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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Sep 28. 2023

꿈꾸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꿈을 나누면 현실이 된다

0. 

누군가에게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만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p241


'시작'에는 미지수라는 '설렘'이 있고, '지속'에는 경험이란 '책임'이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지속'에 따르는 '책임'에도 '설렘'이 존재한다는 것. (...) 시작과 지속 모두 설렘이 있고, 책임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양쪽의 '설렘'과 '책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태도다.

p137


9월의 이야기는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나가오카 겐메이 저)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로 시작하고 싶다. 8월 말에 이미 예상했듯 9월은 매우 바쁜 달이었다. 이때까지와 달랐던 것은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나에서 비롯된 동력이라기보단, 다른 사람이 함께 하고 있는 일이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나를 위한 일이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백일몽일 뿐이지만, 그 꿈을 나누어 가지면 현실이 된다. 이번 달 내가 깨우친 사실이다. 그렇다면 꿈꾸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계속 꿈을 나누고 싶다. 언제까지라도. 다만 그 사실은 곧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삶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무거움이 없다면, 이 세상에 꿈을 이루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 9월의 장면들

일이 바빠지면 아무래도 기록에 소홀해지는 법이다. 기록을 하지 않으면 그 나날들은 그저 흐르고 만다. 많은 것을 깨달은 날에는 일기를 꼼꼼히 썼고, 지치고 고된 날에는 사진이라도 남기면서 하루 끝에 내가 오늘 좋았던 한 장면을 찾았다. 


첫 번째 파트는 일상의 영역이다.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서 작업하거나,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거나,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거나. 미팅이 많아 외식도 많았지만, 사진을 모아놓고 보니 의외로 주말마다 꾸준히 반찬을 해서 집밥도 열심히 챙겨 먹었더라. 언니가 장터에서 사 온 새로운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남은 재료를 모두 소진하기 위해서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쁜 평일에 간단히 꺼내 먹을 수 있는 반찬은 무엇일까, 요리는 주말에 내가 게임처럼 재미있게 했던 활동이었던 것을 사진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그렇지 언니가 좋아하지도 않는 계란을 몇 개나 먹을 땐 얼마나 뿌듯하던지. (김치에 밑반찬에 강된장까지 모두 내 손으로 뚝딱뚝딱. 아직 식탁이 없어 책상에서 먹는 인생)


두 번째 파트는 업무의 영역. 업무 미팅, 친목 미팅, 회의 겸 식사 등등. 사진만 보면 아무 서사도 맥락도 없는 흔한 먹스타그램 1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사진을 보면 하나하나 스토리가 그려진다. 연령대가 높은 3개의 회사의 컬래버레이션의 친목 도모 현장, 점심을 먹으며 진행하는 회의, 작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마시는 커피, 또 다른 작가 미팅을 위해 출장지에서 작가님에게 선물할 유명한 빵을 산 것, 2년 만에 만나 일 이야기를 시작하는 옛 동료와 먹은 점심, 캐스팅을 시작하며 새롭게 만난 분과 함께한 식사. 법인카드가 열일한 현장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이번 달에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세 가지 장면을 꼽아 보았다. 서로에게 소중한 의미가 되어버린 작가님과 치열하게 회의하는 현장과, 7월-9월 하루도 빠짐없이 채운 회고록, 바쁜 모든 일들을 일단락하고 드디어 맞이하는 평화로운 추석 연휴의 시작.  

내가 좋아하는 한 장면을 매일 빠짐없이 찾아보니 세 가지의 항목으로 묶어볼 수 있었다. 

(1) 하루 끝,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되돌아보는 것. 

(2)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나누며, 일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

(3) 바쁘고 고되더라도 일에 집중하며 다음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내 모습. 



2. 마치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 것처럼

8월에 조금 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오면서, 내가 그리던 나만의 장소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강남으로 이사오며 작은 집을 구했기에 나는 방이 없었고, 오픈된 거실에 침대와 책상을 두고 그간 생활했었다) 조명을 신경 써서 골랐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편한 의자를 샀다. 가구와 가전은 가성비가 아닌 오래 쓸 수 있는 대기업 제품으로 바꾸었다. 내가 하는 일이 끊임없이 콘텐츠를 찾아보아야 하는 일이므로 큰맘 먹고 비싼 TV를 방으로 들였다. 퇴근하면 그저 침대에 눕기 바빴던 내가 이제는 곧잘 책상에 앉아 글을 쓰게 되었다. 4년 만에 얻게 된 내가 바라던 나만의 공간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이 좋았고, 행복했다. 


사람들은 내게 종종 MBTI를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나를 가리키는 유형은 두 개도 아니고 세 개, 네 개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내게 MBTI가 의미가 없으며 차라리 TCI 검사가 차라리 더 신빙성 있었다. 확실한 건 나는 내향형이라는 것. TCI 검사를 담당한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로는 내향형의 특징은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라 했다. (반대로 외향형은 먼저 행동해 보고 생각하는 유형) 내향형이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고, 호기심이 강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조금 힘에 부치면서도 즐겁다. 공통점을 발견하거나 가치관이 비슷한 것을 깨달았을 때는 흥분된다! 가끔은 전혀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거나, 배우는 점이 있을 때가 참 소중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술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내가 신경 써서 안내한 곳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면 더더욱 기쁜 일이고.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좋다. 그들의 히스토리를 듣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를 듣고, 그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는 것이 참 좋다. 그리고 9월 말미에 느낀 것은 아무리 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한번 맺기 시작한 인연이 있다면 쉽게 포기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든 지금 이 순간 서로 만나서 함께 하게 되었다면 분명 인연이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렇게 쉽게 인연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던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번 달에 깨달은 중요한 배움이었다. 


일에 대해서는 이번 달에 시도해 보고 괜찮은 성과를 거두었던 방법이 있었다. 다양한 단계의 수많은 일이 쏟아지자 나는 혼란에 빠졌다. 중요한 것과 급한 것. 우선순위가 충돌했고, 그 모든 것을 혼자 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일을 혼자 다 감당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도하게 된 것이 '구조화'였다. (이 방법의 워딩이 구조화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선순위를 세분화해서 카테고리로 나누고, 나를 포함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인력에게 업무를 분배했다. 분배한 일을 통합할 때 선택과 결정이 확고한 부분이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면 일은 알아서 굴러가게 되어있다. 그때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보통 사람의 십 분과 세계를 움직이는 기업 CEO의 십 분이 같은 가치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꽤 예전부터 들어왔다.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지만 택시를 이용하면서 다른 것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차라리 업무 생각을 하는 것이 더 가치 있고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왔고. 중요한 하나의 의사 결정을 위해 하루의 모든 에너지와 집중력을 쓴다는 이야기도 물론. 나는 그 이야기들이 리더가 되려는 사람들이라면 꼭 염두해야 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풋내기였고, 격정적이었던 청년 시절을 탈피해가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만 바라봤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 때문에 움직이게 되었다. 사람들 때문에 쉬는 시간을 인지도 하지 못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스스로 그 어떤 대단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떤 꿈이건 현실이 될 수 있었다. 



3. 꿈꾸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23년 9월은 정말 남다른 동력으로 격정적으로 일한, 오래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힘의 파급력을 알기에 나는 앞으로도 꿈꾸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꿈을 꾸고, 나누면 현실이 된다. 이 여정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의 유형은 명백하게 세 가지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하찮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반대 의견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유형, 시종 시니컬하고 부정적이어서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유형, 자신이 언제나 감상하고 평가하는 우월한 입장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창작자의 무거움과 고뇌를 모르는 유형. 


다른 곳에서는 뛰어난 인재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내 배에는 승선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 어쩌겠는가. 사람들 덕분에 내가 있지만, 반대로 기획자로써 필요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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