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터졌다 Aug 17. 2024

함부로 주워 먹지 않겠습니다.

인생의 개별적 기준. 

한 손엔 새로 산 식칼을 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은 기름이 잔뜩 묻은 채로 어정쩡하게 바닥을 내려다봤다. 

방금 내가 떨어뜨린 커다란 고기 한 덩이가 애처롭게 놓여있다. 

탱글탱글한 육질의 아름다운 고기. 

나는 저걸 주워야 할까. 말까. 






누구나 살면서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지 않겠나. 가령  때리는 사람과는 연애를 하지 않겠다 라거나 상한 음식은 먹지 않겠다 라거나. 

나의 경우. 몇 안 되는 기준 중에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주워 먹지 않는다가 있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데 문제는 내가 너무 자주 흘린다는 것이다. 

대파를 다듬다가 떨어뜨리기도 하고 사과를 담다가, 오렌지를 다 까놓고 우르르 쏟기도 했다. 

청소는 양호하게 하는 편이라 주워 먹어도 크게 탈 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내 인생의 기준으로 흘린 음식은 주워 먹지 않는다고 정해버렸다. 


이게 생각보다 상당히 고민되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탐스럽고 싱싱한 고기 한 덩이가 뚝 떨어진 것처럼. 얼른 주워서 물에라도 씻어서 기름에 튀겨버리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사실했다. 


이번만 내 기준을 슬며시 모른척하고 싶었다. 아까웠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종교의식처럼 칼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고기를 들어 비닐에 곱게 싸서 버렸다. 


나는 나를 안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나는 그동안 수없이 기준 없이 흔들리는 삶을 살아왔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먼저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선택을 무수히 많이 했다. 

이 고기는 정말 아깝지만. 

그런 나를 다시 다잡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이번 한 번만 더 용서하고 넘어갈까?

그래도 너무 아까운데 나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두루두루 좋을 수도 있어.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보낸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들, 버리지 못한 인연, 모질지 못해 모지리로 살았던 시간들. 

결국 이자에 이자를 쳐서 뼈아픈 복통으로 고스란히 돌아왔지 않았나. 

생각이 많고 연민이 많은 나는, 

몇 가지 안 되는 기준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삶의 아깝지만. 기준을 벗어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악인은 습기처럼 스며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