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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Sep 04. 2023

스스로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2014년 인턴 마지막 6개월의 기록 

2014년 1월 3일

오늘따라 집중이 너무 안된다. 어쩜 좋지. 새해인데 어제오늘 왜 이렇지. 

아무래도 자리도 바뀌고, 담당 피디님들이 바뀐 탓이 큰 건지.


2014년 1월 6일

모니터링. 취향의 문제와 무성의의 문제. 취향과 별개의 객관적인 검토 의견. 정확하지 않은 모니터링이 사람에게 혼돈을 준다. 모니터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긍정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미덕을 발견해서 그 점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줄 것. 


2014년 1월 10일

계속 실수만 연발하고 진짜 미쳐버릴 것 같다. 이래서 인턴은 6개월만 하고 그만두랬던건가. 약점만 보이고, 관계만 이상해지고, 나만 닳아가고, 이래도 될까. 


2014년 1월 12일

확실히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예리함, 민감함이 떨어져 있다. 일을 할수록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무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바쁘고, 사람들이 짜증 나게 하고, 일이 힘들어도 내가 맡은 바는 충실히 잘 해내야 한다. 누구 때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 감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2014년 1월 17일

그리고 계절을 계절이게 하려 딴 데로 떠날 차비를 했다. 하늘은 높고, 매미의 매끈한 눈동자 위로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뭉게구름이 지나갔다. 산이 꾸는 꿈 속에서, 매미들은 소리 죽여 노래했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바야흐로 진짜 여름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꿈에 그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정말 시간은 약이고, 망각은 축복이다. 꿈은 달콤했다. 그는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했다. 꿈에서 깨고 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모든 꿈의 산물은 내 안에서 비롯했을 뿐, 결코 외부세계와 연관이 없다. 내 안의 기억들, 내 감정들, 모두 내가 빚어낸 그림자다. 그림자에 설레고, 그림자를 그리워한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그 꿈은 여전히 내가 그를 사랑한다거나 그리워한다는 암시가 아닌, 내 안의 질료들이 무작위로 결합해 재생한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꿈속의 그는 현실보다 더 냉정하기도 하고, 더 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의 그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으리라. 내게 그는 순수하고 열정적이어서 소년 같았던 스물 하나의 모습과, 다 아는 척하고 어른이 된 것처럼 굴지만 누구보다 겁쟁이였던 스물일곱의 모습만 박제되어 있다. 모든 환상과, 그림자가 그때의 기억을 원형으로 가질 뿐이다. 그러니 아무 의미도 없는 꿈일 뿐. 


2014년 1월 21일

망원경보다 현미경이 필요한 이 시기.


2014년 1월 23일

변덕. 즉흥. 이런 것들이 나에게 큰 작용을 한다. 계획적이기도 하면서, 그 계획을 따르는 것을 원치 않는 이 모순적인 성격. 원래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수 있는 건지, 어느 한쪽이 내 천성이 아닌 건지 잘 모르겠다. 


2014년 2월 1일

나는 내가 스펀지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편견 없이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대학 때 대다수 동기들과 달리, 나는 세계 영화사를 좋아했고, 그 때문에 영화사에 등장하는 흑백 영화도, 유럽의 영화나, 실험 영화도 재미의 유무를 떠나 그저 신선했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다수에게 환영받는 아이들이 아닌 자신의 주관이 너무 뚜렷한 아이들과도 두루 친하게 지냈다. 모두가 자신의 뚜렷한 개성을 드러낼 때 나는 내 개성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답이 나오지 않자 아직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스펀지라고. 하지만 이어서 든 생각은 나를 두렵게 했다. 그저 스펀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잘 빨아들이지만 그대로 토해내는. 1+1=2는 할 수 있지만 1+1=3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일한 지도 7개월이 지났다. 그간 나는 개봉하는 상업영화와 그동안 챙겨보지 못한 상업영화를 모조리 챙겨보았다. 상업영화의 구조를 익혔다. 두 권의 작법서를 뗐다. 어떤 기획이 영화가 되는지 보았다. 대학 때 배웠던 지식과 현장의 실무를 연결시켰다. 한편으로는 내가 여전히 끌리는 예술영화를 보며 영화 매체의 생명력을 다시금 느꼈고,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는 영화의 가능성을 재차 확인했다. 


내가 느끼고 배운 것은 이와 같다.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사전 지식은 갖추었지만 여전히 스스로의 주관을 가지고 만들어 낼 능력은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하는 인턴 업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고, 단기간에 쌓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님은 알고 있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호불호가 강하고, 단정적인 말투를 사용하고, 익숙하지만 감정적으로 와닿는 이야기보다 신선하고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그들이 무언가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주관이 없고 한없이 관대한 것은 아닐까? 이대로라면 나는 스펀지에서 끝나는 것 아닐까? 아니 어쩌면 스펀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창작의 두려움에 맞서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무척 두려웠다. 동시에 3월부터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도 나를 짓누른다. 


2014년 2월 11일 

- 재미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 이야기 자체.

- 이야기의 어떤 지점이 관객에게 어필되고 있는지. 참신함

-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트렌드.


2014년 2월 17일

3~5월, 3개월이 남고 3~4월은 취준으로 많이 바쁠 거야. 잘 안 풀리면 5월에 여행 갔다가 일 마무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자. 상암으로 출근하길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깨끗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하고. 


2014년 2월 18일

깡다구를 키우고, 기획의 초심에 집중하고, 어떤 상황에 있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사건을 만나...

기대감을 가지고 볼 수 있도록.


2014년 2월 23일

일이 있겠지만 그 외 모든 시간은 자소서를 쓰고 공부하는데 쏟아야 한다.


2014년 3월 1일

예상되는 미래에 겁먹고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지 말자. 결국 끝의 끝엔 포장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있을 뿐이고, 그런 내가 최선을 다하면 돼. 인생을 두 번 살아본다고 생각해 보자. 12년도, 13년도 몹시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지금에서 보면 모두 지나갈 일이었듯.


2014년 3월 3일

그녀의 얼굴은 질투로 일그러졌다. 나는 그 감미로운 감정을 알고, 또 요동치는 감정 또한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다 똑같이 살고 있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애당초 나의 근본적인 고통은 내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재능에의, 자유에의 동경, 욕망. 그 사치스러운 감정에 충실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내 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장소도 분위기도 완벽했던 2006년. 


스스로 새로운 기준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제 스스로 틀 속으로,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그 거센 불길 속에서 나는 그저 제 모습을 잃고 녹을 수밖에 없다. 그게 내가 선택한 현재의 길이다. 


2014년 4월 1일

서류, 합격했다. 


2014년 4월 4일

5월에 계약기간이 끝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여의 시간 동안 나는 엄청난 밀도와 심도의 배움을 얻었다. 이제는 이 직급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어서 계약기간이 끝나길 바라고 있다. 이후의 가장 빠른 행보는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내가 겪은 일들을 살펴봤더니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더라. 다만 정해진 운명에 도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겠지. 그래서 지금 나는 이렇게 발버둥 치고 있는 거고.


누군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장 능력은 보이지 않더라도 몇 분 더 내 이야기를 듣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엄청난 찬사였다. 그 말은 고등학교 때 교회에 다닐 때, 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진다고 했던 분의 말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의 장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곧 그것이 내 사명인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확실히 인식되도록 인사를 하고 있더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한때 소소한 도움을 드려 나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던 분은 내가 취업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커피 믹스를 잔뜩 쥐어주셨다. 팀장님은 내게 책을 열심히 볼 것 같아서 질문했다고 하셨다. 사람들에 눈에 비친 나는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언제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나는 천재도 아니고 꽤 실력 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그들이 보는 내 모습이 같다는 것 자체가 나는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오해를 하고 있진 않으니 말이다.


2014년 4월 7일

또 한 단계를 지나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다. 난 은근히, 아니 아주 많이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곧장 내게 직면한 문제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이즈를 예상하고, 여기에 시행착오의 시간까지 더해져야만 비로소 '준비'이자 '대비'가 될 것 같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바로 오늘 실행해야 할 것이다. 


2014년 4월 모일

내일만 출근하면 또 하루 쉬고, 또 하루 출근하면 4일 연달아 쉰다. 그 후로 18일만 더 일하면 여기서 해방이다. 앞일이 걱정이다. 나이에 비해 경력도 그렇고, 무엇보다 돈이 문제니까. 그래도 실업급여도 있고, 그걸로 8월까진 먹고살 수 있으니까. 또 길이 있겠지. 


2014년 5월 4일

다사다난했던 1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 일할 날을 딱 18일 남겨두고 있다. 내 노력으로 붙잡으려 했던 모든 기회들은 작년의 데자뷔처럼 모두 스쳐 지나가고, 나는 여전히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내 몸뚱이 하나만 남겨두고 있다. 그래도 지난해처럼 마냥 불안하지는 않고 오히려 한껏 가벼운 마음이다. 살아온 나날들이 내게 알려준다. 내가 게으르고 나태하지만 않다면 모든 일은 정해진대로 운명처럼 내 자리를 만들어줄 것이란 것을. 


지금은 긴 연휴를 느긋하게 보내고 있지만 내 인생의 긴 휴가는 이제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그 방황 끝에 밑바닥에서 내가 알고 있던 낡은 것들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던 지난 1년은 정말 내게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거기서 얻은 많은 것들로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시나리오를 읽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게임을 플레이하고 솔직하게 내 의견을 말하고 내 감정과 느낌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렇게 난 지금 무척 행복하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더라도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정해져 있고, 그것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 게임의 퀘스트를 깨고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너무 즐겁다. 마음과 머릿속은 물론 내 실생활에서도 낡은 것은 모두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부족한 것은 채워 넣는 것이 마무리되는 시점. 그 작업이 바로 이 찬란한 5월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지금 마음이 붕붕 떠 있는 이유는 연휴 때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시나리오를 읽고서도 주춤하지 않는 내가 있다. 어떤 영화를 보고서도 침묵하지 않는 내가 있다. 이제 할 말이 많아졌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체화된 것만 해도 내겐 기적과 같다.

이 멋진 오늘을 만들어준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2014년 5월 9일

나의 몹쓸 버릇이 또 나왔다.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삶의 방식이든, 관계이든, 사람이든. 이 우울한 감정을 날려버리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써야 한다. 항상 결론을 그렇다. 써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고 있다. 현재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현실이 답답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친구들은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대답한다. 


내 졸업영화가 성공했다면 난 달라졌을까?


2014년 6월 13일

5월을 마지막으로 1년 간의 인턴 계약기간이 끝났다. 정말로 감사하게도 곧바로 출근할 직장도 확정되었다. 무려 계약 종료 3일 전에 결정된 일이다. 그동안 애써서 준비하고 지원했던 곳들은 모두 낙방했는데 다음 직장은 정말 우연찮은 계기로 얻게 되다니 인생은 정말 계속 살고 볼 일이다. 


이제 지겨운 자기소개서와도 면접과도 안녕 안녕이다. 내가 한 노력으로 얻은 일이 아니라서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1년 동안 증명한 것들로 인해 얻은 것이니 나의 '긴' 노력이라고 봐야겠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게 된다. 나의 새 직장은 꽤 유망한 제작사다. 그곳에서 내가 하게 될 일은 인턴 기간에 했던 일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가장 큰 것은 내 일에 좀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는 것. 그다음부터는 경력자가 되어 이곳에 올 때처럼 내가 긴 시간 노력하고 일한 것을 인정받아서 이동하게 될 것이고. 실력을 키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똑같다. 그러니 지금처럼 계속 노력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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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비평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작가는 즐거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과정의 고통스러움은 작가에게 있어 즐거움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고 비평의 시간은 즐겁지 아니한가. 당연히 아니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내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좋든 나쁘든. 그것 자체도 기쁨이다. 이 단계 역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대학 때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창작자에겐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언젠간 나도 내가 감탄해 마지않는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들처럼 될 수 있겠지. 그 시기가 조금 늦은 것은 상관없다. 그 순간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봐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만드는 사람은 얼마나 즐거우려나. 물론 예산, 마감, 외압,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겠지만.  분명, 즐거울 것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사람들을 사랑하고, 매 순간을 즐기고, 많이 웃고 또 많이 울고.

니나 부슈만이 지독하다고 했던 인생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치열하게.

언제나 즐겁게. 그렇게 살아야지. 


2014년 5월 막바지. 모 제작사 기획팀 정규직 프로듀서로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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