사람들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비록 내게 상처를 주었을지언정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또다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커버 사진
프랑수아 트뤼포 <쥴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