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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Apr 04. 2024

저는 호구입니까?

뻔한 건 묻는 게 아니라지만. 

이사를 준비하며 이사청소를 의뢰했다. 생각이 많은 반골기질인 나는 두어 군데 업체의 후기와 사진을 모조리 보고 말았다. 아. 물론 그렇다고 밤을 샌 건 아니다. 글씨가 좀 많이 들어오는 고마운 눈알(?)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고 간파했다. 


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후기처럼만 청소해 달라는 말과 함께 주소를 보냈다. 그리고 청소가 끝났고 내가 상태를 확인하고 비용만 지불하면 마무리가 되는 단계에서. 


그런데 화장실 세면대가 막혀서 물이 잘 안 내려가던데 아셨어요?


아. 그런가요. 몰랐네요.  많이 막혔나요


네. 이거 다 뜯고 청소해야 합니다. 추가 비용으로 5만 원 내시면 해드릴게요. 


아. 네. 해주세요. 


그리고 작은 방 창문에 스티커 자국 있던데 그거 제거도 5만 원 추가비용 있으세요.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작업하시던 분은 그 뭐냐 나사 푸는 도구?로 열심히 분해를 시작했다. 막상 열어보니 별다른 건 없었다. 화장실 앞에서 쳐다보고 있던 나는 심드렁하게


별게 없네요? 


그러자 작업하시던 분은 이 작은 차이가 물 내려가는 속도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음... 아닌 것 같은데....


집은 깨끗한 편이었기에 후기에 나온 다른 집들처럼 청소에 애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많은 호구 반골기질인 나는 문지방을 내려다보다 문득, 


후기들이 모조리 생각났다. 


--가격도 5만 원이나 깎아줬어요

--스티커 자국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걸 추가비용 없이 다 제거해 주셨어요. 

--싱크대 경첩 고장 난 부분까지 다 고쳐주셨어요. 추가비용 없이요

--싱크대 배관이 막힌 것도 뚫어주셨어요. 추가비용 없이요. 

.

.

.

--먼저 화장실 세면대까지 다 분해해서 청소해 주셨어요. 추가비용 없이요.. 추가비용 없이요. 추가비용 없이요. 추가비용 없이요 추가비용 없이요. 추가비용 없이요. 추가비용 없이요 너님은 호구이신가요?.......


.

.

.

?

.

.

.

??



청소 후에 내가 사다 드린 음료수를 맛있게 드시던 그 작업자분께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 이 집이 청소 전에도 상태가 많이 깨끗한 편이었죠?


--네. 그렇긴 하더라고요. 


--그럼. 사장님. 세면대 배관 청소해 주신 건 추가비용 없이 서비스로 해주시면 안 되나요?


내 얼굴을 흘낏 쳐다보시고는 곧바로. 


--아, 네 그러세요. 그럼. 서비스로 해드린 셈칠게요.



흔쾌히 오케이 하시는 사장님을 바라보며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기뻤다. 그 기쁨은 내가 드디어 호구탈출 걸음마를 시작한 것에서 오는 것인지 돈 5만 원을 아낀 데서 온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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