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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Apr 16. 2024

악인은 습기처럼 스며든다.

지금 당신이 헤어져야 하는 이유. 

어려서 크리스마스엔 동네 교회에 가서 과자 따위를 얻어먹었다. 가끔은 무용을 배워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기도 했었다. 예닐곱 살 나는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알았던 한글로 꽤 많은 책을 읽은 뒤여서 고작 한 두장 글쓰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에 올라 단독 시낭송도 했고 상장과 상품을 받고 집사님이 울며 나를 안아주었던 기억도 난다. 


남동생 혼자 먹는 과자봉지를 힐끔거리며 침을 꼴딱 삼키던 내가 유일하게 온전히 먹을 수 있었던 과자들. 

내가 교회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무슨 이유인지 남동생은 그 교회 근처도 오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교회 가는 것을 싫어했다. 동생이 목사이고 형이 장로(?로 기억하고 있다)인 그 작은 개척교회를 나는 좋아했다. 따뜻한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무릎을 꿇고 있는 평화의 시간이 좋았다. 

어디선가 공장 하나를 운영한다는 장로님은 곱게 차려입은 부인이 피아노를 치고 동생이 목사로 설교를 하는 그 교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어른들도 목사님보다도 장로님에게 자주 뭔가를 이야기하곤 했다. 

돈이 엄청나게 많다는 그 장로 부부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두어 대의 봉고차에 교회 아이들을 가득 태워 드라이브를 시켜 주거나 빵이나 음료수를 늘 아낌없이 주곤 했다. 


씻지 않아 새카만 손으로 수줍게 과자를 먹었을까. 늘 고개를 수그리고 조용한 나였지만 그 교회만 가면 이상하게 신이 났다. 집사님은 핑크색 정장 치마를 곱게 입어놓고도 쿰쿰한 냄새가 나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얼굴이 크고 험상궂게 생긴 장로님은 이상하게 입을 크게 벌리고 허허 웃으며 그 투박한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도 책을 많이 읽었니? 혹시 읽고 싶은 책은 없니? 라며 물어보는데 남자어른이 익숙지 않았던 나에게는 무섭게 느껴지기만 했다. 


피아노를 잘 치고 잘 웃던 집사님은 방석 위에 앉아 기도를 하며 늘 울었다. 교회 할머니들은 돈도 많고 부부 사이도 저렇게 좋은데 애 하나 점지해 달라고 하는가 보다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닐곱 살이던 내가 그 장로부부의 자식 없음을 어디서 주워 들었을까 싶다. 


집사님은 나에게 어린 네가 이런 글을 어떻게 썼느냐며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다. 집에서는 책을 보면 혼났다. 책이나 볼 시간에 걸레질을 한번 더 하고 설거지를 해야지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다 소릴 들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내가 글을 쓰기만 하면 장로님이 좋아하신다는 소리를 하면 분명 또 욕을 들을 것이 뻔하니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교회 할머니들이 수군대는 내용이 달라졌다. 

장로부부가 참하고 얌전한 아이 하나를 입양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아니지 어디 멀리 가서 갓난쟁이를 데려올 거라고도 했다. 어떤 할머니는 그게 아니고 교회 다니는 가난한 애들 중에 한 명을 양자로 삼을 거라더라 했다. 뭐가 사실이든 간에 장로부부가 여전히 아이를 원한다는 것이 나는 놀라웠다. 

집에서 맨날 내가 듣는 소리라고는 전기세가 비싸네 쌀값도 힘드네 먹기는 왜 저렇게 많이 먹냐였으므로 장로님 부부네는 그렇게 돈이 많은가 싶어서였다. 

그 집으로 누가 가든지 맛난 거 많이 먹고 천 원짜리 하얀 타이즈도 마음대로 사서 신고 치마를 입고 과자도 세 봉지씩 먹겠구나 싶어 질투가 났다.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더 이상 교회를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어디서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던 엄마는 밥 먹을 때가 되어도 내가 나타나지 않아도 그걸 몰랐다. 어쩌다 밥때를 놓쳐 늦게 집에 들어가도 설거지된 냄비만 있고 엄마는 얼른 자라고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마다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엄마가 당연히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가 내일 어디 좀 가야 하니 교회가지 말라고 했을 때 화들짝 놀란 이유였다. 

엄마는 일요일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 어느 세탁소 앞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엄마의 친구가 그 세탁소 안주인이었다. 세탁소 안에 딸린 방 하나에 남편과 아내, 어린 딸 이렇게 셋이 살고 있었다. 엄마는 여기서 놀고 있으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지 않았다.

저녁밥상 앞에 어색하게 앉아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그 단칸방에서 결국 이불이 펼쳐질 때까지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 단칸방에 그 부부와 어린 딸이 눕고 그 옆에 내가 누웠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건 

내가 한 번도 왜 우리 엄마는 안 오냐라고 묻거나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3돌을 넘긴 내가 바라보던 텅 빈 골목길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였을까. 

예닐곱 살이었던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떠올렸다. 어디서 그 책을 구해 읽었을까. 우리 집엔 책이 없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엔 올리버가 떠오르며 여긴 거지 소굴이고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탁소 부부가 마주 보며 히히 웃던 게 생각나서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딸이라는 계집아이도 연신 나에게 너는 이런 거 없지? 너는 아무것도 없지? 이랬던 것도 짜증 났다. 

우리 엄마가 날 버린 걸까. 내가 구걸을 해서 돈을 벌어오길 바라는 걸까. 그렇다면 낮에 나에게 빨래를 시키지 않았을까. 조그만 머리통은 밤새 혼란스럽게 고민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엄마는 나를 다시 데리러 왔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 집이 이사를 했다는 걸 알았다. 언니와 남동생은 이사 간 집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예쁘고 붙임성이 좋았던 언니를 엄마는 좋아했다. 그리고 새아빠도 좋아했다. 어딜 가도 큰애랑 막내는 남매로 본다. 둘째만 같은 형제로 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곧잘 하던 엄마에게 나는 무력했다. 언니와 나는 아빠가 같지만 생김새는 많이 달랐다. 

만약 누군가. 


왜요. 둘째가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것이 서구적으로 생겨서 이쁜데요

둘째가 그래도 머리가 똥글똥글한 것이 아주 영리하게 생겼는데요?

둘째가 말을 잘하고 어린애답지 않게 의젓하네요. 


라는 소리를 했다간 그날은 집에 가서 두들겨 맞거나 온갖 구박을 받는 날이었다. 엄마는 못생기고 못난 나를 남들이 가엾게 생각해 주는 걸 속상해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못나서 엄마 마음이 아팠으니까 내가 더 혼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반항은커녕 혼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사를 해서 더 이상 교회를 가지 못하게 됐다. 

교회를 가지 못해 과자도 먹지 못했다. 

글쓰기를 할 이유도 없어졌다.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배울 일도 가끔 봉고차를 얻어 타고 한 바퀴 돌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에... 또... 그리고...


또 뭘 못하게 됐는지. 또 뭘 못 보게 됐는지...

아무튼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뭔가 커다란 것을 두고 온 기분이 들었다. 


동네 어귀 어디선가 쪼그리고 앉아 막대기로 땅바닥에 십자가를 그리고 글씨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던 

예닐곱 살의 나는. 


가진 적도 없는데 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마음이 무척 서운했다. 


땅바닥에 앉아있다 일어선 엉덩이는 습기로 축축했다. 

서서히 스며드는 습기는 일어나서야 축축함을 알게 한다. 

얼른 일어나야 할 이유다. 



















오늘의 소설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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